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주기] 304명 삼키고 바다에 잠긴 진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5.04.15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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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년 맞아 되돌아보는 5대 과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다. 2014년 4월16일, 인천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초대형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 침몰했다. 온 국민이 염원했다. 밑바닥이 치솟은 채 거꾸로 가라앉는 세월호를 지켜보며 탑승객들이 무사히 구조되기만을 기도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295명의 소중한 생명이 차디찬 시신으로 돌아왔고 9명은 아직도 한 줌 빛조차 들지 않는 캄캄한 바다에 갇혀 있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 1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 슬픔을 넘어 치유와 회복, 희망을 찾아나설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왜 이런 참사가 발생했는지 진상 규명부터 우선돼야 한다. 일각에서는 세월호 피로감을 얘기한다. 장기화한 세월호 정국이 민생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외면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남은 과제가 많다. 이를 온전히 해결하지 않는 한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형행일 수밖에 없다.

4월4일 상복을 입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경기도 안산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세월호 인양 결정을 촉구하는 도보 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진상조사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쯤 후인 지난해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반드시 만들겠다”며 “필요하다면 특검을 해서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엄정하게 처벌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던 박 대통령의 이날 약속은 1주기를 맞은 현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공허할 따름이다.

참사 발생 206일 만에야 ‘세월호 특별법’이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해 11월7일이다. 독립된 조사 기구를 만들어 강력한 수사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다. 성역 없는 진상조사를 위해서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사·기소권이라는 핵심 요소가 빠진 ‘반쪽짜리 특별법’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세월호 가족들이 한 발짝 물러섰다. 하루라도 빨리 진상조사가 시작돼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마저도 무너졌다. 특별조사위원회 구성과 출범에서부터 난항이 거듭됐다. 부적격한 인사들이 위원회에 포함되는가 하면, 예산 낭비 등을 이유로 출범이 지연되기도 했다. 정부가 입법 예고한 ‘특별법 시행령’은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해양수산부는 3월27일 위원회의 인력 규모를 120명에서 90명으로 줄이고 기획조정실장을 고위 공무원단 소속 공무원이 맡는 내용을 골자로 한 시행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유족들과 야당뿐 아니라 위원회 내에서도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정부의 시행령안이 위원회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진상 규명을 가로막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정부가 진상조사를 진두지휘한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급기야 위원회가 자체적으로 시행령안을 마련해 정부에 제출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석태 위원장은 4월9일 “시행령이 무리하게 국무회의에서 통과된다면 특별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공무원 파견을 요청하는 등 조직 체계를 갖춰 활동을 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월호 가족들이 삭발까지 하며 다시 거리로 나섰다. 정부의 시행령안에 대해 “특별법의 취지와 목적을 무시한 쓰레기”라며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해양수산부는 심의·의결 일정을 일단 뒤로 미뤘다. 유기준 장관은 4월7일 “입법 예고한 안을 철회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일부 수정할 수 있다는 여지를 뒀다. 진상조사가 명확히 이뤄져야 제대로 된 예방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정부는 “진상 규명에 있어 유족들의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던 박 대통령의 1년 전 약속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 선체 인양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선체 인양 여부가 도마에 올랐다. 그동안 인양이 당연시됐다는 점에서 다소 생뚱맞은 상황이 전개된 셈이다. 정부의 어정쩡한 입장이 혼란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양수산부는 4월8일 세월호 사고 수습 및 피해 지원 비용을 5548억원으로 예상하며, 이 중 선체 인양 비용이 1205억원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술 검토 결과 등에 따라 변동 가능’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해양수산부 산하 세월호 선체 처리 관련 기술 검토 태스크포스(TF)는 당초 3월 말 결과를 내놓기로 했다가 인양에 영향을 미치는 위험 요소에 대한 추가 검토를 이유로 발표 시기를 연기했다. 결과적으로 기술 검토 보고에 앞서 예상 비용이 먼저 공개된 셈이다. 정부가 세월호를 인양하는 데 돈이 이만큼 많이 든다는 식으로 여론 떠보기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배경이다.

지난해 5월 중순 일부 언론에서 ‘세월호 피해액’을 보도한 적이 있다. 당시 추산된 금액이 최소 5500억원이었다. 전체 액수를 놓고 봤을 때 정부가 이번에 밝힌 ‘세월호 비용’과 차이가 없다. 정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별반 새로울 것도 없는 추정 금액을 선체 인양 여부를 결정짓기 직전에 발표함으로써 비난을 자초한 셈이다. 별다른 의도가 없었다면 산출 근거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인양 비용을 굳이 밝힐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박 대통령은 4월6일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여론을 수렴해 인양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국민 여론은 인양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날 ‘리얼미터’가 긴급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인양해야 한다’(65.8%)가 ‘인양하지 말아야 한다’(16.0%)보다 4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여론 수렴이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 두고 볼 일이지만 박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하다면 선체를 인양하는 방향으로 최종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

