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호 전 진로회장의 숨겨둔 4000억은 누구 손에?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04.16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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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3일 중국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차명 재산 소재에 관심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이 4월3일 중국 베이징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그룹 재건을 꿈꾸며 10년간 해외를 떠돌다 허무하게 삶은 마친 것이다. 4월7일 서울 아산병원에 빈소가 마련됐다. 한때 재계를 호령했던 그룹의 총수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빈소는 소박했다.

장 전 회장은 1988년 진로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36세의 젊은 나이였다. 취임 초기부터 외형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소주(참이슬)와 맥주(카스)를 바탕으로 유통·백화점·건설·제약 사업까지 진출했다. 취임 초기 9개였던 계열사는 1996년 24개로 늘어났다. 진로그룹은 1996년 3조5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재계 서열 19위까지 올라갔다.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이 해외 도피 직전인 1996년 10월 국회 행정위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위장 계열사 소유 경위 등을 설명하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무리한 확장 전략에 제동이 걸렸다. 진로그룹은 1997년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부도를 냈다. 장 전 회장 역시 5496억원을 사기 대출받고, 비자금 7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여러 차례 재판 끝에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5년형을 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그룹이 공중분해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진로그룹은 2003년 4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핵심 회사인 참이슬, 카스, 진로발렌타인은 각각 하이트와 카스, OB에 매각됐다.

장 전 회장은 2005년 2월 가족들과 함께 캄보디아로 출국했다. 검찰이 비자금에 대해 추가 수사를 벌이자 서둘러 한국을 떠난 것이다. 이후 장 전 회장은 기소중지 상태로 10년여 간 해외를 떠돌았다. 수백억 원 상당의 세금이 체납된 상태여서 한국에 들어올 수도 없었다.

장 전 회장은 해외에서 도피 생활을 하면서도 ‘소주 왕국’ 재건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2002년 캄보디아 권력 실세인 훈센 총리와 장녀 훈마나의 도움을 받아 캄보디아 국적을 취득했다. 이름도 ‘찬 삼락’으로 바꿨다. 훈센 총리의 젊은 시절 이름이었다. 이후 훈마나가 보유했던 ABA은행의 지분 50%까지 넘겨받으면서 최대주주가 됐다.

2005년에는 평소 친분이 있는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과 연면적 10만㎡(3만250평)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 건립을 추진했다. 프로젝트명 ‘1500’으로 불렸다. 이웅열 회장은 당시 코오롱건설의 하노이 사무소장과 본사 간부를 캄보디아로 급파했다. 이 회장 역시 장 전 회장과 사업을 논의하기 위해 여러 차례 캄보디아로 건너갔다. 하지만 부지 매입이 실패로 끝나면서 부동산 개발 사업은 빛을 보지 못했다. 장 전 회장은 금융 브로커로 알려진 김재록씨와 함께 소주 사업인 ‘55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초기 자금은 1500억원 정도였다. 소주회사를 설립해 한국에 상장한다는 계획까지 세웠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4월7일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의 빈소. 한때 재계 서열 19위 그룹 총수의 빈소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한산했다. ⓒ 뉴시스
해외 도피 중 차명 회사 설립해 재기 노려

장 전 회장은 2008년 캄보디아 재산을 정리하고 중국으로 넘어갔다. ABA은행은 카자흐스탄 바이저캐피털그룹에 매각했다. 중국에서도 여러 사업을 벌였다. 측근인 이 아무개씨를 통해 TV 프로덕션인 N사를 설립했다. 장 전 회장의 둘째 부인인 이 아무개씨와 해외 담당 변호사 고 아무개씨를 등기이사로 등재했다. 이후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제작해 중국 방송사에 납품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얼마 후 대표가 이씨에서 신씨로 바뀌고, 방송사와의 계약마저 깨지면서 현재는 유명무실한 회사로 전락했다. 이후에도 중국에서 게임과 술 사업 등에 투자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 회장은 2009년 130억원을 들여 중국에 I사를 차명으로 설립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출신 연구원을 대표로 영입했다. LG전자 휘센 냉장고의 핵심 기술을 개발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 인사가 중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국정원과 검찰에 적발됐다. 검찰은 기술 유출 배후에 장 전 회장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했다. 거액을 투자한 사업을 시작도 못하고 접으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이때 마음고생을 하면서 건강이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되는 사실은 장 전 회장의 차명 회사가 현재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싱가포르에 위치한 B사가 한 예다. 이 회사는 장 전 회장의 측근이자 해외 변호사인 고 아무개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장 전 회장이 측근을 통해 회사 설립을 지시하면 B사가 자금을 댔다. 그동안 국내외에 설립한 차명 회사 대다수가 이 회사의 자금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유로 장 전 회장은 여러 차례 측근들과 소유권 분쟁을 벌였다. 그는 2007년 정낙찬 코리막스 회장을 상대로 소유권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코리막스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인 ‘막스마라’의 한국과 홍콩 판권을 소유하고 있었다. 국내 유명 백화점에 매장이 입점해 있는 알짜배기 회사였다. 재판부는 전체 주식 중 47.5%에 대해 장 전 회장의 소유를 인정했고, 장 전 회장은 이듬해 코리막스의 2대 주주로 등재됐다.

