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통에 완장 채우고 특수통 칼은 뺏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03.05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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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청와대 등에 업고 검찰 인사 주도…‘공안 검찰’ 전성시대 열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월25일 취임 2주년을 맞아 청와대 직원회의에 참석해 “기강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유념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에서는 사상 최대 규모의 대대적인 검사 인사가 단행됐다(실제 인사는 17일에 발표). 전체 검사 2032명의 절반이 넘는 1099명의 검사가 자리를 옮겼다.

대검 중수부 폐지 이후 검찰 내 ‘넘버 2’로 떠오른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해 대검 차장, 공안부장, 반부패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주요 보직도 대대적인 교체가 이뤄졌다. 이번 인사는 올해 말 임기가 끝나는 김진태 검찰총장의 사실상 마지막 인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검찰 내에서는 김 총장의 뜻대로 인사가 이뤄진 곳은 사실상 한 자리밖에 없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대검의 한 검사는 “이번 인사를 놓고 BH(청와대)와 김 총장 간 기 싸움이 치열했다고 한다. 검찰을 장악하기 위해 BH가 자기 사람을 심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번 인사에서 결국 김 총장의 뜻이 반영된 인사는 서울중앙지검장밖에 없다고 봐야 한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으로 대표되는 공안통들이 요직을 싹쓸이했고,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람들도 전진 배치됐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올 한 해 검찰의 화두는 ‘공안’이다. 법무부는 지난 2월21일 청와대에 보고한 ‘2015년 업무계획’에서 공안수사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법무부는 “헌법 가치를 지키고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국가 혁신의 대전제”라고 선언한 뒤 “국가 정체성 확립을 위해 헌법 부정 세력을 엄단하고, 안보수사 역량을 강화할 것”임을 강조했다.

“특수통에서 공안통으로의 화려한 변신”

공안수사가 검찰의 ‘대세’가 된 것은 현 정부 들어서부터다. 대표적인 특수통 검사로 손꼽히는 김진태 총장이 지난 2013년 12월부터 검찰을 이끌고 있지만, 전임인 채동욱 총장 때와 비교했을 때 ‘거악 척결’이라는 특수수사는 사실상 맥이 끊겼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시사저널 1317호, ‘김진태호 특수수사 싱거웠다’ 기사 참조). 김 총장조차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을 꼽을 정도다.

검찰이 공안수사에 목을 맬 수밖에 없었던 것은, 현 정부의 국정 기조 및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박근혜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국정원 대선·정치 개입 사건이 터지면서 정통성 논란에 휩싸였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현 정부가 주력한 게 ‘종복 세력 척결’이라는 공안 카드였다. 여기에 맞춰 선봉장을 자처한 곳이 국정원이고 이를 뒷받침한 게 검찰이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폐기 사건, 이 전 의원 내란음모 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등 일련의 공안 사건들이 현 정부 위기 때마다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공안통의 득세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먼저 김수남 신임 대검 차장이 눈에 띈다.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대검 차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차기 검찰총장 ‘0순위’로 꼽히고 있다. 김 차장의 행보를 보면 박근혜정부가 검찰에 원하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특수통으로 분류되던 김 차장은 수원지검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2013년 8월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을 지휘하면서 주목받았다. 김 차장은 당시 통상 차장검사가 맡는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직접 맡아 발표하는 등 열의를 보였고, 이 사건을 통해 서울중앙지검장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특수통에서 공안통으로의 화려한 변신’으로 회자되는 김 차장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 정부가 검찰에 원하는 것이 결국 공안수사라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는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된 박성재 전 대구고검장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박 지검장 임명은 김 총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박 지검장은 2007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장에 재직하며 각종 주가 조작 사건을 처리했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증여 사건을 수사한 특수통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청와대에서는 김주현 법무부 차관을 민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김 총장의 뜻이 워낙 확고해 결국 박 지검장으로 결정 났다”고 말했다.

박 지검장의 취임 일성은 ‘공안수사’였다. 그는 지난 2월11일 취임식에서 “헌법 가치를 부정하고 폭력과 테러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파괴하고자 하는 국가안보 위해 세력은 초기부터 수사해 철저한 공소 유지로 반드시 상응하는 처벌을 받도록 할 것”이라며 공안수사 태풍을 예고했다.

중수부 폐지 후 서울중앙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과 함께 ‘빅3’로 불리는 대검 공안부장에는 정점식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이 임명됐다. 정 부장은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사건에서 법무부 위헌정당해산 관련 TF팀장을 맡아 결국  통진당 해산과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 결정을 끌어냈다. 정 부장이 대검 공안부장으로 임명되면서 통진당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 후속 수사도 정 부장의 손끝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김진태 검찰총장 ⓒ 시사저널 이종현황교안 법무부장관 ⓒ 시사저널 박은숙
박성재 중앙지검장도 취임 일성이 ‘공안’

정 부장과 함께 굵직한 공안수사를 전담하게 될 서울중앙지검 2차장에는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거론되는 이상호 차장이 임명됐고, 그 아래 공안1부장과 2부장에는 백재명 대검 공안1과장과 김신 법무부 공안기획과장이 각각 자리를 옮겨왔다. 이 차장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을 맡아 유우성씨(35)를  구속 기소한 주인공이다. 지난 2년간 국정원 파견 검사로, 국정원 대선·정치 개입 사건을 뒷수습한 변창훈 검사가 대검 공안기획관에 올랐다.

