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편과 시모 독살한 엽기녀 “여기서 멈춰 다행”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5.03.0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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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액 보험금 노리고 가족 3명 살해한 40대 가정주부의 패륜

경기 포천의 한 40대 여성이 가족들을 잇달아 독살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3월3일 경기경찰청 제2청 광역수사대는 피의자 노 아무개씨(44)를 살인 등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노씨는 독극물을 타 먹이는 수법으로 이혼한 전 남편, 이후 재혼한 남편과 시어머니 등을 잇달아 살해했다. 두 남편이 숨진 후 거액의 사망보험금을 수령했으며, 이후 친딸에게까지 독극물을 먹여 입원보험금을 타내기도 했다는 사실이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이 사건은 ‘억대 보험금을 노린 패륜 범죄’로 알려지며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보험 범죄는 목적적·계획적인 성격을 갖기 마련이다. 보험금을 타내겠다는 뚜렷한 목적을 바탕으로,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갖추고 범행을 저지르게 된다. 그런데 노씨의 연쇄적 범행 중에는 ‘목적’ 면에서 보험 범죄로 분류되기 어려운 것도 있다. 보험금 수령을 기대할 수 없었던 시어머니에게도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이 사건이 단순한 보험 범죄 이상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3월3일 살인·살인미수·존속살해·사기 혐의로 구속된 노 아무개씨가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전 남편과 시모에 대한 분노가 범행 기폭제”

4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사이에 같은 수법의 범죄 행위가, 그것도 피의자 가족 내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났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보험 범죄자가 보험회사와 수사 당국의 의심을 살 가능성이 큰 상황을 버젓이 ‘계획’한 셈이다. 그럼에도 범행은 사건 이후 수년이 지난 시점에야 겨우 세상에 드러났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검거 이후 범행을 시인한 피의자 노씨의 경찰 진술과 중간수사 발표 내용을 바탕으로 사건의 전말을 재구성했다.

피의자 노씨는 자신의 삶이 불우했다는 취지로 경찰에 진술했다. 어린 시절부터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아버지의 폭행에 시달리며 자랐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면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20대 초반에 결혼한 남편 김 아무개씨(사망 당시 45세)의 폭력·외도 등으로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다. 결국 2008년 경제적 이유 등으로 이혼하고 따로 살았다. 이혼 전 경제적 여건은 그리 풍족하지 못했다. 김씨는 결혼 전부터 19건의 보험에 가입돼 있었고, 사망하기 5~6년 전에 4건의 생명보험에 가입해 약 320만원에 달하는 월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었다. 지인 등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유롭지 않은 형편에 과다한 보험료를 지출하는 것을 두고도 피의자 노씨는 전 남편과 자주 다퉜다고 한다.

노씨는 전 남편 김씨를 살해한 동기에 대해 “이혼한 뒤에도 김씨가 자주 돈을 요구했다”고 진술했다. 노씨 명의의 땅이 있다는 사실을 빌미로 이혼 후 지속적으로 돈을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사건 수사를 담당한 광역수사대 관계자는 “불행했던 개인사, 남편과의 결혼생활 및 이혼을 거치며 쌓인 분노가 범행의 기폭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김씨 사망 시 수령할 수 있는 억대의 보험금도 유혹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노씨는 2011년 5월 김씨의 집 창고에 있던 맹독성 제초제 일부를 냉장고 안 음료수병에 넣어두었다. 이를 마신 김씨가 사망했다. 당시 경찰은 생활고에 시달리던 김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수사를 종결했다. 노씨는 보험 수익자인 미성년자 아들을 대신해 4억5000만원 상당의 보험금을 수령했다.

노씨의 두 번째 범행은 그로부터 2년 후에 이뤄졌다. 2013년 1월의 일이다. 대상은 2012년 3월 재혼한 남편의 어머니 홍 아무개씨(사망 당시 79세)였다. 수법은 전과 같았다. 노씨가 거주하는 곳은 포천의 농가였다. 제초제를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노씨는 범행 동기에 대해 “나를 무시하면서 내 아이들까지 싫어했다”고 진술했다. 노씨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홍씨에 대한 범행은 보험 범죄와 무관하게 시어머니 개인을 향한 증오에 따른 것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홍씨의 죽음으로 발생한 보험 수익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어머니 홍씨에 대한 독살 사실은 범행 직후 드러나지 않았다. 홍씨가 폐질환으로 인한 질병으로 사망한 것처럼 위장됐기 때문이다. 제초제 중독 증상은 외형상 폐질환과 유사하다고 알려져 있다. 일반 병원에서 독극물 관련 조사를 엄밀히 수행하지 않는 점을 노씨가 악용한 것이다. 그의 범행이 은폐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실제로 이번 사건 수사가 본격화하기 전까지도 홍씨는 그냥 병으로 죽은 것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뒤늦게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매장됐던 홍씨의 시신을 감정한 결과, 독성이 검출되면서 ‘독살’의 실체가 확인됐다.

그로부터 7개월 후, 노씨는 재혼 남편인 이 아무개씨(사망 당시 43세)도 살해했다. 세 번째 범행이다. 음식물에 수차례에 걸쳐 제초제를 조금씩 넣는 수법을 썼다. 마찬가지로 범행 직후 독살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전 남편 김씨 때보다 더욱 계획적인 보험 범죄에 가까웠다. 김씨 살해의 경우 이미 사망 5~6년 전에 들어 있던 생명보험을 ‘이용’했던 데 반해, 재혼 남편 이씨의 경우 사망 1~2년 전 2건의 생명보험에 추가로 가입할 것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역시 노씨는 보험 수익자인, 이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한 살배기 아들을 대리해 5억3000만원 상당의 보험금을 수령했다.

