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 발걸음 멈추거나 늦출 수 없다
  • 박주민 변호사 ()
  • 승인 2015.04.2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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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무력화하는 대통령령안 철회해야

4월16일 경복궁 앞에서 경찰에 둘러싸인 채 이 글을 쓰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1년이 지났는데도 가족들의 노숙 농성이 이어져야 한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화장실 왕래도 불허하는 경찰 덕에 박스로 하수구 주위를 둘러 간이화장실을 만들어 사용하는 상황이다. 또 참사 당시 7시간 동안 회의 한 번 소집하지 않았고, 지시 한 번 내리지 않았던 박근혜 대통령은 참사 1주기를 맞아 다시 한 번 국민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순방을 떠났다. 그것도 부패를 이유로 수사 대상이 된 국무총리에게 직무대행을 맡기고. 순방을 떠나기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을 찾아오지도 않았다. 본인은 찾아갔는데 희생자 가족들이 거부했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으나 애초부터 본인의 행방을 이른바 ‘엠바고’로 묶어두고 희생자 가족들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채  방문하려고 했던 것을 어떻게 제대로 된 추모이자 대화라 할 수 있겠는가.

“정부,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에 적대적”

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한목소리로 4월16일 이후의 대한민국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가 고발한 대한민국의 현실이 너무나 처참했기 때문이다. 기업은 생명과 안전을 무시하고 탐욕적인 이윤만 추구했고, 이들을 감독해야 할 관료 집단은 관피아가 돼 그 탐욕을 뒷받침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으며, 우리 국민은 여전히 각자가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음을 목격했다. 그런데 얼마나 변화했는지 돌아보면 침통하기 그지없다. 변화의 방향을 잡아주고, 변화의 내용을 채워주는 것은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일 텐데 1주기를 맞은 지금, 진상 규명 작업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넘어 진상 규명에 대한 전망도 어둡다. 정부와 정권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에 적대적이라서 그렇다. 물론 누군가는 그럴 수도 있다. 설마 정부가 진상조사를 방해하겠느냐고, 진상 규명에 지장을 주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더라도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1주기를 앞두고 벌어진 몇 개의 일들만 살펴보면 현 정부가 진상 규명과 관련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우선 진상조사를 담당할 특별조사위원회를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대통령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과거 정부의 행적을 조사 대상으로 삼는, 그래서 정부로부터의 독립이 중요한 위원회들의 경우 위원회가 만들어 제안하는 대통령령안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던 전례와 달리 이 대통령령안은 특별조사위원회가 결의한 대통령령안을 완전히 뒤집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특히 조사 대상이 되는 정부 부처에서 파견한 공무원들이 위원회의 업무를 종합·조정·기획하는 요직을 장악하고, 절대적인 수에서도 우위를 점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조사 대상으로부터 독립돼야 한다는 원칙을 훼손하는, 한마디로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기자는 것이다. 또 특별조사위원회의 업무 범위를 정부가 조사한 결과의 분석과 조사로 한정하고 있어 공무원들이 자신들이 내놓았던 조사 결과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역할만 하도록 했다. 이런 대통령령안으로는 당연히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할 수 없다.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만 받는, 정말 ‘세금 도둑’인 특별조사위원회가 되라는 것이다. 시민들과 피해자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저항해 국민들의 여론이 환기되는 것처럼 보이자 느닷없이 배·보상 기준안을 결정해 언론에 보도되게 했다. 배상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첫 회의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배상 및 보상의 기준을 덜컥 합의했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통상 위원회가 꾸려지고 처음 하는 회의의 경우 서로 인사하고 앞으로의 위원회 업무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정상 아닌가. 그리고 최초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배상 기준을 4억2000만원이라는 교통사고

세월호 참사 1주기인 4월16일 서울광장에서 희생자 가족과 시민들이 광화문광장을 향해 거리행진을 시도하자 경찰이 캡사이신으로 보이는 액체를 뿌리고 있다. ⓒ 연합뉴스
일반 기준에 의한 금액으로 기재했다. 그런데 조금 후에 개인이 가입한 보험으로 인해 수령하는 금액과 각 모금단체가 자율적으로 판단하게 돼 있어 분배가 될지, 분배된다면 얼마나 될지 등이 모두 미지수인 국민성금으로 구성된 위로지원금까지 최고 수준으로 추정해 포함한 8억2000만원이라는 금액으로 자료를 다시 배포한 것은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피해자들이 개인적으로 가입한 보험금이나 국민성금은 국고가 쓰이는 일이 아니기에 국가가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임에도 이를 포함시켜 피해자 가족들에게 지급되는 금액을 부풀려 피해자 가족들과 국민들을 이간질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나 의심하게 된다.

무엇보다 진상 규명에 대해 정부가 어떤 태도를 가지는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일이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15일에 있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주기 관련 회의를 주재했는데 그 회의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관련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고 한다. 아니 논의는 고사하고,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통과된 2개의 특별법에 따라 구성된 3개의 위원회 중 추모와 배상과 관련된 2개 위원회의 보고는 이뤄졌지만, 진상 규명과 관련된 특별조사위원회 위원들은 그러한 회의가 있었다는 소식조차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박대도 이런 박대는 없을 것이다. 현 정부에 진상 규명은 거명조차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느닷없이 배상·보상 기준안 결정

사실상 진상 규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처럼 보이는 이 상황이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은 유가족들의 여한이 없도록 진상조사를 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고, 정부와 여당의 고위 인사들도 입만 열면 철저한 진상 규명을 약속했다.

수많았던 말과 현재의 실제가 전혀 다르게 움직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패 척결이라는 구호와는 달리 사실은 이 정권이 바로 부패의 몸통이었다는 것을 보여준 성완종 게이트가 하나의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을 하겠다고 하지만 사실은 참사의 원흉이기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더 진상 규명을 위한 발걸음을 멈추거나 늦출 수 없다. 참사의 원흉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나의 생명을 위태로운 지경에 둔 채 지낸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권이 정말로 참사의 원흉이 아니라면 이제라도 진상 규명을 가로막는 모든 시도를 멈춰야 할 것이고, 진상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 첫걸음은 특별조사위원회를 무력화시키는 대통령령안의 철회일 것이다. 마지막 남은 조그만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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