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입 싸움’이 더 볼만하다
  • 김경윤│스포츠서울 기자 ()
  • 승인 2015.04.2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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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이종운 감정 충돌…“외부갈등이 팀 단단하게 만들어”

미국 미주리 대학의 심리학과 마이크 스태들러 교수는 <야구의 심리학>이라는 저서를 통해 경기 이면에 숨겨진 심리 싸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선수들의 심리는 물론,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심리가 경기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는 게 스태들러 교수의 설명이다. 심리전은 비단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다.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상당한 신경전이 펼쳐졌다. 특히 감독들이 펼치는 그라운드 밖 설전은 예나 지금이나 뜨겁다. 최근엔 한화 김성근 감독과 롯데 이종운 감독이 빈볼(위협구) 사건을 두고 각을 세우기도 했다.

설전의 중심에서 빠지지 않는 김성근

역대 프로야구에서 가장 치열하게 심리전을 펼친 인물은 김성근 감독이라 할 수 있다. 김 감독은 프로야구 초창기 때부터 기 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한 어투로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대표적인 일화는 2008년 당시 두산 김경문 감독(현 NC 감독)과의 설전이다. SK와 두산은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만났고 2008년에도 선두 다툼을 벌였던 라이벌이다. 당시 SK 사령탑이었던 김성근 감독은 김경문 감독과 노골적으로 언론을 통해 감정싸움을 펼쳤다. 먼저 포문을 연 쪽은 김성근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시즌 초 김광현과 정대현이 부상을 당하자 “데려다 쓴 것까지는 좋다. 부상을 당한 걸 알면, 와서 이야기라도 해야지. 데려갈 때는 인사하더니 쓰고 나니 아무 소리가 없다”며 호통을 쳤다. 베이징올림픽 대표팀 사령탑이었던 김경문 감독이 소집훈련에서 소속팀 선수들에게 부상을 안겼다는 것이다. 김경문 감독은 “선수들이 최선의 컨디션으로 팀에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 김성근 감독님께 대표팀을 맡겨봐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김성근 감독 © 연합뉴스, 이종운 감독 © 뉴스뱅크이미지
김성근 감독과 김경문 감독의 대립각은 묘하게도 양 팀이 선두 다툼을 하기 시작한 2007년부터 만들어졌다. 2007년 이대수-나주환 맞트레이드 문제와 SK 레이번의 빈볼성 투구, 두산 리오스의 투구 폼 문제 등 사안이 있을 때마다 말싸움을 했다. 두 팀은 2008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빈볼 시비 끝에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졌는데 당시 김경문 감독은 “최악의 경기였다. 꼭 이렇게 이겨야 하는가”라고 말했고 김성근 감독은 “상대를 흥분시키는 행동을 많이 한다”고 받아쳤다. 상대 팀을 흔들기 위한 두 감독의 신경전이었다.

김성근 감독은 김재박 전 감독(현 KBO 경기운영위원)과도 설전을 벌였다. 특히 두 감독은 제3팀의 플레이를 두고 으르렁대 눈길을 끌었다. 2008년 4월 두산-SK 경기에서 두산 김재호가 2루 슬라이딩을 할 때 SK 나주환이 무릎 부상을 당했다. 당시 두산과 SK 간에 감정싸움이 벌어졌는데, 이를 두고 LG 사령탑이었던 김재박 감독이 끼어들었다. 김재박 감독은 “SK가 지난해부터 비신사적인 플레이를 한다”고 말했다. 한 달 후인 2008년 5월엔 거꾸로 된 상황이 연출됐다. 김재박 감독이 두산 이재우의 스포츠글라스가 타자들의 경기에 영향을 준다고 지적하자 김성근 감독이 “지적이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양 팀의 직접적인 사안이 아닌 다른 팀을 두고 두 감독이 신경전을 펼친 것이다.

2009년엔 두 감독의 심리전이 극에 달했다. 김성근 감독은 LG 봉중근이 엔트리에서 제외돼 남은 시즌에 등판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자 “팬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던져야 하는 것 아니냐. 부끄럽지 않게 야구를 해야 한다”고 힐난했다. 사실 김성근 감독의 발언엔 다른 의도가 숨어 있었다. 당시 SK는 KIA와 선두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KIA는 LG와의 경기를 앞두고 있었는데 LG가 에이스 봉중근을 활용하지 않고 시즌을 일찌감치 종료해버린 것이었다. 김성근 감독은 LG가 끝까지 최선을 다해 KIA를 잡아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고, 우회적으로 봉중근의 엔트리 제외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김재박 감독은 김성근 감독의 심리전 의도를 알고 있었다. 김재박 감독은 “기분 나쁘다. 다른 팀 감독이 선수 엔트리 문제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받아쳤다.

김응용-이광환, 감정싸움으로 관계 멀어져

감독들의 심리전은 선수단을 뭉치게 하는 효과가 있다. 한 현직 감독은 “감독이 총알받이로 나와 외부 갈등을 만들면 내부 분위기는 더욱 단단해진다. 그래서 감독들의 말싸움은 승부처라 판단되는 시기에 많이 쏟아져 나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감독 세계는 선후배 사이로 얽혀 있고 예의를 중시한다. 하지만 대다수 감독은 설전이 펼쳐지면 한 치 양보 없이 응수하고 맞받아친다. 팀을 위해서다.

이러한 감독들의 심리전은 감정싸움으로 번져 의가 상하는 일도 생긴다. 실업야구 한일은행의 선후배 사이인 김응용 감독과 이광환 감독은 설전으로 사이가 멀어졌다. 두 거물은 2001년 냉전을 펼친 후 지금은 인사도 나누지 않는다. 당시 삼성 사령탑인 김응용 감독과 한화 감독이었던 이광환 감독은 나란히 미국 애리조나에 스프링캠프를 차렸는데, 여섯 차례의 연습경기를 모두 한화가 가져가면서 관계가 미묘해졌다. 이후 한화 백재호, 삼성 김동수의 트레이드를 놓고 설전이 오갔고 삼성 발비노 갈베스에 대해 이광환 감독이 부정 선수 시비를 걸자 사이는 더욱 벌어졌다. 그해 6월 한화 한용덕(현 두산 코치)이 삼성 이승엽에게 사구를 던졌고 8월엔 한화 김병준이 삼성 마르티네스에게 빈볼을 던지는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2012년 당시 LG 김기태 감독(현 KIA 감독)과 이만수 SK 감독(현 KBO 육성위원회 부위원장)도 비슷한 경우다. 김기태 감독은 이만수 감독의 투수 교체 방식에 ‘경기 포기’라고 말해 후폭풍을 일으켰다. 9월12일 잠실 LG-SK 경기에서 3-0으로 앞서던 SK는 9회말에 아웃카운트가 늘어날 때마다 투수를 바꿨다. 경기 흐름이 굳어진 상태에선 리드하는 팀이 투수 교체를 자제하는 것이 불문율인데,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이에 김기태 감독은 2사에서 투수 신동훈을 대타로 내세웠다. 당시 김기태 감독은 “SK가 우리 팀을 무시하는 투수 기용을 했다”며 진노했고 이만수 감독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오해다”라고 말했다. 두 감독은 한동안 불편한 관계를 이어갔다. 12일 뒤 두 감독은 문학구장에서 만났지만 화해의 악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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