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정권이 3000억 정보함 사업 비리 덮었다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03.0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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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청와대·감사원·국정원 ‘무혐의’ 처리…현 정부에서 의혹 실체 드러나

지난 2월11일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대전고검 차장검사)은 예비역 해군 준장 이 아무개씨(61)를 제3자 뇌물 취득 혐의로 구속했다. 이씨는 2009년 1월쯤 한 방위산업체로부터 해군 정보함에 탑재되는 통신 장비를 납품할 수 있도록 힘써달라는 청탁과 함께 9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방위산업(방산) 비리를 척결하겠다는 현 정권의 강한 의지와 합수단 규모 등을 고려하면 ‘준장급’ 장성이 구속됐다는 소식은 다소 무게감이 떨어져 보인다. 대다수 언론도 이 소식을 단신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해군 내부에서는 이씨의 구속 소식을 간단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이씨가 2006년 중반 해군 전역 후 무기 브로커로 폭넓게 활동해왔다는 점, 그가 연루된 정보함의 사업 규모가 3000억원대에 이른다는 점 등으로 봤을 때 사건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해군 내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2008년 10월17일 부산에서 열린 국제 관함식 행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왼쪽 두 번째)이 정옥근 당시 해군참모총장(왼쪽 첫 번째)과 대화하고 있다.ⓒ 시사저널 포토·청와대 제공
이번에 합수단이 밝혀낸 이씨의 혐의는 몇 년 전에 이미 제기됐던 것이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감사원·국가정보원 등이 2011년과 2012년 두세 차례에 걸쳐 정보함과 관련한 비리 의혹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도 무혐의로 처리하거나 임의로 관련 자료를 폐기한 사실이 확인됐다. 똑같은 의혹에 대해 여러 기관이 조사를 벌였음에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가 몇 년이 지난 후 관련자들이 구속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당시 청와대·감사원·국정원 등의 조사가 부실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최근 구속 기소된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도 비슷한 경우다. 2월17일 기소된 정 전 총장은 STX로부터 7억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건 또한 2012년 대검 중앙수사부가 첩보를 입수해 대전지검 특수부에서 수사를 했으나 당시에는 기소되지 않았다. 그런데 합수단 출범 후 정 전 총장이 같은 사건으로 수사를 받게 됐고, 결국 구속 기소됐다.

특히 해군 정보함은 정 전 총장 재임 시절 계약을 맺은 데다, 이씨와 정 전 총장이 해군사관학교 동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보함 비리 수사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검찰과 해군 주변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신천옹함 탑재 무인항공기 리베이트 의혹

해군 관계자들은 이씨가 브로커로 활동하면서 군 인사들뿐만 아니라 고위 인사들과도 폭넓게 관계를 맺어온 만큼 합수단 수사가 제대로 진행될 경우 사건의 불똥이 정·관계로도 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해군 및 방산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2012년 초 해군 정보함 관련 비리 정보를 입수하고 조사에 나섰다. 청와대는 해군의 2차 정보함인 ‘신천옹함’에 탑재되는 무인항공기가 성능 미달이며, 도입 과정에서 100억원이 넘는 금액이 리베이트로 빼돌려졌다는 의혹을 조사했다.