장 전 회장은 2013년 차명으로 맡겨놓은 4000억원어치의 채권을 되찾기 위해 측근인 오 아무개씨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하기도 했다. 오씨는 진로그룹 재무담당 임원 출신으로 캄보디아 ABA은행 등 장 전 회장의 차명 회사 경영에 깊숙이 관여했던 인물이다.

최근에는 자동차 부품업체인 K사의 지분을 놓고 소유권 분쟁이 벌어졌다. 이 회사는 1997년 외국인 투자 법인으로 설립됐다. 프랑스 자동차그룹인 W사가 현재 35.0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주로 자동차 엔진용 호스를 제작해 해외에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203억원의 매출과 2억5000만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하지만 나머지 주주들은 장 전 회장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2012년까지 싱가포르 법인인 B사와 국내 법인인 O사가 각각 20%와 38.2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모두 장 전 회장 측근들이다. 소송 과정에서 장 전 회장 측과 전 대표인 정 아무개씨 간에 치열한 설전이 벌어졌다. 장 전 회장 측근들은 증인으로 출석해 “K사의 지분은 장 전 회장이 차명으로 보유했던 것”이라고 진술했다. 장 전 회장이 사망하면서 측근들이 보유한 지분이 어떻게 처리될지 주목되고 있다.  


해외 도피 중이던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이 사망하면서 외환위기 당시 무너졌던 그룹의 총수들 근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보그룹은 1997년 5조7000억원의 부채를 안고 부도를 냈다. 당시 한보그룹의 재계 순위가 14위였던 만큼 후폭풍이 적지 않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엄중한 수사를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차남인 김현철씨가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등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수수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구속되기도 했다.

정 전 회장은 당시 횡령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기자는 2005년 서울 종로구 삼청공원에서 정 전 회장을 우연히 만났다. 당시 정 전 회장은 “출국금지로 몸이 묶여 있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며 “돈을 벌어야 세금을 갚든 할 것 아니겠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2007년 신병 치료를 이유로 출국했다. 이후 일본을 거쳐 카자흐스탄으로 건너간 후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외환위기로 파산한 김동수 전 거성그룹 회장도 마찬가지다. 김동수 전 회장은 1998년 계열사의 연쇄 부도로 그룹이 해체되자 155억원의 빚을 남기고 미국으로 나갔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세금을 체납하고 해외로 도피했는데 생활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미국 최고의 부촌인 베벌리힐스에 거주하는 모습이 국내 언론에 포착되기도 했다. 그는 현재 미국에서 여러 개의 단란주점과 룸살롱 등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호화 도피 논란을 빚고 있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과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은 한때 그룹을 되찾기 위해 공을 들였다. 최원석 전 회장은 2006년 그룹의 모태 회사인 동아건설을 되찾기 위해 입찰에 참여했다. 하지만 회사를 파산에 이르게 한 전 경영진의 입찰을 채권단이 배제하면서 꿈을 이루지 못했다. 최순영 전 회장도 틈날 때마다 “억울하게 빼앗겼던 그룹을 되찾겠다”고 말해왔다. 대한생명(현 한화생명) 매각의 부당성을 여러 차례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이 매각 과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고, 현재는 회사 경영과 무관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은 반대다. 활발한 외부 활동으로 재기의 꿈을 꾸고 있다. 김우중 전 회장은 1999년 대우그룹이 해제되면서 중국으로 출국했다. 이후 베트남 등지에서 5년여 동안 도피 생활을 하다가 귀국했다. 김 전 회장은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징역 8년6개월과 추징금 17조9000억원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8년 특별 사면됐다. 이후 외부 활동이 크게 늘어났다. 회고록을 통해 대우그룹 해체가 부당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지난 3월에는 대우그룹 창립 48주년 기념행사에도 모습을 보였다. 이날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2017년 대우그룹 창립 50주년을 맞아 김우중학교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김 전 회장의 경영 복귀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석준 전 쌍용그룹 회장은 최근 재기에 성공했다. 쌍용건설은 2007년 1월부터 2013년까지 일곱 차례나 매각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2013년 말에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김 회장은 전문경영인 자격으로 복귀해 회사를 운영했다. 김 회장은 최근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두바이투자청(ICD)으로부터 1700억원을 유치했다. 회사 매출도 지난해 4년 만에 흑자로 돌아서면서 1년 3개월 만에 법정관리를 졸업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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