선체 인양을 해야 하는 이유는 9명의 희생자가 아직 배 안에 남아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양 반대 측에서 내세우는 ‘비용 부담’ 주장에는 이러한 시각이 저변에 깔려 있다. 9명의 희생자를 수습하는 데 너무 큰 비용이 소모된다는 것이다. 인양에 들어가는 비용을 유족 보상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하지만 대형 참사가 왜 발생했는지 진상 규명을 명확히 하고 재발 방지를 철저히 하기 위해서는 선체 인양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많다. 세월호가 바다 밑바닥 어두운 곳에 수장된 상태에서 내놓는 진상조사 결과와 재발 방지 대책은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지불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 인양에 들어가는 경제적 비용보다 더 클 것이다. 

■ 피해 배·보상

세월호 참사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문제도 마찬가지다. 해양수산부는 4월1일 배상 및 보상 심의위원회를 열어 세월호 사고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지급 기준을 의결했다. 구체적인 액수까지 공개됐다. 단원고 학생(250명)은 평균 7억2000여 만원, 교사(11명)는 10억6000여 만원, 일반인 희생자는 소득과 연령에 따라 4억5000만원에서 9억원까지 지급될 것으로 추산했다.

배·보상 문제가 언젠가는 다뤄야 할 사안인 것은 분명하다. 유족마다 입장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상 규명은 물론 선체 인양 여부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배·보상을 먼저 거론한 것은 신중치 못한 처사라는 지적이 많다. 유족들이 1년째 광화문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마치 배·보상 때문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유족들 사이에서 “국민과 유족을 분열시키려는 수작”이라는 격앙된 반응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유족과 사전 교감도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해 발표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유족들은 진상 규명과 선체 인양이 제대로 안 될 경우 4억2000만원이 아니라 4조2000억원을 줘도 안 받을 것이다”며 “정부가 이런 식으로 수를 쓰지 않고 선체 인양을 제대로 하고 시행령을 폐기하고 다시 만들어 진상 규명을 한다면 4억2000만원이 아니라 420원만 줘도 된다”고 강조했다.

■ 구상권 청구

세월호 참사 후 정부는 유병언 일가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피해액을 받아내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본인은 물론 가족이나 제3자에게 돌려놓은 숨은 재산까지 파헤쳐 국민의 세금으로 사고 피해액을 충당하는 일을 최소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검찰과 국세청, 금융감독원까지 팔을 걷어붙였다.

지금까지 동결한 재산은 1281억원으로 알려졌다. 전액 환수하더라도 피해액에는 훨씬 못 미친다. 또 이마저도 제대로 환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동결 재산의 절반 이상이 유 전 회장의 재산인데, 유 전 회장이 사망하면서 구상권 행사가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결국 유 전 회장의 상속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해야 할 상황이다. 부인 권윤자씨와 장남 대균씨가 상속을 포기하면서 해외 도피 중인 차남 혁기씨와 프랑스에서 붙잡힌 장녀 섬나씨가 우선 상속 대상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도 상속 포기를 할 경우 누가 상속받게 될지를 살펴야 하고, 또 해외에 있는 이들이 상속을 받을 경우 구상권 청구가 실질적인 효력을 거둘 수 있을지도 검토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유 전 회장의 법적 책임을 정부가 입증해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그동안 정부가 큰소리쳤지만 갈 길이 여전히 먼 셈이다. 오는 4월21일 유병언 일가 재산 중 부동산 7건에 대한 법원 경매가 열릴 예정이어서 구상권 청구를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 국민 성금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며 가슴이 먹먹해진 국민은 성금을 통해 안타까움을 전달했다. 현재까지 모금된 금액은 1300억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 성금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 선체 인양과 진상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성금 사용처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민 성금의 사용은 자칫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회피하는 방패막이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2010년 3월26일 발생한 천안함 침몰 사건 때 경험한 바가 있다. 당시 모금 총액은 395억5000만원 정도였다. 그런데 이렇게 거둔 성금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두고 논란이 불거졌다. 유족에게 개별적으로 지급할 경우 금액이 과다하게 돌아갈 수 있어 부작용이 있을 것 같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결국 국민 성금 배분을 논의하는 특별위원회가 구성돼 개별 지급액이 결정됐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유족에게 지급하고 남은 성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를 놓고 또다시 이견이 표출된 것이다. 유족 측에서는 ‘장학재단을 만들자’ ‘방위성금으로 내자’ ‘복지단체에 기부하자’ 등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모금운동을 추진한 주최 측이 유족의 입장과 달리 ‘천안함재단’을 설립하는 것으로 결론지으면서 성금 사용은 마무리됐다. 국민 성금 사용에서 세월호는 천안함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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