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달라붙는 불청객 ‘종북’, 문재인은 괴로워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03.17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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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종 습격 사건’ 후 지지율 하락 4·29 재·보선 영향 미칠까 촉각

“문재인 대표는 이번이 (대선) 마지막이다. 국민들에게 기회를 세 번이나 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나. 오는 4월 재·보선과 내년 총선까지 무난히 치러내야만 청와대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이다.” 한 야당 관계자가 전한 이 말은 지금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문 대표 주변에서는 “문 대표의 성향으로 볼 때 만약 2017년 대선에서 실패한다면 깨끗이 물러날 사람이지, 또 하겠다고 덤벼들 사람은 아니다”고 말한다.  

지난 2월8일 새정치연합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문 대표의 앞날이 ‘레드카펫’보다 ‘가시밭길’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러나 문재인호(號) 출범 한 달의 성적표는 기대 이상이다. 일부 진보층의 비판도 있지만, 중도 성향을 위한 ‘우클릭’ 행보는 자신을 향한 ‘강경 좌파’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데 효과를 나타냈다. 당내 탕평책으로 ‘친노 패권주의’라는 이미지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났다.

ⓒ 시사저널 포토
이런 점은 여론조사 지지율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새정치연합 지지율은 문 대표 취임 전인 2월 첫째 주 26.7%에서 취임 직후인 2월 둘째 주엔 31.8%로 상승했다. 2월 셋째 주에는 33.8%를 기록해, 새누리당을 0.9%포인트 차이로 턱밑까지 추격하기도 했다. 문 대표의 차기 대권 후보 지지율도 수직 상승하며 2위권을 여유 있게 따돌린 채 단독 1위를 질주했다.

이 분위기대로라면 문재인호의 첫 번째 시험대인 4·29 재·보선 승리는 어렵잖아 보였다. 마침 재·보선 지역 4곳 중 애초 3곳은 야권 지지 성향이 강한 곳이어서 분위기도 좋았다. 하지만 순항하던 문재인호는 뜻하지 않은 암초에 부딪혔다. 3월5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피습 사건이 터진 것이다.

새누리당과 보수 세력의 ‘종북몰이’가 정국을 뒤덮었다. 새정치연합을 ‘종북 숙주’라고 지목하는 여당 인사의 발언까지 나왔다. 여론도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이 일어난 3월 첫째 주의 경우, 한때 20%대까지 추락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40%에 육박할 정도로 상승했고, 새누리당 역시 오름 곡선을 그렸다. 반면 탄탄대로를 걷던 새정치연합과 문 대표 지지율은 문재인호 출범 후 최저치까지 빠졌다. 

종북 논란이 불거지면 이념 성향별 지지층 이동이 두드러진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보수 정당, 즉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결집’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진보 성향 유권자들의 경우 종북몰이 반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새정치연합이 득을 보지는 못하고 있다. 미국 대사 피습 사건 후 유보층을 포함한 중도 성향은 무당층으로 이탈하거나 오히려 이념 스펙트럼상 더 좌측인 정의당으로 옮겨간 것으로 나타났다.

문 대표로서는 큰 악재를 만난 셈이다. 문 대표는 이미 종북 논란으로 인해 한 차례 상처를 입은 바 있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터진 ‘NLL 포기 발언’ 논란이 바로 그것이다. 대선을 2개월여 앞둔 2012년 10월8일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은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NLL 포기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간 야권 후보 단일화만 이뤄지면 야당의 승리가 기대되는 분위기였다. 이때 여당이 꺼낸 히든카드가 ‘종북’이었다.

물론 NLL 포기 발언 논란이 문 대표 지지율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은 18대 대선에 대해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복지 등을 제시, 사회·경제적 정책 차이가 희미해지면서 이념·안보·종북 논쟁 등이 더 부각됐다. NLL 논란이 안보에 대한 불안 심리를 자극했다”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종북·안보 이슈가 당락을 가르는 ‘캐스팅보트’가 됐다는 것이다.

