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우지 낚시
  • 김인숙 | 소설가 ()
  • 승인 2015.02.11 14:5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몇 년 전 중국 남쪽을 여행하다가 ‘가마우지 낚시’ 장면을 보았다. 그 전에 가마우지라는 새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새를 이용해서 낚시를 한다는 것도 몰랐었다. 그래서 아마 눈앞에서 벌어지는 그 풍경이 더 놀라웠던 것 같다. 거위만큼이나 큰 새가 뱃전에 앉아 있다가 물속으로 자맥질을 해 들어가더니 물고기를 물고 나왔다. 큰 바다나 강도 아니고 기껏해야 냇물이라 부를 정도로 좁은 수로였는데, 그 속에 사는 물고기들은 제법 컸다. 가마우지들은 속속 물고기들을 물고 나왔고, 곧바로 배로 헤엄쳐 가서 물고 온 물고기들을 어부에게 바쳤다.

그런데 한 마리가 큰 물고기를 물고 나오더니 얼른 물고기를 뱉어내지 않고 망설이는 모양새가 역력했다. 주인이 그런 일은 예사라는 듯 노를 들어 새의 머리를 때렸다. 노인지, 노처럼 생긴 막대기인지, 아니면 사랑의 매인지, 아무튼 주인에게 머리를 얻어맞은 새는 별수 없다는 듯이 당장에 물고기를 뱉어냈다.

길을 들이는 것은 인내가 필요한 법이고, 사랑이 필요한 법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자신을 길들여달라고 말한다. 사랑의 한 방식인 것이다. 달리 길들이는 방법도 있다. 폭력과 공포다. 전쟁에서는 고문이 행해지고, 어떤 나라에서는 여전히 공포 정치가 횡행한다. 가마우지는 큰 물고기를 낚시해서 주인에게 갖다 바치는 대가로 작은 물고기를 먹이로 받아먹는다고 한다. 길들이는 동안에는 목에 매단 줄을 주인이 잡아당겨 가마우지가 제가 잡은 물고기를 본능적으로 삼키지 못하게 하는 모양이다. 필자가 보았듯이 모질게 매로 후려갈기기도 할 것이다.

가마우지 낚시에 대한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다가 이런 댓글을 보았다. “나도 평생 가마우지처럼 어부 옆에서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 네티즌의 어부가 누구를 일컫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말한 가마우지가 누구인지는 알겠다. 힘들여 낚시한 물고기를 매일같이 뱉어내며 살아가는 사람들, 작은 물고기라도 내 식구들의 밥상이 가득 차기를 바라는 사람들, 길들여지기를 바란 적이 없으니 모욕이나 폭력을 받을 이유도 없는 사람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머리를 두들겨 맞고 목에 걸린 줄에 엉덩방아를 찧기도 하지만, 그래도 날개가 있는 가마우지, 그런 사람들.

‘갑질’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대한항공 회항 사건은 이제 더 큰 사건에 의해 그 화제성을 서서히 잃어가게 될 것이다. 사건은 잊혀지고 마무리되겠으나 세상의 바다, 혹은 세상의 강과 냇물 속에서 가마우지들은 여전히 힘든 자맥질을 하고 있다. 간신히 머리를 내밀어도 더 큰 물고기를 잡지 못했다 하여 ‘갑’의  호된 매질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가마우지와 가마우지가 서로 위로하지 않으면 어찌하겠는가. 가마우지가 가마우지에게 서로 힘을 주지 않으면 어찌 되겠는가. 때로는 가마우지와 가마우지가 서로 뭉쳐 힘껏 싸우기도 해야 할 일이다. 처음에는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싸움이 실은 세상을 바꾸는 일일 터이니.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