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부자 ‘억’ 소리 나는 슈퍼카에 홀리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5.04.0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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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카 시장 매년 20~30% 성장…불경기라는 말 무색

대당 가격이 최하 1억원대의 슈퍼카 시장이 폭발하고 있다. 지난해 수입차협회 통계를 보면 대당 2억~3억원대의 벤틀리가 322대나 팔렸다. 전년 대비 96.4%나 늘어났다. 그 결과 지난해 전 세계 200여 개 벤틀리 딜러 중 서울 청담동에 쇼룸을 둔 벤틀리서울이 매출 2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출시된 벤틀리 플라잉스퍼 V8은 대당 2억5000만원부터 시작되는데 세계를 통틀어 서울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 대당 최소 7억원인 롤스로이스는 전년 대비 50%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탈리아의 럭셔리카 대명사인 마세라티는 지난해 국내에서 723대나 팔렸다. 마세라티의 2013년 판매 실적은 127대. 보통 2억~3억원대의 콰트로포르테나 그란투리스모 모델이 주력이던 마세라티는 지난해 1억원대의 ‘저렴한’ 모델 기블리를 앞세워 5배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초고가 슈퍼카가 한국에서 잘 팔리자 ‘007 본드카’로 유명한 영국산 럭셔리카 브랜드인 애스턴마틴도 국내 시장에 상륙했다.

3월20일 서울 중구 주한 영국대사관에서 열린 애스턴마틴서울 론칭 행사에서 DB9, 뱅퀴시, 라피드 S 모델이 선보였다. ⓒ 시사저널 최준필
포르쉐, 매출 늘자 직접 판매에 나서

지난해 가을 의류회사인 크레송이 병행수입업체인 애스턴마틴서울을 세워 판매에 나섰다. 3월 중순에는 영국의 애스턴마틴과 딜러 계약을 맺은 기흥인터내셔널이 판매를 시작했다. 두 회사는 현재 ‘애스턴마틴서울’이라는 상표를 놓고 서로 사용금지 가처분 소송을 내는 등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국내 시장이 달궈지자 직접 진출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독일 폭스바겐 계열의 고급차 브랜드인 포르쉐는 2012년 이후 매년 국내 매출이 20~30%씩 늘어나자 지난해 1월 한국 법인을 세워 직접 판매에 나섰다. 최근 효성그룹이 인수 의사를 밝힌 FMK(페라리·마세라티 국내 공식 수입 판매원)도 마세라티 쪽에서 ‘한국 시장 매출 확대를 위한 강력한 의지’를 밝히고 있어 효성 인수 이후 단독 법인을 세울지, 기존의 FMK 체제로 갈지 주목되고 있다.

한국 시장에서 동남아시아·태평양 지역 판매 평균 성장률을 훌쩍 뛰어넘는 성과를 내자 마세라티 본사는 일본 법인장이던 파브리지오 카졸리에게 한국 업무까지 맡겼다. 지난 2월 방한한 카졸리 총괄은 “한국은 아태 지역 판매량의 36%를 차지하는 중요한 시장이다. 마세라티의 한국 성장세에 맞춰 새로운 판매사를 선정해 전시장과 서비스망을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3월 초 업체 두 곳을 새로운 딜러로 선정했다.

마세라티가 직접 진출하고 딜러를 추가하면 FMK는 수입·판매사에서 판매사로 역할이 한정된다. 이 모든 게 효성에 매각한다는 발표를 하기 직전에 이루어진 일이라 효성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인수를 추진하진 않았을 것이란 게 정설이다. 더구나 FMK의 소유주인 동아원 오너와 효성가는 사돈지간이다. 매각가가 200억원이라는 것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FMK는 2012년 매출 360억원에 11억6000만원의 손실을 봤고, 2013년엔 539억원 매출에 10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2014년 실적은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마세라티가 전년에 비해 5배 넘게 팔린 만큼 매출액과 순익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매각가 200억원에 대한 의구심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효성 측은 “FMK의 기존 지위가 바뀔지 여부 등 세부 사항은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와병 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마이바흐를 자주 이용했다. 신년하례식(2012년, 왼쪽 사진)과 선대 회장 추모식(2012년)에 마이바흐를 타고 온 이건희 회장. ⓒ 연합뉴스
벤츠·BMW도 슈퍼카 시장 공략 나서

효성은 더클래스효성(벤츠)·더프리미엄효성(렉서스)·효성도요타(도요타) 등 3개의 딜러십을 갖고 있다. 이 중 매출이 가장 큰 것은 벤츠를 판매하는 더클래스효성이다. 효성 관계자는 “페라리나 마세라티가 럭셔리카 분야에서 매출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FMK 인수로 시너지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효성의 슈퍼카 시장 진입은 상징적이다. 국내 슈퍼카 시장이 대기업도 진출할 만큼 볼륨이 커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국내 경기는 나쁜데 왜 슈퍼카 시장은 커지고 있을까. 한 수입차 딜러는 “부자들의 차별화 욕구가 커지고 있고, 6000만원대부터 시작하는 벤츠 E클래스나 BMW 5시리즈가 팔릴 만큼 팔리면서 성장 곡선이 둔화되고 있기 때문에 슈퍼카 성장세가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실제로 슈퍼카 소비자들은 옵션 선택에 따른 가격 차이가 큰데도 특별한 옵션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외관과 내관, 시트 색깔과 내부 치장재로 쓰이는 원목 무늬까지 남과 다른 맞춤형 차를 요구한다는 것. 