당시 무인항공기 선정 입찰에는 미국 AAI사와 오스트리아 쉬벨사 제품이 참가해 오스트리아 제품이 선정됐었다. 미국 AAI사 제품은 1차 정보함인 ‘신세기함’에 탑재됐던 것으로, 2차 정보함 도입 과정에서도 거의 계약 성사 단계까지 갔다가 오스트리아 제품이 막판에 참여하면서 계약이 이뤄지지 못했다. 세계적인 지명도로 봤을 때 AAI사보다 더 낮은 오스트리아 쉬벨사 제품이 선정된 데다, 계약금으로만 무려 70%가 선지급되면서 해군 내부에서 여러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청와대의 조사 내용에는 같은 배에 실리는 도·감청 장비 도입에도 비리 의혹이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특히 신천옹함 사업 추진 과정에서 이씨와 해군 및 방위사업청 고위 관계자들 간에 유착 의혹이 제기됐다. 청와대는 관련자 진술 및 참고 자료 등을 감사원으로 내려보냈고, 감사원도 이를 바탕으로 감사를 실시했으나 별다른 혐의점을 발견해내지 못했다. 그러자 정보함 도입에 연관됐던 해군 일부 관계자들이 감사원 감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해 다시 한 번 민원을 제기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2011년에는 검찰도 수사 수준의 내사를 벌인 바 있다. 당시 입찰에 참여했던 방산업체 관계자들이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같은 해 11월에는 국가정보원에서 대전 계룡대에 2주간 직원들을 파견해 정보함 사업에 대해 특별감찰을 벌이기도 했다. 청와대와 감사원, 검찰 여기에 국정원까지 나섰지만 모두 혐의가 없는 것으로 조사가 마무리됐다.

오히려 감사원은 ‘신천옹함’의 무인항공기 입찰 경쟁에서 떨어진 미국 AAI사 제품이 우수하다는 의견을 낸 해군 A소장에 대해 감사를 실시한 후 해군 측에 징계를 요청했다. 중장 진급을 앞둔 A소장은 감사원 감사 때문에 진급에서 누락됐고 결국 옷을 벗었다. 해군 내 대표적인 작전통이었던 A소장은 “업체 관계자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전술적인 판단에 따라 결론을 내린 것인데 감사원이 나와 미국 업체 에이전트 간 유착 의혹이 있다는 제보만 가지고 감사를 진행했다”며 감사원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벌여 승소했다. 당시 해군에서는 감사원이 A소장을 상대로 보복 감사를 했다는 말이 파다했다. 결국 정보함 관련 비리는 이런저런 의혹이 숱하게 제기됐음에도 진상이 드러나지 않았다.

정보함 도입 과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군 관계자들은 당시 의혹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꼽고 있다. 하나는 사건이 커지면 부담을 느끼게 될 국정원 측이 사건 확대를 막았다는 주장이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정보함 운용이나 도입 주체는 해군이지만 건조 비용은 고스란히 국정원의 예산에서 지급된다. 국정원은 매해 3000억원 정도의 예산을 육군과 해군, 공군 그리고 경찰 등에 특수정보비로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예산의 존재가 외부로 알려진 바 없는데, 해군 정보함 도입 과정에서 외부에 드러난 것이다. 게다가 육군이나 공군 등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불거진 적이 없는데 2008년 해군 정보함 사업으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2014년 11월21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열린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 현판식’에서 김진태 검찰총장(왼쪽에 일곱 번째)을 비롯한 사정기관 고위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 아래는 2011년 청와대와 감사원에 투서됐던 제보 문건 중 일부. ⓒ 시사저널 임준선·시사저널 이종현
국정원이 진상 조사 무마 주도?

실제로 이 사업과 관련해 국정원이 사건 확대를 막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여러 군데서 포착됐다. 국정원은 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해군본부를 감찰했고, 입찰에 참여했던 한국 에이전트를 찾아가 논란을 자제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2012년 오스트리아 쉬벨사 제품을 시험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인명 사고 처리 과정에서도 국정원이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해 5월 쉬벨사는 인천 송도에서 제품 시험비행을 실시했는데 이 과정에서 무인항공기가 조종 시스템이 실려 있는 차량을 들이받아 오스트리아 직원이 사망했다. 당시 해군 측은 “아직 해군이 인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와는 관계없는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항공기 운항과 관련한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 역시 자신들과는 연관이 없는 일이라고 주장해 책임 소재를 가리기가 어려웠다. 외국인이 방위 사업과 관련한 실험을 하다가 사망한 만큼 외교적 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었지만 이런 문제를 나서서 처리한 주체는 국정원이었다.