미국 대사 피습 후 지지율 여 ‘상승’,  야 ‘하락’

이는 4·29 재·보선에도 적용될 수 있다. 문 대표는 취임 이후 중도층을 겨냥한 외연 확대 행보에 주력하고 있다. ‘유능한 경제정당’을 모토로 민생에 올인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는 여당 역시 마찬가지다. 경제 이슈로 여야가 격돌했을 경우, 새정치연합이 차별화할 수 있는 부분이 딱히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 안보 불안 심리까지 더해진다면 4·29 재·보선이 18대 대선의 재탕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재·보선의 경우 새정치연합 지지층이라고 할 수 있는 젊은 층의 투표율이 낮고, 젊은 층 역시 안보 이슈에서만큼은 보수적인 투표 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진행형인 당내 계파 갈등 역시 문 대표로선 골치 아픈 부분이다. 당 대표 선출 당시 ‘비노(非盧)’ 진영에서는 문 대표가 당선된 것이 “오히려 잘됐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흘러나왔다. 한 비노 진영 의원은 “문(재인)이 당 대표에 오른 것은 이를테면 ‘독이 든 성배’와 같다. 4월 재·보선이든 내년 총선이든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비노 측에서 대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면 친노들이 책임론을 내세워 또다시 대선을 앞두고  당권을 노렸을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지금 ‘문’이 대표로 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실축한다면, 반대로 친노가 책임론을 뒤집어쓸 수 있는 것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내 불협화음은 4·29 재·보선을 목전에 둔 지금부터 터져 나오고 있다.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의 새정치연합 탈당과 광주 서 을 무소속 출마는 문 대표의 등에 비수를 꽂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만약 새정치연합이 당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광주에서 패배한다면, 이는 두고두고 문 대표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현 광주광역시장 역시 ‘안철수계’로 통하는 윤장현 시장이고, 전남도지사는 ‘손학규계’로 분류되는 이낙연 지사다.

천 전 장관은 3월11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당선이 되더라도 복당은 없을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오히려 광주·전남을 중심으로 새정치연합에 맞서는 신당을 만들 결심을 내비쳤다. 그는 “문 대표가 대권 주자 행보만을 보이고 있다. 당을 어떻게 쇄신하고 지지를 얻어 수권 정당을 만들지 고민하지 않는다”고 날 선 비판을 가했다(30쪽 기사 참조).

한자리 앉은 안철수·박원순·안희정

여기에 문 대표와 각을 세우고 있는 김한길·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문 대표의 4·29 재·보선 전략 공천 배제 방침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며 “당 대표는 결단하고 책임지는 자리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라도 이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만약 경선으로 선출된 후보가 패할 경우, 문 대표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보다 앞서 내년 총선의 공천 실무를 맡을 주요 보직인 수석사무부총장·전략기획위원장에 친노 인사가 임명되면서 ‘말뿐인 탕평 인사’라는 비노의 반발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대권 재수생’인 문 대표는 여야를 통틀어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러나 문 대표의 청와대행은 멀고도 험난하다. 그 첫 번째 관문인 4·29 재·보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3월11일 새정치연합 내 초·재선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의 ‘더미래연구소’ 창립식에 축사를 하기 위해 나란히 자리를 한 안철수 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모습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들은 문 대표가 대권 고지를 향한 1차 관문에서 반드시 넘어야 할 당내 유력 경쟁자들이다. 공교롭게도 이날 문 대표는 지방 일정을 이유로 불참했다. 


‘캐스팅 보트’ 중도층, 안보이슈에 오른쪽으로

오는 4.29 재보선을 비롯해 2016년 제20대 총선, 2017년 제19대 대선의 화두는 ‘중도층 흡수’다.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은 앞으로의 선거에서 45~55세를 당락을 결정하는 캐스팅 보트로 지목하며 “이들은 개혁을 바라지만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의 개혁을 희망하는 ‘합리적 중도’의 특성을 띨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씽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소 역시 ‘중원장악 보고서’를 통해 “새정치연합은 서민의 정당만을 표방해선 안 된다. 중도층, 중산층, 중년 지지자들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여야는 민생을 전면에 내세우며 경제 살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여야가 경제정책에서 큰 차별점을 보이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난 18대 대선처럼 당락을 좌우하는 결정적 3%의 차이는 결국 다른 곳에서 야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안보 이슈도 이 중의 하나다.

안보 이슈가 터지면 보수층과 진보층은 각자가 지지하는 이념 정당으로 결집하는 모습을 보인다. 진보층에서는 보수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탈자가 많이 발생하기는 한다. 그러나 결국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중도층의 움직임이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을 보면 중도층이 안보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피습사건 이후 중도층의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지율은 급등한 반면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은 정확히 반대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 역시 중도층의 보수화로 읽을 수 있다. 국가정보원이 이 전 의원을 강제 구인한 2013년 9월4일을 기점으로 여당과 야당의 지지율 곡선은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NLL 대화록 실종 사건도 마찬가지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2013년 7월25일부터 새정치연합의 중도층 지지율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지만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60%, 새누리당은 40%를 돌파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는 위기 때마다 안보 이슈를 적극 활용했다는 비판을 들어왔다. 보수층 결집뿐만 아니라 중도층의 보수화를 노린 것이다. 앞으로 다가 올 선거에서도 안보 이슈가 적극 활용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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