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포기하면 욕먹어야 돼?”
  • 이은선│매거진M 기자 ()
  • 승인 2015.03.2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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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현재 그 자체를 들여다본 영화 <소셜포비아> <스물>

몇 년 전 독립영화제 출품작 심사를 보던 한 영화인은 괴롭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요즘 젊은 감독이 다룬 청춘영화의 8할은 다 재개발지역이나 고시원에서 라면만 먹는 얘기다. 젊은 애들을 둘러싼 상황이 어렵다는 것은 알겠는데, 패배의식에 절어서 계속 ‘우리가 이렇게 힘들어요’라고 주장하는 영화만 쏟아지는 느낌이다.”

그나마 독립영화에서는 비록 암울하나마 청춘의 현재를 조망하는 시도가 이어졌지만, 상업영화의 상황은 또 달랐다. 청춘의 이야기를 다룬 상업영화는 아예 씨가 마르거나 애써 현실을 비껴갔다. 청춘 스타 이종석과 박보영을 앞세운 <피 끓는 청춘>(2014년)은 학창 시절에 대한 기성세대의 향수를 재연하는 영화에 가까웠고, <노브레싱>(2013년)은 라이벌 관계인 수영 선수를 중심으로 순정만화 소재 같은 이야기를 ‘예쁘게’ 풀어나간 영화였다. 남들은 하찮다고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한다는 것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이야기한 <족구왕>(2014년)이 그나마 가뭄에 단비 같은 즐거운 청춘영화였지만, 저예산 독립영화라는 한계상 상업영화처럼 폭넓은 관객을 확보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영화 ⓒ NEW 제공
20대를 포장하지 않고 들여다보다

20대 이야기를 다룬 영화 두 편이 나란히 걸리는 최근 극장가 상황은 그래서 꽤 흥미롭다. 두 편 다 30대 감독이 20대의 현재를 이야기하는 영화이되 소재와 표현 방식은 확연히 다르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소셜포비아>와 <스물>은 삼포 세대를 넘어 오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집 마련을 포기하는 세대)로까지 가버린, 단군 이래 가장 척박한 현실에 가로막혀 있는 요즘 20대를 포장하지 않고 들여다보는 시도다. 청춘영화가 있는 그대로의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다.

<소셜포비아>의 모티브가 된 것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벌어졌던 실화다. 감독은 결승에서 패한 선수를 비방하는 악플을 단 한 네티즌의 신상이 털리고, 그의 집 근처 PC방에 그와 ‘현피’(‘현실’의 앞 글자와 Player Kill의 앞글자인 P를 붙인 합성어. 인터넷상에서 벌어진 다툼이 실제 싸움으로 이어지는 것)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던 사건을 보고 충격을 받아 시나리오를 썼다. 

이 영화는 젊은 세대가 몸담은 세계 그 자체에 주목한다.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인터넷은 세대를 가르는 일종의 기준점 같은 것이다. 가상 세계를 낯선 것으로 받아들이는 기성세대가 있는가 하면, 날 때부터 이 환경 자체를 물이나 공기처럼 받아들이는 어린 세대가 있다. 1983년생인 홍석재 감독은 PC통신부터 월드와이드웹(www), 그리고 다시 SNS 환경을 겪은 세대다. 이 영화에는 그가 직접 관찰하고 겪으며 피부로 느꼈던 문제의식이 현실적인 형태로 녹아 있다.

20대 초반인 지웅(변요한)과 용민(이주승)은 군인 자살 소식에 악플을 단 여성 네티즌 레나의 도발에 분노한다. 이들은 레나에게 앙심을 품은 몇몇 다른 이들이 주도해 만든 ‘현피 원정대’에 가담한다. 하지만 현피 당일 인터넷 생방송까지 해가며 레나의 집에 당도한 이들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천장에 목을 매단 채 죽어 있는 레나의 시체다. 타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순식간에 이들은 가해자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몸이 된다. 인터넷상에서는 이미 네티즌들이 레나를 죽였을 법한 인물을 골라 무자비한 마녀사냥을 시작하고 있다.

