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품없는 잔치에 소문도, 먹을 것도 없다
  • 윤희웅 | 민(MIN) 정치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 ()
  • 승인 2015.02.05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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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야당 최대 축제인 전당대회가 뉴스 뒤편으로 밀려나

손님 수와 음식 수준. 자고로 잔치의 평가 기준은 이 두 가지다. 소문이 크게 나 사람이 많이 몰렸는지, 잔칫상에 오른 음식은 괜찮았는지 등으로 누군가의 잔치에 점수를 매긴다. 지금도 결혼식이든, 환갑잔치든 이 기준이 통용된다. 잔치를 베푸는 사람은 하객이 없어 썰렁한 것과 손님들에게서 ‘음식이 별로야’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을 막는 데 신경을 쓴다. 소문도 크게 나고 먹을 것도 많은 명실상부한 잔치가 되었는지, 소문만 무성했지 먹을 건 없는 유명무실한 잔치가 되었는지에 따라 잔칫집에 대한 평판은 달라진다.   

정당의 가장 큰 잔치는 두말할 것도 없이 전당대회다. 새로운 리더를 뽑는 날이다. 대개 2년 만에 한 번 당 대표와 최고위원 등을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열린다. 정당은 유권자와 사회의 변화를 끊임없이 반영해야 하는데, 지도부를 교체함으로써 당에 변화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전당대회가 그러한 역할을 한다. 정당이 새롭게 생명을 연장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잔치라 부를 만하다.

1월27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이인영·박지원 당 대표 후보(왼쪽부터)가 MBC 출연에 앞서 손을 맞잡고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선거 결과의 불확실성 없어 흥미 반감

대한민국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2·8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당 대표와 최고위원 선거전을 이미 치르고 있으니 사실상 전당대회가 시작된 셈이다. 그러나 정당의 최대 잔치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시끌벅적한 모습은 없고 도서관처럼 조용하기만 하다. 새정치연합에 이번 전당대회는 정말 중요하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패배하고, 국민적 불신의 대상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매 국면 여당보다 더 비난을 받는 상황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왔다. 이것을 끊어버리고자 하는 전당대회다.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을 앞둔 전당대회다. 혈전을 앞두고 군대를 진두지휘할 장수를 뽑는 이벤트인 것이다. 그렇다면 갖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 임기응변이 아니라 환골탈태를 해야 하는 전당대회인 것이다.

10리 밖까지 소문을 내 사람들을 초청해야 했다. 자리가 차지 않을 수 있으니 강권해서라도 거리의 사람들을 데려와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갖고 있는 재료를 모두 사용해 진미를 만들어내야 했다. 후각을 자극하는 음식향이 동네로 퍼져나가 잔치에 참석할 마음이 없던 사람도 호기심이 생기도록 해야 했다. 그러나 소문도, 사람도, 먹을 것도 없는 잔치 아닌 잔치가 되고 있다. 역대 관심을 가장 덜 받은 전당대회로 기록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친노’와 ‘비노’ 구도, 선명하긴 하나 식상

소문이 나지 않는 걸 어떡하느냐고 억울해할지도 모르겠다. 한창 전당대회를 예열시켜야 하는 시점에 정국을 뒤흔드는 큰 이슈들이 연이어 터져 나와 국민적 관심이 분산되었다. 지난 연말부터 청와대 문건 유출, 비선 실세 국정 개입 의혹, 대통령 신년기자회견,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수첩 파동 등 메가톤급 사건들이 연이어 국민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꿈쩍도 않을 것 같던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곤두박질쳤고, 이러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총리 교체 카드를 꺼내들었다. 살아 있는 현재 권력이 흔들리는데 그쪽으로 대중의 관심이 더 몰리는 건 당연지사일 것이다.

반대로 여권발 악재가 없었다면, 새정치연합의 전당대회는 과연 달라졌겠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지금과 다르게 국민적 관심을 받으며 인사인해를 이룬 잔칫집이 될 수 있었을까. 자신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흥행이 되기 위한 조건과 내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먼저 관심을 못 받는 핵심적 요인은 ‘선거 결과의 불확실성’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불나방이 되어 돈벌이에 뛰어드는 것은 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이다. 도박이 꾸준히 생명력을 갖는 것도 대박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이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뛰어드는 선수는 당선될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에 기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고, 지켜보는 유권자들은 의외의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에 대한 기대감이 있기 때문에 관심을 보내는 것이다. 운동 경기도 당연히 이길 것 같거나, 질 것 같은 경우에는 관객이 적을 수밖에 없고, TV 중계를 해도 시청률이 낮을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박지원·문재인·이인영 후보가 당 대표 자리를 놓고 싸우고 있다. 실제로는 박지원과 문재인 후보의 2파전 양상이다. 두 명 중 누가 당선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있지 않으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는 두 후보 간 대결이 뚜렷한 대비 구도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두 사람 중 누가 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있다는 말이 힘을 갖기 위해서는 과거와 미래, 기득권과 혁신, 분열과 통합 등의 특성과 지향점에서 선명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 그 전제에서 경쟁이 있어야 하는데 이미 충분히 대중에게 알려진 인물들로 누가 변화를 상징하는지, 누가 혁신을 상징하는지, 누가 통합을 상징하는지 구별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비록 외형적으로는 두 사람이 싸우지만 경쟁의 구도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선거 결과의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친노(무현)’와 ‘비노(무현)’, 영남과 호남 구도로 진행되고 있으니 선명한 구도가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선명하긴 하나 식상하다. 야당에서 10년도 넘은 논쟁이다. 신상으로도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기 힘든 세상에 언제 적 제품을 진열대에 올려놓는 것인가. 이것은 전형적으로 야당이 외면받아온 계파 대립의 연장선 아닌가.

전당대회를 준비하면서 선거 룰(rule)을 놓고 후보들이 보여준 대립은 가관이었다. 전당대회 때마다 룰이 바뀐다. 헌팅턴의 표현을 빌리자면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안 되어 있는 것이다. 참가 선수들의 입김에 따라 룰이 고무줄이 된다. 결국 합의된 것은 대의원 45%, 권리당원 30%, 일반당원 10%, 일반 국민 15%의 반영 비율이다. 5% 단위로 세부 비율이 정해지는 것도 처음 보는 일이다. 또 정당 강화를 위해 대의원과 당원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는 당위론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국민적 관심을 얻기 위해서는 일반 국민의 참가 비율을 좀 더 높일 필요가 있었다. 15%는 낮아도 너무 낮다.

전당대회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소문도 나지 않고, 먹을 것도 없는 잔치가 되어버린 것을 되돌릴 순 없다. 그래도 신경을 써야 할 일이 하나 남아 있다. 잔칫날 가족 간, 형제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이후 가족이 아니라 원수가 되는 일이 종종 있는데 이것만은 막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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