당시 의혹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로 정권 실세와의 연루설이 제기된다. 2008년 ‘신천옹함’에 무인항공기를 납품하기로 한 오스트리아 쉬벨사의 한국 에이전트는 해군 하사관 출신의 B씨였다. 하지만 이 에이전트업체는 얼마 지나지 않아 폐업했고, 다른 에이전트업체로 넘어갔다. 에이전트업체가 바뀌기를 반복한 것이 세 차례. 결국 쉬벨사의 국내 판매권은 S사로 넘어갔는데 이 업체의 대표가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친분으로 언론에 보도된 체육단체 관계자 C씨다. 해군 준장 출신으로 이 사업과 관련해 구속된 이씨 역시 몇몇 국회의원을 비롯한 이명박 정권 인사들과 두루 친분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함 비리에 MB 정권 실세 연루설

사건의 실체는 신천옹함 계약이 이뤄진 2008년 이후 7년 만에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씨가 도·감청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합수단의 수사 결과 드러난 것이다. 합수단의 수사는 무인항공기 도입 의혹으로 확대되고 있다.

해군 내부에서는 이 사업으로 100억원에 가까운 돈이 빼돌려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100억원이 무기중개상들 손에 넘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은 천안함 피격 사태와 연평도 포격 사태가 계기가 됐다.

사건이 발생한 후 해군에서는 1차 정보함인 신세기함의 성능 개량 사업이 필요하다며 예산을 요청했고, 국회에서 이를 승인했다. 2011년 해군은 신세기함의 성능 개량 사업 입찰을 실시했고 또다시 AAI사와 쉬벨사가 경합했다. AAI사가 입찰에서 써낸 가격은 183억원, 쉬벨사가 써낸 가격은 181억원이었다. 문제는 쉬벨사가 제안한 가격이 2차 정보함에 납품한 제품 구성(헬기 4대, 조종 시스템 1대)과 완전히 같은 구성임에도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았다는 점이었다. 쉬벨사는 같은 구성의 제품을 신천옹함에 256억원에 납품한 바 있다. 하지만 쉬벨사의 신세기함 응찰가는 181억원이었다. 단순한 가격만 비교해봐도 1차와 2차 정보함 응찰 가격 차이가 75억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배에 설치돼 있는 AAI사의 시스템 철거비용 30억원까지 포함돼 있다. 즉, 쉬벨사 제품의 순수한 무인항공기 가격과 설치비용은 151억에 불과했던 셈이다. 당시 사업에 참여했던 AAI사의 무기중개상은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똑같은 구성의 제품이 오히려 몇 년이 지나서 100억원 가까이 가격이 내려갔고, 이미 계약금으로 절반이 넘는 금액이 나갔는데 과연 이 돈이 어디로 갔겠느냐”고 반문했다.

합수단에서는 구속된 이씨와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해군 정보함이 정 전 참모총장 재임 시절 도입됐기 때문이다. 정 전 총장이 청와대에서 참모총장 임명장을 받고 온 날, 서울 여의도에서 저녁 자리를 함께한 인물도 바로 이씨와 방위사업청 고위 관계자였다. 방사청 관계자 역시 해군사관학교 출신이었다. 합수단 측은 수사 초기 단계에서 두 사람과 관련한 첩보들을 집중적으로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 측은 제기된 의혹들을 일부러 덮은 것 아니냐는 시선에 대해 “감사와 수사는 다르기 때문에 민간업체에 대해 조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사안이어서 현재로서는 누가 이 사건을 정확히 담당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오스트리아 쉬벨사 제품은 2013년 말 해군에 인도됐지만, 도입 당시의 우려처럼 해군 측 전력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군 내부에 파다하다. 그래서 이 정보함을 ‘제2의 통영함’이라고 부르는 인사도 적지 않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사실 도·감청 정보나 잠수함 출몰 상황 등은 서해 5도 인근 다른 부대를 통해 올라오고 있기 때문에 정보함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영상 정보 수집”이라며 “해군 측에서 사고가 날 것을 우려해 기상이 조금만 악화돼도 무인기를 띄우지 않아 정상적인 정보가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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