‘검찰의 꽃’으로 불리는 검사장으로 승진한 이들 중에서도 공안통이거나 정권에 민감한 사건을 다뤘던 검사가 많다. 이번 인사에서는 모두 9명의 검사장 승진이 있었는데, 윤웅걸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전현준 서울중앙지검 1차장, 유상범 대검 공판송무부장, 한찬식 서울고검 차장, 김회재 부산고검 차장 등이다. 윤 부장은 공안 사건을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로 재직하면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등을 맡았다. 장경욱·김인숙 등 민변 소속 변호사에 대해 공무집행방해·묵비권 종용 등의 이유로 대한변협에 징계를 청구한 이도 윤 부장이다.

전 차장은 광우병 의혹을 보도한 MBC <PD수첩> 수사를 맡았으며, 유 부장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 시절 정윤회 문건 수사를 지휘했다. 두 사건 모두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에 충실한 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인사에서 유일하게 고검장으로 승진한 김주현 차관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 시절 한명숙 전 민주당 대표를 기소하면서 야당 표적 수사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특수 라인 인사에도 청와대와 법무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관혁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은 지난해 특수2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정윤회 문건 수사를 맡아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을 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문건 내용은 ‘찌라시’ 수준의 근거 없는 루머였지만, 이 문건을 유출한 것은 국기문란 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청와대의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김석우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은 이번 인사 전 법무부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관련 TF팀에 참여한 바 있다.

법무부 인사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이어졌다. 대변인에 임명된 김광수 검사는 2013년 공안2부장 시절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사건(이른바 사초 폐기 사건)’을 맡아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실장을 지낸 백종천씨 등을 기소했다. 같은 맥락으로 박근혜정부 인수위원회에서 파견 근무를 했던 안태근·이선욱 검사는 검찰 인사를 총괄하는 검찰국장과 검찰과장에 임명됐다.

대공 전담검사제로 공안 장기 집권 체제

공안통들의 득세는 단지 이번 인사에서만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인사를 통해 공안 부서를 대폭 확대하고, 대공 전담검사제를 신설해 공안 검사들의 장기 집권 체제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직제 개편을 통해 서울남부지검과 의정부지검에 공안부를 신설할 방침이다. 서울남부지검에는 공안부를 지휘하는 2차장 자리도 새롭게 마련된다. 대공 전담검사제는 대검·서울중앙지검·수원지검 3곳에서 대공 사건만 전담하는 검사 직책을 만들어, 7년 정도 이곳에서만 순환 근무를 시키는 제도다. 지난해 국정원 증거 조작 사건 이후 대공 전문검사 양성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대공 전담검사제를 만들게 됐다. 이미 검사 공모에 들어갔다는 것이 검찰 측 설명이다.

대공 전담검사제에는 황교안 장관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황 장관은 공안통답게 검찰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사회 안전 유지’로 인식하고 있다. 황 장관은 지난 10년간 검찰 내에서 공안 라인이 소외되면서 제 역할을 못했다고 여기고 있다. 황 장관은 고검장 시절 교회 강연을 통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공안 검사들이 대거 한직으로 밀려난 일을 두고 당시 검찰 인사를 ‘환란(患亂)’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자신이 물러난 후에도 부침 없는 공안 조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나가겠다는 생각을 관철시킨 것이다.

대공 전담검사제가 안착되면 공안 검사들은 지방 근무 없이 수도권에서만 근무할 수 있는 ‘특혜’를 누리게 된다. 이를 통해 엘리트 검사들을 공안으로 유인하고 공안 검사의 승진 트랙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공안 검사들을 양성해낸다는 복안이다. 이는 향후 검찰의 수뇌부가 공안통으로 채워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수통 검사의 경우 중수부라는 구심점이 없어져 한창 주가가 높을 때 변호사 개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공안통은 개업을 해서 사건 수임이 쉽지 않은 마당에 ‘커리어 패스(경력 관리)’를 할 수 있는 기회까지 주어진다면 끝까지 검찰에 남아 요직을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10년간 특수통이 압도해온 검찰 권력의 주도권이 공안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공안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특수통’들은 어디서 뭐 하나 


검찰의 이번 2월 정기 인사를 통해 공안통들이 요직을 꿰찼다면 특수통은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물론 정윤회 문건 수사 등 ‘청와대 하명 수사’ 논란을 일으킨 사건을 맡았던 일부 특수통들은 ‘보은 인사’로 검찰 요직에 남았다. 그러나 이른바 박근혜정부의 ‘역린’을 건드린 채동욱 전 총장 시절을 주도했던 특수통들은 여전히 한직에 머물러 있다.  

박근혜정부 첫해인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수사했던 윤석열 대구고검 검사(당시 특별수사팀장)와 박형철 대전고검 검사(당시 부팀장)는 이번 인사에서도 고검을 벗어나지 못하고 나란히 유임됐다. 특수수사에서 잔뼈가 굵었던 이들에게 수사권이 없는 고검 검사 발령은 무사에게 칼을 빼앗는 것과 같다는 게 검찰 안팎의 중론이다. 사실상 퇴진 압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서울고법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하면서, 특별수사팀의 명예는 회복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검찰 일각에서는 윤 검사 복권 애기가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윤 검사는 물론 박 검사도 이번 인사에서 제외됐다.

채동욱 전 총장 시절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를 이끌었던 여환섭 검사는 그나마 이번 인사를 통해 대검 대변인으로 중앙에 복귀했다. 그러나 특수통으로 이름 높았던 검사를 수사 현장에서 한 발짝 떨어진 대변인에 임명한 것을 놓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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