피의자 노씨의 집에서 범행에 사용한 제초제·그릇 등이 발견됐다. ⓒ 연합뉴스
딸에게도 몰래 제초제 탄 음식 먹여

노씨는 두 남편의 사망으로 얻은 약 10억원 상당의 보험금 중 일부를 금괴와 차량 구입, 집 수리비 및 생활비 등에 사용했다. 사치성 소비도 있었다. 백화점에서 하루에 수백만 원씩 쇼핑을 하기도 했다. 2000만원 상당의 고급 자전거를 구매해 자전거 동호회 활동에 참가하기도 했다. 겨울철에는 스키를 즐기기도 했다. 노씨는 재혼 남편 이씨를 살해한 것에 대해 “보험금 수령 목적으로 독을 먹였다”고 인정하면서도 고의성은 부인했다. “입원보험금을 타낼 계획이었으며,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노씨에게 이씨를 살해할 의도가 없었는지 여부는 향후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규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에 대해 경찰 수사 담당자는 “설령 노씨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가 있다”고 말했다.

분노로 시작된 독극물 살인, 하지만 의외로 경찰 수사는 허술했고, 수억 원대의 보험금까지 자기 수중에 돌아오자, 노씨의 범행에는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았다. 그는 구속 직후 “날 붙잡아줘 고맙다. 여기서 멈추게 된 게 다행”이라고 진술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7월, 첫 남편에게서 얻은 딸(20)에게도 몰래 독을 먹였다. 음식물에 제초제를 섞는 수법이었다. 노씨는 “입원보험금을 수령하기 위해서였다”고 진술했다. 노씨의 딸은 폐에 고통을 호소하며 최근까지 3회에 걸쳐 입원 치료를 받았다. 노씨는 딸을 통해 입원보험금 700만원을 수령했다. 경찰은 노씨가 전 남편 김씨의 어머니 채 아무개씨(91)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으로 살해를 시도한 혐의를 포착했다.

스스로 불행한 삶을 살아왔다는 피의자에게 ‘독살’은 이를 극복하게 하는 그릇된 도구였다. 전 남편과의 악연을 끝냈다. 갈등 관계에 있던 전 시어머니를 세상으로부터 지웠다. 쉽게 얻기 힘든 거액의 돈을 손에 쥐고 ‘살고 싶었던 삶’을 살아보기도 했다. 인간으로서 포기하지 말아야 할 기본적인 가치를 외면하면서다. 그 결과 노씨는 스스로 낳은 딸의 밥에도 독을 넣는, 극단적인 패륜으로까지 나가고 말았다.

3건의 살인과 2건의 살인 미수. 피의자 노씨가 불과 4년 사이에 저지른 혐의가 있다고 파악된 범행들이다. 강력범죄 전과가 없었던, 평범했던 가정주부였던 피의자는 왜 이토록 윤리적으로 파산하게 된 것일까. 향후 검찰 수사 및 법정 공판 등을 통해 정밀한 사실관계 파악, 피의자 심리 심층 분석 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현재의 피의자 진술 및 중간수사 결과를 넘어서는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새로 드러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포천 보험금 독극물 연쇄 살인’ 사건 피의자 노 아무개씨가 두 남편과 시모, 친딸을 대상으로 저지른 범행은 ‘강력형 보험 범죄’에 해당한다. 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자해·살인·상해 등을 고의로 저지르는 보험 범죄를 말한다. 금융감독원 통계에 따르면, 최근 강력형 보험 범죄의 적발 금액이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보험금을 목적으로 ‘살인·상해’를 일으킨 범죄의 적발금이 2011년 46억4500만원에서 2013년 98억3500만원으로 늘어난 것이다. 전체 보험 범죄 적발 금액 중 차지하는 비율도 1.1%에서 1.9%로 늘어났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2월 말 ‘2014 보험 범죄 형사판례집’을 발간하며 ‘수법의 흉포화’가 최근 보험사기의 한 경향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뒷받침할 몇 가지 강력형 보험 범죄 사례도 소개했다. 2012년에는 남편이 처의 명의로 사망보험금이 보장되는 보험 6개에 가입한 후 계곡에서 야영 중인 처를 살해하고 익사로 위장한 사건이 발생했다.

2013년에는 한 중소기업 사장이 직원을 죽여 보험금을 타내려 했던 사건이 발생했다. 회사 경영 상황이 악화돼 채무가 8억원에 이르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사장 김 아무개씨는 의료실비 및 가입 2년 후 퇴직금이 나오는 보험에 가입시켜준다며 한 직원의 동의를 얻었다. 실제로는 사망보험금 26억9200만원이 지급되는 종신보험이었다. 김씨는 직원을 사무실 내 물품창고로 유인하고 둔기로 뒤통수를 내리쳐 살해한 뒤 보험금을 타내려 했다.

김영진 금융감독원 보험조사국 조사지원팀장은 “보험금을 목적으로 가족 및 지인을 살해하는 것은 강력형 보험 범죄의 고전적 유형으로 최근 발생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며 “보험 범죄는 일반 사기 범죄에 비해 실제 양형에서 상대적으로 약하게 처벌되는 경향이 강하다. 보험 범죄의 심각성을 감안해 처벌 규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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