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남 회사 봐주려 서둘러 덮었나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04.0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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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플래닛, 벤처업체와 공정위 제소 건 합의 배경 의문

벤처기업 지온네트웍스는 1월15일 SK플래닛을 지식재산권 침해 및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SK플래닛은 SK텔레콤의 자회사다. SK텔레콤이 이 회사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지온네트웍스는 SK텔레콤의 협력업체다. 2013년 1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자사 솔루션인 ‘모비고’를 SK텔레콤 대리점과 판매점에 공급해왔다. SK텔레콤 자회사와 협력업체 간의 갈등이 공정위 제소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2014년 12월 SK텔레콤이 기존 모비고를 대체할 기술 개발에 나서면서 두 회사 간 갈등이 시작됐다. SK플래닛은 인크로스라는 회사에 소프트웨어 개발 용역을 맡겼다. 인크로스는 최태원 회장의 처남인 노재헌 변호사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다. SK플래닛은 압도적인 점수 차로 SK텔레콤의 납품업체에 선정됐다. 기존 사업자였던 지온네트웍스는 자사 기술을 도용당했다며 SK플래닛을 공정위에 제소했다. 지온네트웍스는 공정위 신고서에서 “SK플래닛이 모비고를 베껴 급조한 소프트웨어로 입찰에 참여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크로스 대주주인 노재헌(왼쪽)씨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둘째 딸 민정씨의 해군 사관후보생 입영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뒤는 노재헌씨의 누나이자 최태원 회장의 부인 노소영 관장 ⓒ 연합뉴스

맞소송 엄포에서 합의로 입장 급선회

SK플래닛은 “기술 침해는 없었다”며 지온네트웍스의 주장을 반박했다. 정부 산하 기관인 저작권위원회에서 검증을 하자고 제안했을 정도다. 언론을 통해서도 “지온네트웍스가 잘못된 사실로 여론을 호도한다면 맞고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지온네트웍스는 서울지방경찰청에 SK플래닛을 고소했다. SK플래닛은 공정위 조사와 경찰 수사를 동시에 받을 위기에 처했다.

올해 설 명절을 앞두고 SK플래닛은 지온네트웍스와 접촉을 시도했다. 여러 차례 만나 협의한 끝에 기술 도용 문제를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두 회사의 협상 자리에는 SK텔레콤의 고위 인사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SK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합의를 마치고 지온네트웍스는 공정위 제소와 경찰 고소를 취하했다”며 “외부에는 합의 사실을 공개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SK플래닛 측은 합의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뒷배경은 없었다고 강조한다. 회사 관계자는 “지온네트웍스와의 갈등이 회사에 도움이 안 된다.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진행된 합의였다”며 “그쪽(지온네트웍스)에서도 무리한 주장을 인정하고 합의에 응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 신고나 경찰 고소도 합의를 유도하기 위한 일종의 협상 카드였을 뿐이라고 SK플래닛 측은 주장했다. SK플래닛 관계자는 “지온네트웍스는 그동안 관련 사업을 독점해왔다”며 “SK텔레콤의 납품업체에서 배제되면서 입지가 흔들리자 기술 도용 등을 이유로 압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술 도용은 없다고 자신했던 SK플래닛이 서둘러 합의에 나선 것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특히 협상 과정에 직접적인 분쟁 당사자가 아닌 SK텔레콤 쪽 인사가 참석했고, 합의 사실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는 점에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통신업계에서는 갑작스러운 합의 배경으로 인크로스를 지목하고 있다. 인크로스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인 노재헌 변호사가 50.5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노 변호사의 누나는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는 매형과 처남 관계인 것이다. 

인크로스의 성장 배경에는 SK 계열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인크로스의 전신은 2007년 8월 설립된 솔루션 개발업체 티노솔루션즈다. 2009년까지 이 회사의 매출은 97억원 수준이었다. 티노솔루션즈는 2009년 말 SK 계열사인 크로스엠인사이트의 미디어렙 사업 부문을 인수했다. 회사 이름도 인크로스로 바꿨다. 이듬해 인크로스의 매출은 360억원으로 급증했다. 매출의 80% 이상이 SK 계열사 물량이었다.

인크로스는 2011년 SK텔레콤의 소프트웨어 개발 용역을 하던 이노에이스도 인수했다. 2007년까지 인크로스의 최대주주는 43.05%의 지분을 보유한 최태원 회장이었다. 최 회장은 2003년 터진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건 당시 대대적인 사재 출연 계획을 밝혔다. 이노에이스 역시 워커힐 지분과 함께 사재 출연 대상이었다. 하지만 최 회장은 2007년 초까지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시민단체로부터 비난이 일자 최 회장은 2007년 4월 SK네트웍스에 보유 지분 전체를 넘겼다. 이후 이노에이스는 ‘석연찮은 과정’을 거쳐 처남 회사인 인크로스에 인수됐다. 인크로스의 매출은 860억원으로 늘어났다. 업계 관계자는 “이노에이스는 그룹에서 분리된 후에도 SK텔레콤의 소프트웨어 개발 용역을 전담해왔다”며 “인크로스에 인수되면서 처남 밀어주기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노재헌, 회사 상장되면 200억 차익 

인크로스는 올해 초 상장 계획을 밝혔다. 상반기 안에 준비를 마쳐 하반기에 상장을 추진한다는 것이 인크로스의 계획이다. 이 회사가 상장될 경우 대주주인 노 변호사는 엄청난 상장 차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장외 주식 거래 사이트에서 거래되는 인크로스의 주식은 현재 주당 10만원 안팎”이라며 “상장되면 노 변호사는 200억원 상당의 차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주목되는 점은 SK플래닛과 지온네트웍스의 분쟁에도 이노에이스가 관여했다는 것이다. SK플래닛은 2013년 12월 모비고와 유사한 기능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세이브 앤 싱크’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소프트웨어 개발 용역을 받은 곳이 바로 인크로스다. 인크로스는 당시 팩시스템에 재하청을 줬다. 하지만 인크로스에서 납품받은 제품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서 자체 개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향후 공정위나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인크로스 문제나 최 회장과의 관계가 이슈화될 가능성도 있었다. 이런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는 차원에서 SK플래닛이 서둘러 지온네트웍스와 합의를 시도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SK플래닛 측은 “오해가 있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인크로스의 성장 배경에 대해서는 우리가 말할 입장이 아니다”며 “인크로스 개발 용역은 입찰을 통해 진행된 만큼 문제가 없다. 리스크 방어 차원에서 합의를 한 것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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