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릴 건드리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
  • 조해수·엄민우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02.0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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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박근혜정부에 선전포고…회고록에 공격하는 내용 담아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박근혜정부에 또 하나의 대형 악재가 터졌다. 이번에는 ‘친이(명박)계’의 반격이다. 당·청 갈등에 이은 친이계 반격으로 여권은 다시 한 번 내분의 늪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그 진원지는 친이계 수장인 이명박(MB) 전 대통령이다.

2월2일 출간된 MB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는 곳곳에 현 정부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나 현 정부를 곤혹스럽게 할 만한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친이계의 반격이라고 보고 있다. 차기 정권을 노리는 헤게모니 다툼으로까지 확대 해석하는 모습도 엿보인다. MB의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5년 대통령이 100년을 보다-안타까운 세종시’ 편에 노골적으로 표현돼 있다.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서)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한 이른바 ‘한나라당 비주류’의 반응은 싸늘했다. 2007년 대선 초기 정운찬 전 총장이 대선 후보에 버금가는 행보를 한 전력이 결정타였다. 전혀 근거 없는 추론이었지만, 내가 세종시 수정을 고리로 정운찬 총리 후보자를 2012년 여당의 대선 후보로 내세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의심을 사게 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4년 12월18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식당에서 측근들과 송년 만찬을 함께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돌이켜보면 당시 여권의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표 측이 끝까지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한 이유도 이와 전혀 무관치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즉,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대표가 차기 대선에서 라이벌이 될 수 있는 인물을 견제하기 위해 세종시 행정수도 이전을 물고 늘어졌다는 것이다. MB의 박 대통령에 대한 공격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선에서 MB와 박 대통령 간 혈전이 벌어졌다. MB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정운찬 총리 의식해 세종시 수정안 반대”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당내 경선을 치렀다. 나는 그 과정에서 원칙을 일관되게 지키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원칙을 지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경선 과정에서 나는 수많은 네거티브 공격을 받았다. 그로 인해 선거 판세가 불리해지자 주변 참모들은 “우리도 네거티브 전략으로 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네거티브 유혹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며 출마한 사람이 기성 정치의 관행을 똑같이 답습한다면 출마한 의미가 없다고 봤다. 또한 당내 경선이 네거티브 전으로 흐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라 생각했다. 나는 경선 과정에서 수많은 네거티브 공격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초심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2007년 8월 20일, 결국 나는 한나라당 경선에서 승리했다. 다음 날인 21일 김수환 추기경을 뵈러 갔다. 그 자리에서 추기경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후보께서 그렇게 공격을 받으면서도 상대를 공격하지 않고 참는 모습을 보며 많이 놀랐습니다. 그런 경우에 처했다면 나도 가만있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잘 참으셨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잘해나가실 것 같습니다.”

이 전 대통령이 고 김수환 추기경까지 거론하며 말하고자 한 것은 결국 자신은 네거티브를 하지 않았고, ‘친박(근혜)’ 측만 구태 정치의 악습을 되풀이했다는 것이다. MB가 2009년 통일부와 북한의 실무 접촉 당시를 설명하면서 북한 측이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돈거래를 요구했다고 공개한 부분도 큰 논란을 빚고 있다.

북한이 제시한 문서에 의하면 정상회담을 하는 조건으로 우리 측이 옥수수 10만톤, 쌀 40만톤, 비료 30만톤의 식량을 비롯하여 아스팔트 건설용 피치 1억 달러어치를 제공하고 북측의 국가개발은행 설립 자본금 100억 달러를 우리 정부가 제공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박 대통령은 새해 들어 부쩍 대북 화해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제3차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말하기도 한다. 당장 오는 5월 러시아에서 열리는 ‘러시아 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서 남북 정상이 만날 가능성까지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MB의 회고록은 남북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나 다름없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박근혜정부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더라도,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 탓에 국민들은 뒷거래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북한도 가만히 있겠는가. 북한은 ‘남측이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애걸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 한 권 때문에 남북 관계가 경색될 수 있다. 이 회고록은 MB가 청와대를 향해 ‘우리를 건드리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1월30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는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 ⓒ 시사저널 구윤성
남북정상회담 성사 분위기에 찬물 끼얹어

이명박 전 대통령은 현재 자신을 둘러싼 자원외교 논란과 관련해서도 박근혜정부에 대한 서운함을 드러냈다.

자원외교의 성과를 성급히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원외교는 그 성과가 10년에서 30년에 거쳐 나타나는 장기적인 사업이다. 퇴임한 지 2년도 안 된 상황에서 자원외교를 평가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다.

 자원외교 국정조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것인데 여기에는 야당뿐 아니라 현 정권에 대한 섭섭함도 묻어 있다. 사실상 자원외교 국조는 현 정권이 암묵적 동의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여야는 지난해 12월 ‘2+2 연석회의’를 통해 자원외교 국조에 대한 협상을 타결했다. 이때부터 친이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특히 이재오 의원은 “현 정권이 지난 정부를 제물 삼아 정윤회, 십상시 사건 등 위기를 돌파하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며 자원외교 국조에 합의한 여당과 이에 동조한 정권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MB는 또 이번 회고록을 통해 한승수 전 총리를 자원외교를 진두지휘한 인물로 직접 거론했다.

해외 자원 개발의 총괄 지휘는 국무총리실에서 맡았다. 우리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한승수 총리를 임명한 것은 그 같은 이유였다. 한 총리는 외교 분야에 경륜이 많고 특히 자원외교 부문에 관심이 많았다. 국내외의 복잡한 현안에 대해서는 내가 담당하고, 해외 자원외교 부문을 한 총리가 힘을 쏟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한 전 총리는 박 대통령의 이종사촌 형부다. 때문에 2008년 그가 MB 정부의 첫 총리로 지목됐을 때도 뒷말이 무성했다. 한 전 총리의 등용이 친이와 친박의 화합 측면에서 가산점을 얻었다는 평가도 당 안팎에서 무성했다. 따라서 이 전 대통령이 한 전 총리를 자원외교의 주역으로 등장시킨 것은 자원외교 국조가 자신뿐 아니라 현 정권, 나아가 박 대통령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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