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불탔으니 이로써 끝이 아니라 시작”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5.02.13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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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작법 같은 산문집 <소설가의 일> 펴낸 김연수

“서사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산다. 처음에는 그냥 닥치는 대로 살고, 그다음에 결말에 맞춰서 두 번의 플롯 포인트를 찾아내 이야기를 3막 구조로 재배치하는 식으로 한 번 더 산다. 인생이 그렇다면 소설도 마찬가지겠지. 그렇게 해서 소설은 원래 두 번 쓰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처음부터 잘 쓰지 그랬느냐고? 아직 결말을 모르는데 어떻게 처음부터 잘 쓰나? 마찬가지다. 내 인생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무슨 수로 처음부터 잘 살겠나? 소설을 쓰는 일은 ‘인생이라는 게 원래 뭐 그따위’라는 사실을 깊이 이해한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잘 사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그건 소설도 마찬가지다. 모든 이야기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소설은 시작된다.”

창작의 비밀에서 드러나는 삶의 비밀

김연수 작가(45)가 <소설가의 일>을 통해 창작의 비밀을 밝혔다. 그가 털어놓은 창작의 비밀은 삶의 비밀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에서 생각하기와 말하기, 쓰기뿐 아니라 살아온 삶의 비밀과 태도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한다. 소설 쓰는 일이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게도 한다는 묘한 내용도 들었다.

ⓒ 시사저널 우태윤
“소설가의 일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물론 소설을 쓰는 일도 있고, 산문을 쓰는 일도 있다. 취재를 하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마감 때 30분씩 끊어서 잠을 자는 것도, 마감이 끝난 뒤의 한가함을 맛보기 위해 아무도 없는 오후의 탁구장에서 탁구를 치는 것도, 다른 작가의 시상식에 갔다가 돌아오는 새벽의 택시 안에서 한강을 바라보는 일도 모두 소설가의 일이다. 소설가는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한다.”

김 작가는 신년 독서 계획과 짧은 여행, 크고 작은 만남과 인상 깊게 본 영화와 자전거를 도둑맞은 이야기 등 사소한 일상까지 다양한 일들을 <소설가의 일>에 포함시켰다. 그는 누구든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을 경험하는데, 그 갈림길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처럼 소설도 같은 길을 가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갈림길을 ‘불타는 다리’로 표현한다.

“소설가로 향하는 다리를 건넌 뒤에 나는 되돌아갈 수 없게 다리에 불을 붙였다. 그렇게 말하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대부분의 인생에서는 그게 다리였는지도 모르고 지나가고, 그러고 나서도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뒤늦게 그게 다리였음을, 그것도 자신의 인생 이야기에서 너무나 중요한 갈림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김 작가가 소설은 두 번 쓰는 것임을 깨달았다는 의미가 여기에 있다. 그는 인생의 갈림길을 소설이나 영화의 이야기 작법에 대입해 설명하기도 한다. 이야기 작법에서는 예상치 못한 결론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거치는 지점을 설정하는데, 이를 ‘플롯 포인트’라고 부른다. 플롯 포인트는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키는데, 대개의 이야기에는 두 개의 큰 플롯 포인트가 있다. 이 지점을 지나면 이야기의 방향이 크게 바뀌면서 주인공은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특히 첫 번째 플롯 포인트를 가리켜 ‘돌아갈 수 없는 다리’ 혹은 ‘불타는 다리’라고도 부른다.

김 작가는 자신을 소설가로 만든 문장이 있다고 털어놓는데, 그 문장과 1991년 5월 대학가를 휩쓸었던 자살 사건들을 화두로 띄운다. 그에게 하나의 플롯 포인트인 셈이다.

“사람들은 내가 소설을 쓴다고 생각하리라. 물론 그 말이 맞다. 하지만 소설을 쓰다 보면 소설이 나를 쓴다는 느낌이 들 때도 종종 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도 마찬가지였다. 연재를 끝마칠 무렵 나만큼 많이 쓴 건 아니지만 그 소설도 내 영혼에 뭔가 쓰기 시작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왜 어떤 사람들은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가는가? 그 이유는 그 길이 죽음의 길이기 때문이다.’ 나를 소설가로 만든 건 그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읽고 쓰는 사이 ‘새로운 사람 되는 기적’ 일어나

작가를 꿈꾸는 이에게는 일종의 창작론이기도 한 <소설가의 일>은,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에서부터, 캐릭터를 만들고 디테일을 채우고 플롯을 짜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과정들, 그리고 미문을 쓰기 위한 방법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실질적인 창작의 매뉴얼들을 선보인다. 그 과정은 사랑에 빠지는 과정처럼 들뜨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젊은 소설가는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그는 스물네 시간 백치에 가까울 정도로 한 가지 생각만 할 것이다. 문장들, 더 많은 문장들을. 사랑이라는 게 뭔가? 그건 그 사람에 대해서 남들보다 더 많이 아는 것, 그래서 그 사람을 자기처럼 사랑하는 것, 즉 그 사람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다.”

김 작가는 ‘매일 글을 쓴다’, 그리고 ‘한순간 작가가 된다’라는 이 두 문장 사이에 신인(新人), 즉 새로운 사람이 되는 비밀이 숨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래서 읽고 쓰고 말하는 사이에 체험한 삶의 기적을 독자들도 경험하기를 바랐다.

“소설을 쓰겠다면 <크리스마스 캐럴>의 마지막 장면을 항상 기억하기를. 어떤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변함이 없다는 것. 달라진 사람은 말, 표정과 몸짓, 행동으로 자신이 바뀌었음을 만천하에 보여준다는 것. 그러므로 소설을 쓰겠다면 마땅히 조삼모사하기를. 아침저녁으로 말을 바꾸고 표정을 달리하고 안 하던 짓을 하기를. 그리하여 인간은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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