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고 내가 해야지, 누가 해주는 건 없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5.02.0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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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에 ‘봄날’ 맞은 영원한 현역 송해

김영삼 전 대통령, 배우 로저 무어, 포스코 창업주 박태준, 배우 백설희와 지나 롤로브리지다,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과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 그리고 송해. 이들의 공통점은 1927년생이란 것이다. 이들 대다수는 세상을 뜨거나 현역에서 은퇴해 대중의 시야에서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송해는 예외다. 송해는 여전히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30년째 KBS의 <전국노래자랑> 사회를 맡고 있다.

여전히 허리는 곧게 펴져 있고 말할 때는 여느 방송인처럼 문장의 마지막 단어까지 분명하게 발음하고 또랑또랑 울린다. 1월 넷째 주 그의 스케줄을 보자. 18일에는 경북 상주를 찾아가 곶감 광고를 찍은 다음 그 다음 날 서울로 올라왔고, 20일에는  개인 사무실을 겸하고 있는 원로 연예인 모임 상록회 사무실이 있는 서울 종로3가로 출근해 회의를 한 뒤 바로 강원도 홍천으로 내려가 노래자랑 녹화 준비를 하고 21일에 녹화를 했다. 22일에는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23일에는 장충체육관에서 다시 녹화를 했다. 젊은 사람도 힘들 만큼 전국을 누비는 강행군이다.

ⓒ 시사저널 박은숙
“사람 부자가 세상에서 제일 큰 부자”

그래서일까. 송해는 2월19일부터 시작하는 송해 빅쇼 전국 투어 이름을 <영원한 유랑청춘>이라고 붙였다. 여기서 ‘유랑’이라는 말은 슬픈 정서보다는 ‘떠도는 즐거움’에 가깝다. 그는 지금이 “인생 중 가장 좋은 봄날”이라고 말했다.

처음 겪는 어려움일수록 더 크게 느껴지고 경험이 쌓이다 보면 그 충격이 작아진다. 90년 가까이 살아내며 경험치가 극대화된 송해의 말에서는 단어와 단어 사이에 함축된 여러 가지가 어른거린다. ‘언제까지 현역에 있을 것 같으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그렇다. “언제까지 무대에 설지는 나도 모른다. 내가 스무 살이 넘어서 혈혈단신으로 남하했다. 참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내가 지금까지도 3년 계획을 못 세워봤다. 방송일 하는 사람은 개편 때가 다가오면 피가 마른다. 평생 비정규직이 우리 같은 사람(프리랜서 방송인)이다. <전국노래자랑> 30년, <가로수를 누비며> 17년. 이만하면 나도 정규직을 한 셈이다. 이건 동료에게도 자랑이다. 3년 계획을 못하고 산 인생이라면 얼마나 방황했겠나. 하지만 그것도 못해보고 고생하는 사람이 비일비재하다. 그런 사람에게는 내 얘기가 도움이 될 것이다. 참을 인(忍)자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다는 말이 있다. 그거 흔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를 믿고 내가 해야지 누가 나를 위해 해주는 것은 없다.”

그는 자신이 살아냈던 분단과 이산, 한국전쟁, 월남파병 등의 혼란과 격동을 예로 들며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힘을 내라”고 했다. “올해가 광복 70년, 분단 70년이다. 이게 가슴에 사무친다. 여러분은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극복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시대를 겪고) 이 나라를 만들어온 사람의 고초를 이해해달라.” 그에게도 지워지지 않는 슬픔이 있다. 고향집 마루에 서서 다녀오라는 어머니의 배웅을 받고 잠시 남으로 피한다는 게 70년간의 생이별이 된 것과 스물세 살 먹은 아들을 교통사고로 앞세운 일이다. 그래서 분단 70년이 가슴에 사무치고, 가족 이야기를 따로 물었을 때 그의 목소리는 작아졌다.

송해는 89년을 살아내면서 만났던 인물에 관한 이야기도 풀어냈다. “한번은 정주영 선생(현대그룹 창업주)을 만났는데 ‘세상에서 제일 부자 오셨네’라고 하더라. “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가 사람 많이 아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송해가 최고 부자다’라고 했다. 나는 얼른 무릎 꿇고 절을 했다. 내가 사람 만나서 인사하면 내가 부자 같다. 택시를 타면 차비를 99.9%는 안 받으려고 한다. 안 주면 내가 손해다. 차 내릴 때 던져주고 간다. 그러고 나면 정말 기분 좋다. 그게 사람의 맛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라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는 애국이라는 거창한 주제도 작은 일화로 풀어냈다. “김종필씨가 반은 연예인이다. 아코디언도 잘하고 한량이었다. 그분이 국무총리를 맡았을 때 ‘우리들(연예인) 세율이 높다. 국가와 동업하는 것 같다’고 건의했다. 그랬더니 그분이 ‘너무 국가에서 많이 달라고 하죠? 고속도로 공사장에 한번 가보시죠. 저걸 내가 뚫었다라고 생각하면 세금 더 내고 싶어질 것이다’라고 말하더라. 애국이라는 게 내가 하는 일 성실하게 하고 내 의무 다하면 애국이다. 그걸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억울하고 바보스럽다 생각하면 한없이 바보스러운 것이다.”   

그는 지금도 애국(세금)을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은행 광고, 지자체 광고 출연료는 억 단위이고, 두 시간 정도 행사 진행료는 700만~800만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방송 출연료와 출장비까지 더하면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그는 여든이 넘어서 진정한 봄날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매일 사우나와 ‘BMW’로 건강 유지

건강도 봄날이다. 낮술은 안 하지만 소주는 25도짜리 빨간 딱지로 기본 주량이 3병이다. 한 달에 두세 번은 5차까지 차수 변경을 한다. 먹는 것은 가리지 않는다. 20여 년간 그를 지켜봐온 한 지인은 “여전히 잘 드시지만 소식한 지 몇 년 됐다. 대신 천천히 드신다”고 전했다. 그의 건강 비법은 사우나를 매일 거르지 않고 다니는 것과 BMW족이라는 것. 알려진 대로 그는 버스(Bus)·전철(Metro)·걷기(Walking) 애호가다. 서울 도곡동 집과 사무실도 3호선을 이용해 오간다. 사무실 관계자는 “휴일에도 와서 사무실 앞 단골 사우나를 꼭 찾는다”고 말했다. 종로 사무실에서 나와 전철을 타기 위해 걷는 거리는 200m 남짓. 이 짧은 거리가 어떤 날에는 20분씩 걸린다. 그에게 환호하며 달려드는 10대부터 70대 노년까지 일일이 손 붙잡고 사진 같이 찍고 사인해주느라 시간이 걸린다.

그가 기자회견장에서 “송해와 함께 흐드러지게 놀아봅시다”란 인사말을 하고 자리를 정리하자 젊은 여기자들이 사인을 부탁했다. 그러자 송해가 말했다. “거 봐, 내가 봄날 아니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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