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대권 운명’ 호남이 쥐고 있다
  • 엄민우·이승욱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5.04.0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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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천정배의 재·보선 협공 호남 민심 향배 따라 ‘대세론’ 좌초할 수도

4·29 재·보궐 선거를 한 달여 앞둔 지난 3월 말. 선거를 준비하는 새정치민주연합 내 전략기획통 의원과 당직자들은 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받아들고 충격에 휩싸였다. 재·보선이 치러지는 4곳(서울 관악 을, 인천 서·강화 을, 경기 성남 중원, 광주 서구 을)을 대상으로 여론조사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관악 을을 제외한 3곳에서 모두 패하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야당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광주에서조차 무소속 천정배 후보에게 뒤지는 결과에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해당 조사는 새정치연합 내에서 ‘대외비’로 진행됐다.

충격은 이어졌다. 3월30일 정동영 전 의원이 관악 을에서 ‘국민모임’ 후보로 출마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간신히 앞서던 관악 을마저도 야권 표 분산으로 넘겨줄 위기에 놓인 것이다. “설마” 하던 ‘전패’ 위기감이 새정치연합 지도부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당 내에서는 “처음부터 전략 공천은 없다는 등 원칙론만 강조하더니, 너무 안일하게 대처한 것 아니냐”며 문재인 대표를 향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박은숙
제1야당 대표를 맡은 지 두 달 만에 첫 시험대에 오른 문재인 대표에게 최대 위기가 찾아왔다. 사실상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대권 주자 1위’로서의 입지를 굳힐지, 당내 ‘비노’·비주류 진영의 흔들기에 나락으로 떨어질지 기로에 서기 때문이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역전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키워드는 바로 ‘호남’이다.

새정치연합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에 ‘충격’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한 문 대표의 시름이 다시 깊어지고 있다. 지난 2월 전당대회에서 그는 싸늘한 호남 민심을 체험한 바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광주뿐 아니라 ‘서울의 호남’인 관악 을에서도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가 선두로 나서는 것을 보면, 지금 문 대표에 대한 호남 민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광주와 관악에서 지면 야당 정체성에 금이 간다는 사실을 알기에 문 대표도 당의 정체성을 호남에서 찾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문 대표는 최근 광주 시민들과 접촉면을 넓히면서 동교동계 등 ‘호남 대주주’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등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문 대표와 호남의 간극은 간단치 않다. 양자 간에 소원한 관계는 꽤 세월이 깊다(20쪽 상자기사 참조). 이를 만회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

그나마 문 대표가 걸 수 있는 희망은 광주 시민의 ‘전략적 선택’이다. 최근 각 여론조사 기관에서 발표하는 ‘차기 대권 후보 여론조사’ 결과가 밑바탕이다. 1980~90년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냈던 호남은 이후부터 정권 교체를 실현시켜줄 인물을 전략적으로 선택해 지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02년 대선 때 경남 김해 출신의 노무현 후보를 전폭적으로 밀어준 게 대표적인 예다. 2012년 대선 때도 광주는 ‘새 정치’ 돌풍을 일으킨 부산 출신 안철수 전 대표가 정치권에 뛰어들었을 때 앞장서 지지를 보냈다. 비록 안 전 대표가 낙마했지만, 광주는 대선에서 부산 출신 문재인 후보에게 92%라는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그만큼 호남 유권자들은 정권 교체에 목말라 있는 것이다. 이를 문재인 대표가 얼마나 채워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현재 문 대표는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다. 섣부른 감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세론’을 거론할 정도다. 문 대표는 대권 ‘잠룡’에게 ‘마의 벽’으로 불렸던 30%대 지지율에 진입하는 등 최근 지지율 고공비행을 이어가고 있다. 대선을 2년 6개월 이상 남겨둔 시점에서 30%가 넘는 지지율을 보인 ‘잠룡’은 2010년 박근혜, 2005년 고건, 1995년 이회창 등 3명 정도였다.