<소셜포비아>가 SNS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주목하는 것은 노량진 고시촌이다. 주인공들은 고시원에 살며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또 그런 얘기인가’ 싶던 이 영화가 비범한 지점은 따로 있다. 고시에 매달리며 거리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남루한 20대의 모습도 비추지만, 익명성이라는 달콤한 전제 뒤에 숨어 섬뜩한 눈빛을 내비치는 그들의 모습 역시 번갈아 비춘다는 점이다. 그것은 시대가 낳은 독특한 괴물의 모습이다. “에고(ego)는 강한데 그걸 지탱할 알맹이가 없는 거. 요즘 애들은 다 그렇죠.” 영화는 이런 대사로 핵심을 찌르는 가운데, 실체가 없는 것을 자신들의 세상으로 인식하던 젊은이들이 애써 모른 척하던 ‘진짜 세상’을 마주하는 순간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는 스마트폰과 인터넷 방송, SNS가 일상이 된 새로운 시대의 근본적 공포다.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이 영화는 그 자체로 SNS 시대에 걸맞은 존재론이기도 하다.

이병헌 감독의 <스물>은 청춘의 ‘아무것도 없음’에 주목한다. 세 주인공은 현실에서 튀어나온 듯한 인물이다. 목표 하나 없는 잉여 세대의 전형 치호(김우빈), 만화가가 되고 싶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빠듯한 동우(이준호), 스펙 쌓기와 대기업 입사가 목표인 대학생 경재(강하늘)가 그들이다. 세 사람에게 거창한 사건 같은 것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암담한 현실, 그걸 별것 아니게 만들어버리는 하찮은 농담, 부실한 안주로나마 마시고 또 마시는 술자리가 전부다. 이들에게 특별한 사건이란 기껏해야 술기운에 얻은 이상한 용기로 싸움에 가담하는 정도인데, 그나마도 지는 싸움에 그친다.

“너 자살해라. 청춘영화에 자살하는 주인공 꼭 나오잖아. 그럼 우리의 고뇌에는 한층 무게감이 실리는 거야.” “나 내일 알바비 나오는데.” “그럼 마약하자.” “비싸.” <스물>의 대사 한 토막이다. 이런 식으로, 이 영화는 미디어가 만든 청춘의 환상을 대놓고 부순다. 물론 이들에게도 나름의 고난은 있다. “왜 포기하면 욕먹어야 돼? 김연아·박태환 되려다 포기한 애들은 다 욕먹어야 돼? 포기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하지만 이렇게 상황을 욕하며 울분을 토하던 아이들은 “(이런 걸로) 울기는 좀 애매하다”며 시답잖은 농담으로 바로 말을 바꾼다. 이들은 국적을 원망하라는 진담 반 농담 반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던지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고난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뭐가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 그 자체를 헤쳐나간다.

영화 ⓒ CGV아트하우스 제공
20대가 ‘내 얘기’라고 느낄 만한 영화

이 영화는 시종 배꼽을 빼는 유머를 던지면서 각자의 꿈보다 포기나 틀에 박힌 진로 계획 따위를 먼저 배운 젊은 세대를 토닥인다. 이병헌 감독이 그린 스무 살은 애매하게 뭐가 없는 나이, 남들은 좋은 나이라고 하지만 정작 그 시기를 통과하는 이들은 뭐가 없어서 괴로운 나이 그 자체다. 실체 없는 열정만을 강요당하는 요즘 20대가 진심으로 ‘내 얘기’라고 느낄 만한 영화가 등장한 것이다.

향수 어린 과거도, 기성세대를 향한 단순한 울분도 아닌 청춘의 현재 그 자체를 들여다본다는 점만으로도 <소셜포비아>와 <스물>은 올해의 발견으로 이야기될 만하다. 씨가 마른 한국 청춘영화 상황을 생각했을 때 이 두 편의 등장은 더욱 반갑고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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