이렇게 시장이 재편되자 고급차 브랜드인 벤츠와 BMW도 반격에 나서고 있다. 벤츠는 기존에 별도로 판매되던 6억원대의 마이바흐를 단종하고, 벤츠의 최고급 모델인 S클래스에 끌어들여 ‘메르세데스 S클래스 마이바흐’라는 이름으로 부활시켰다. 국내에는 4월 서울모터쇼에 공개한 후 판매에 들어간다. 4.7L와 6L급 두 가지 엔진이 쓰이고 리무진 모델인 마이바흐 S600 풀만 모델은 기존 마이바흐 62S보다 더 길고 커졌다. 가격은 S600 풀만이 6억원대 중반에서 시작해 기존의 마이바흐 수준이고 ‘저렴한’ 모델은 2억~3억원대에서 시작한다. 마이바흐는 삼성 이건희 회장이 타는 차로 유명해졌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판매에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듯 2012년에 단종됐다. 벤츠에서 기존보다 진입 장벽(엔트리 모델 가격)을 낮춘 정책이 부자 손님을 좀 더 끌어들일 수 있을지 흥미로운 대목이다.

BMW그룹은 럭셔리카로 산하에 롤스로이스를 따로 운영하고 있지만 2017년께 기존의 최고급 라인인 7시리즈를 넘어서는 9시리즈를 시판할 것으로 알려졌다. 럭셔리 카 시장은 결국 다임러 그룹(벤츠)과 BMW, 폭스바겐(벤틀리)의 대결이 되고 있다.

 

재벌 총수들 ‘마이바흐’ 많이 타 


슈퍼카는 부의 대명사다. 2011년 5월 오리온그룹 담철곤 회장의 비자금 수사 때도 담 회장 일가의 슈퍼카 사랑이 화제가 됐었다. 담 회장은 7억원대의 벤츠 마이바흐를 타고 부인 이화경 사장은 6억원이 넘는 롤스로이스 팬텀, 자녀 통학용으로는 3억원대의 람보르기니 가야르도와 2억원에 가까운 포르쉐 카이엔을 리스해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슈퍼리치의 자동차 소비 수준을 엿보게 했다.

수입차가 대중화됐다고 해도 많이 팔리는 차는 주로 중형급이다. 벤츠 E클래스나 BMW 5시리즈는 주력이 7000만원대 안팎이다. 슈퍼카와는 확실한 가격 차이가 있다.

정확한 규모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국내 최고의 슈퍼카 컬렉터는 삼성 이건희 회장이라는 게 정설이다.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자동차에 해박한 것으로 알려진 이 회장은 국내 자동차 시장의 트렌드세터이기도 하다. 2007년 이 회장이 마이바흐를 구입하자 ‘이건희 차’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고 이후 재계 총수들이 앞 다퉈 사들이는 계기가 됐다. 이건희 회장은 와병 직전까지 옵션을 붙이면 최소 8억원이 넘는 BMW그룹의 롤스로이스 팬텀을 탔다. 부인 홍라희 리움 관장은 남편보다 한 급 아래의 차를 탔다. 아우디·벤틀리 등 좀 더 패셔너블한 자동차를 탄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총수들은 공식적인 자리에 슈퍼카를 타고 등장하지 않는다. 국산 최고급형인 검은색 에쿠스를 타는 게 대체적이다. 특히 대통령 초청 행사 같은 곳에서는 주로 국산 대형차를 이용한다.

마이바흐는 LG 구본무 회장, 한화 김승연 회장, 한솔그룹 이인희 고문이 애마로 이용하고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 허창수 GS 회장,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를 이용하고 있다. 그룹에 벤츠와 BMW 딜러를 두고 있는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과 코오롱그룹 이웅열 회장은 각각 벤츠 S클래스와 BMW 7시리즈를 타고 있다.

관가나 정계를 의식해야 하는 재벌 총수들과 달리 연예인들은 럭셔리 자동차 소비에 거칠 게 없다. 키이스트 대주주이자 배우인 배용준과 콘서트 흥행 보증수표인 이승철, YG엔터테인먼트의 오너 양현석은 마이바흐를 탄다. 마이바흐가 2012년 생산이 중단된 이후 오너 리스트가 늘어나지 않았는데 올해 다시 시판되면서 유명 인사가 리스트에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인과 연예인의 가장 큰 차이는 스포츠카에 대한 선호다. 배용준은 마이바흐 외에도 페라리 599GTB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억원대의 페라리 캘리포니아는 배우 권상우와 아이돌 그룹 JYJ의 박유천이 갖고 있고 JYJ의 또 다른 멤버인 김준수는 페라리 이탈리아를 탄다. 김재중(JYJ)은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의 오너다. 가격은 5억원대. 무르시엘라고의 후속 모델은 아벤타도르로 2011년부터 선보였다. 국내에선 빅뱅의 지디가 2013년 뮤직비디오와 쇼 프로그램을 통해 이 차의 오너임을 공개했다. 가격은 5억7500만원. 아벤타도르는 6.5L V12 엔진에 최대 출력 700마력,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2.9초에 불과한 괴력의 차다.

연예인 중 가장 비싼 차로 꼽히는 것은 배우 박상민의 애마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VT6.0으로 가격(10억원대)도 비싸지만 스페셜 에디션이라는 희소성 때문에 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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