꾹꾹 누르던 의원들, 요즘엔 건드리면 터져
  • 서상현│매일신문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5.02.0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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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에서 수평적 당·청 관계 정립 요구 목소리 고조

“이런 식의 당·정 협의를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니 그 많은 시간 다 허비하고 발표 하루 전에야 당·정 협의 하자고 오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국회의원들은) 아는 바가 없으니 그 자리에서 자료 훑어보기 바쁘고, 공무원들은 급하다면서 재촉하니까 고성이 오간 것 아니겠어요? 다 이런 식이에요. 정부 안(案)대로 갈 테니 따라오라, 의원 너희는 들러리나 서면 된다. 책임은 안 묻겠다…참 나.”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새누리당 한 의원의 성토다. 정부가 중산층 주거 안정을 위해 기업형 임대주택 육성 정책을 발표하기 하루 전 국회 국토위 소속 의원들과 다분히 형식적인(?) 당·정 협의를 한 것에 대해 그는 아주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의원은 “성난 몇몇 의원들이 고함을 치기도 했다”며 “이 임대주택을 서울에 적용하면 보증금 8100만원에 월세 81만원이고, 순수 월세는 122만원인데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1월27일 김무성 대표가 이재오 의원과 새누리당 전국여성지방의원협의회 총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대로라면 내년 총선은… 상상하기도 싫다”

박근혜정부의 임기 반환점인 3년 차, 집권 여당 의원들이 당·청 관계에 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앞의 예와 같이 청와대와 정부가 지나치게 일방통행이라는 데 화가 나 있다. 지난해 말까지 꾹꾹 누르고 있던 다수 의원들이 요즘엔 건드리면 터진다. 핵심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초선 의원은 “정윤회 문건 파동은 내용을 잘 알지도 못하고 또 정치적인 사안이라 말하기가 껄끄러웠다. 그런데 연말정산 파동은 바로 내 이야기이고, 우리 아들딸들, 이웃, 내 지역구 이야기여서 영 못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가는 이런 기류를 ‘탈박(脫朴)의 서막’이라고 표현한다.

정권 초기에는 친이(명박)계 등 비박(근혜)계에서 주로 이런 불만들이 터져 나왔지만, 요즘엔 소수의 핵심 친박(근혜)계를 뺀 다수의 ‘범(凡)친박’, ‘신(新)친박’에서 “당·청 관계 재정립”을 요구하고 있다. 주종 관계인 듯한 수직적 하달 관계를 수평으로 맞추라는 경고다. 이런 당내 의원들의 분위기를 반영한 듯 원내대표 경선에 나선 이주영 의원과 유승민 의원도 당·청 관계에 대해서만은 한목소리를 냈다. 정부 정책에 ‘거수기’ 노릇은 그만하겠다는 것을 전제로 “민심을 제대로 반영한다는 차원에서는 당이 주도적으로 나가야 한다”(이주영), “당이 정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당 입장이 옳다고 생각하면 거꾸로 청와대를 설득하겠다”(유승민)는 주장에서 뿔난 당심(黨心)이 읽힌다.

여당의 탈박 조짐에는 연말정산 파동이 기폭제가 됐다. 하지만 당·청 관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의 핵심은 역시 인사(人事) 문제다. 최근 만난 의원들은 모두 연말정산 파동으로 서두를 열고는 인사 문제로 끝을 맺었다. 비선 실세 국정 농단 파문 이후 첫 신년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비서진 3인방’에 대한 경질성 인사를 언급하지 않았고, 새 총리를 임명하는 개각에서도 김기춘 비서실장은 비켜가면서 “여당 목소리에 너무 둔감하다”는 불만이 이구동성이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친박계 3선 의원은 “박 대통령의 성공을 누구보다 바라고 또 애쓰고 있지만, 식구를 버리고 국민을 안아야 할 땐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 그것이 곧 진정성”이라며 “이대로라면 내년 총선은…정말 상상하기가 싫어진다”고 했다. “김 실장을 교체하지 않고 있는 것은 국민적 바람을 역행하는 것”(김성태), “김 실장부터 책임지고 물러나는 것이 맞다. 국민 기대와 상당히 동떨어진 인사”(조해진), “대통령은 뭐가 문제냐고 하지만 여론은 비서진 3인방에게 문제가 있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비서실에 꽉 막힌 부분이 있으면 바꾸는 흉내라도 냈어야 한다”(정병국) 같은 비박계의 톤과 다르지 않다.

최근 김무성 대표도 가시 돋친 말을 공개석상에서 쏟아낸다. 지난 1월28일 정부가 추진하는 세법(稅法) 개정을 두고 당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개별 정부 부처가 경제 상황과 국민 생활에 대한 종합적 고려나 타 부처와의 조율 없이 임기응변식 섣부른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증세(增稅)를 전가의 보도로 인식하는 것은 무감각하고 무책임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앞서 27일 당사에서 열린 전국여성지방의원협의회 총회에서는 “민주 정치는 소신껏 말하라고 만들어놓은 것인데, 잘하라고 몇 마디 한 것을 가지고 대통령을 끌어내리려고 발언한다는 이런 소아병적 생각과 사고 때문에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나 청와대에 대한 비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친박계를 겨눴다는 해석과 함께 “할 말은 하겠다”는 당·청 관계 재정립 천명이라는 분석도 있다.

당 최고위원회에 배석하는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붕괴하면서 오히려 톤을 조절한 게 이 정도”라며 “김 대표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공동운명체라고 누누이 강조하지만, 같이 살려면 쓴소리, 옳은 소리, 여러 사람에게서 듣는 이야기를 적시에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당 내부에선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새로운 당·청 관계를 만들어주지 않겠느냐는 절반의 기대를 하고 있는 듯하다. 원내지도부 소속의 당 인사는 “이 후보자는 현직 국회의원이자 전직 원내 사령탑으로서, (총리에) 취임하면 당과 정부 양쪽에 모두 소속된다. 정부 정책을 당에 설명하고, 당 입장을 정책에 반영하는 정무적 총리 역할만 제대로 수행해도 성공할 수 있다”며 “여당 내 자기 세력이 없는 이 후보자로선 먼저 당이 요구하는 인적 쇄신을 관철해야만 더 큰 꿈도 꿀 수 있다. 촉이 좋은 사람이라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국민과 당의 부정 여론을 잠재우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믿었기에 받은 상처가 더 큰 TK 민심

이 후보자도 총리에 지명된 직후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 “총리 직책을 맡게 된다면 더욱 몸을 낮추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국회와 소통하겠다. 오물딱조물딱 하지 않고 국민의 목소리를 받드는 정부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1월 한 달 동안 지역구에 머무르다시피 하고 있는 TK(대구·경북) 지역 한 의원은 “대구·경북 민심이 아주 싸늘하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이야기가 많다”며 “믿고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가 크듯 TK 민심이 꼭 그런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당이, 의원들이 ‘왜 박 대통령에게 말을 확실히 해주지 않느냐’ ‘고향에 있는 어른들 생각이 이렇다는 것을 왜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느냐’는 꾸중을 엄청나게 들어야 했다”고 토로했다. 일반 국민도 새 당·청 관계의 핵심을 ‘소통’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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