4·29 재·보선이 끝나면 내년 4월 총선까지 향후 1년 동안 큰 정치적 이벤트는 없다. 지금의 판세를 크게 뒤흔들 정치권의 변화가 일어나거나, 문재인 선두 체제를 뒤엎을 만큼의 파괴력을 가진 경쟁자가 갑자기 등장하기도 어렵다. 문 대표로선 내년까지 선두 자리에서 독주할 여건이 갖춰진 셈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번 재·보선을 성공적으로 치러낸다는 전제가 있다.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4월1일 광주에 총출동해 가장 많이 외친 키워드는 바로 ‘정권 교체’였다.

문 대표는 시민들에겐 대권 경쟁력으로 어필하면서 호남의 대주주인 동교동계나 박지원 의원 등에겐 ‘읍소’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지난 3월31일 동교동계 인사들은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참배를 마치고 권노갑 상임고문의 재·보선 지원 문제를 놓고 거수투표를 했는데, 이때 참석자들은 만장일치로 ‘지원 반대’에 손을 들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문 대표에 대한 서운함과 반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문 대표는 동교동계에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권노갑 전 의원 등 동교동계 핵심들을 만나 정권 교체에 힘을 보태줄 것을 부탁할 예정이다.

4월1일 문재인 대표가 광주 남구 노인건강타운을 찾아 광주 서구 을 조영택 후보와 함께 점심식사를 배식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이번 재·보선에서 가장 몸값이 높아진 이는 박지원 의원이다. ‘박지원이 호남 선거 유세장을 한 바퀴 돌고 가면 득표율에 0이 하나 더 붙는다’는 다소 과장된 이야기가 떠돌 정도로 호남에서 박 의원의 영향력은 크다. 아직까지 박 의원은 미지근한 반응이다. 문 대표의 요청이 그리 절실하지 않아 보였고, 같은 호남 출신인 정동영·천정배 후보와의 인연도 마음에 걸렸을 것이란 전언이다. 그러나 결국은 지원 유세에 나설 것이란 게 주변과 당의 대체적 시각이다.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은 “만약 박 의원이 지원 유세를 거부했는데도, 새정치연합이 광주에서 이기면 자신의 존재감에 타격을 입게 된다. 또 지면 책임론에 휘말릴 수도 있는 만큼 이래저래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철수·박지원 의원 지원 기대하고 있다”

박 의원은 문 대표와 호남의 관계를 조율할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지난 2·8 전당대회 때 박 의원과의 경선 과정도 문 대표에 대한 호남 사람들의 감정을 나쁘게 했다. 박 의원은 경선 선거운동 당시 ‘친노 패권주의’를 강조하며 ‘호남 소외론’에 불을 붙였는데, 이것이 호남인들로 하여금 문 대표에 대한 소원한 감정을 리마인드시켰다는 것이 호남 지역 정치권 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호남 인사들과 더불어 얼마나 당내 유력 인사들을 선거판으로 끌어들이느냐는 점도 숙제다. 이번 재·보선에서 전략기획위원장을 맡은 진성준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박영선·신기남·정세균 의원 등 수도권에서 개혁적 이미지를 가진 분들이 광주를 도와주시면 특히 큰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의원이나 박지원 의원의 지원도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러브콜을 받은 인물 중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이는 안철수 전 대표다. 그는 문 대표 측의 SOS를 받고 선거 지역을 돌며 유세를 할 계획이다. 일부 지지자들은 과거 문 대표와의 소원했던 관계 등을 떠올리며 “그렇게 적극적으로 할 것까진 없을 것 같다”고 만류하지만, 계파 논란 등에서 벗어나 큰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통 큰 안철수’로 거듭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선거 끝나고도 호남에 진정성 보여야”

이번 재·보선은 문재인 대표로선 분명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전패’를 기록한다 하더라도 당장 문재인 대표 체제가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 체제의 경우, 지난해 7·30 재·보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바 있다. 하지만 당내 기반이 탄탄한 문재인 대표와 사실상 비주류 대표였던 안철수·김한길 체제는 차이가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안철수·김한길 전 대표와 달리 문 대표는 현재 대권 후보 지지율 1위라는 강력한 무기도 갖고 있다.

다만 전패할 경우 ‘비노(非盧)’ 측을 중심으로 ‘흔들기’가 거세지면서 대권 경쟁력에 흠집이 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지난 2월 문재인 의원이 당 대표에 당선됐을 당시부터 비노 측 인사들은 “문재인 대표는 4월 재·보선에서 경쟁력의 한계를 드러낼 것”이란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도 했다. 쉽게 말해 ‘벼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여러 정황을 볼 때 재·보선에서 패배하면 대표직은 유지하겠지만, ‘대세론’이 흔들릴 것이 분명하다. 거꾸로 말하면 재·보선을 성공적으로 치를 경우 대세론은 더욱 가속페달을 밟을 수 있다.

이번 재·보선은 문 대표에게는 위기이자 아킬레스건이었던 호남 민심을 잡고 확실하게 대권 후보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광주의 한 공립대 교수는 “만약 (문 대표가 광주) 선거에 이기고 나서 또다시 호남을 등한시하면 결코 (대권 주자로서) 오래 못 갈 것이다. 선거가 끝나고 호남 지역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고 주문했다. 


문재인 위협하는 ‘호남 신당’ 창당론 


시사저널은 최근 몇 년간 주요 정치 이슈가 있을 때마다 광주지역 민심을 살폈다. 그때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 대해서는 유독 서운함 섞인 이야기가 많았다. 그런 감정이 급격히 커진 시점으로 지난 2012년 대선을 꼽았다. 대선에서 92%라는 몰표를 밀어줬는데도 문 대표가 호남을 홀대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친노’ 그룹 핵심을 이루는 이른바 친노 강경세력이 호남은 당연히 자신들의 텃밭으로 여기는 자만심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정치권에 발이 넓은 광주 지역 대학의 A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광주가 ‘문재인’에게 실망한 것이 뭔지 아느냐.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부산에서 김영삼·노무현에 이어 세 번째 부산 정권을 창출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정작 부산 정권을 창출하겠다던 그가 자신의 고향 부산에선 40%밖에 표를 못 얻어 정권교체에 실패했다. 그런데 광주는 92%씩이나 밀어줬다. 그랬더니 (호남은) 신경 안 써도 저절로 따라오는 곳이라고 여기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이런 소외감을 더욱 구체화시킨 것은 후보 공천 파동이다. 호남 지역 정치인들이 당의 주류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데 큰 영향을 준 부분이다. 광주 지역 정치인들은 호남 인사에 대한 푸대접에 강한 반감을 갖고 있다. ‘박지원계’로 분류되는 호남 지역의 한 정치권 인사는 “지도부가 늘 경선을 한다고는 하지만, 지난 순천·곡성 지역 재·보선의 경우를 보더라도 공천 결과가 지역민들이나 지역 정치인들에게 그리 신뢰를 주지 못했다. 결집과 동원에 강한 친노들은 경선의 도사들이다. 아마 천정배 전 장관도 그런 불리함을 느꼈기 때문에 경선을 거부하고 나갔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천 과정 등에서 호남 인사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 것이다.

이런 지역 정서 속에서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한 ‘신당 창당론’이 나오고 있다. 신율 교수는 “이번 선거가 끝나고 나면 호남 신당론이 대두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번 재·보선에 출마한 천정배·정동영 전 장관을 중심으로 새정치연합에서 소외된 호남 세력을 규합해 새로운 정치 세력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역시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천정배·정동영을 중심으로 한 호남 세력 규합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파괴력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호남 민심은 전국구 정당을 원하지 지역 정당을 원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윤희웅 센터장은 “호남의 민심을 얻으려면 호남을 어루만져줌과 동시에 전국적 지지를 받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새정치연합이 분위기를 타고 있는 상황에서 호남 신당이 얼마나 영향력을 가질지는 의문”이라고 분석했다.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 역시 “결국 ‘호남 자민련’을 만들자는 것인데 전국적 정당으로 나갈 동력이 없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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