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사업이 먹음직스러워 보였나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04.23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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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통신 본연의 사업만 강조할 수 없는 상태

“본업인 통신 사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망각했다. KT는 1위였음에도 본업을 소홀히 해 경쟁사에 안방을 내줬다.” 황창규 KT 회장이 2014년 1월 취임하면서 직원들에게 줄곧 해온 말이다. 2009년까지 KT의 계열사 수는 27개에 불과했다. 2009년 1월 이석채 회장이 취임하면서 기조가 바뀌었다. 이 전 회장은 ‘탈(脫)통신’을 선언했다. 금융, 미디어, 부동산, 렌터카, 심지어 커피 유통과 카지노 사업에까지 손을 뻗었다. 이 전 회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KT그룹’을 공공연하게 언급할 정도였다.

KT캐피탈 매각 협상 도중 “없었던 일로”

2013년 말 KT의 계열사는 56개까지 늘어났다. 본업과 무관한 사업에 진출하면서 KT의 경쟁력은 약화됐다. 영업이익은 2011년 1조9737억원에서 2012년 1조209억원, 2013년 8398억원까지 감소했다. 지난해에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2917억원의 적자를 냈다.

2014년 1월 취임한 황창규 KT 회장(오른쪽)은 통신 사업 강화를 선언했지만 전임 이석채 회장이 벌여놓은 일을 수습하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다. ⓒ 연합뉴스
황창규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통신 본연의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임 직후부터 조직 슬림화 작업과 함께 비통신 자회사들을 잇달아 매각했다. 최근 롯데그룹에 매각된 KT렌탈이 한 예다. KT렌탈이 보유한 KT금호렌터카는 현재 독보적인 국내 1위 업체다. 시장 점유율 26%로 2위 AJ렌터카(13.4%)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 지난해 매출은 89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업계 최초로 매출 1조원대를 달성했다. 이런 우량 회사를 비통신 계열이라는 이유로 과감하게 정리한 것이다.

영화배급사인 싸이더스FNH와 온라인 교육 자회사인 KT오아이씨 등도 지난해 말 팔았다. 사업이 중복되는 계열사는 과감하게 합쳤다. 일련의 조치로 KT의 계열사 수는 1년여 만에 56개에서 49개로 줄어들었다. 대신증권은 올 1분기 KT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8%, 87.3%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KT 안팎에서는 “‘황창규식’ 다이어트가 먹혀들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3월부터 KT에 이상 기류가 감지됐다. KT는 3월 말 자회사인 KT캐피탈의 매각을 없었던 일로 했다. 인수 우선협상자로 미국 사모펀드인 JC플라워 컨소시엄을 선정한 상태에서 돌연 매각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KT렌탈과 함께 비통신 계열사였던 KT캐피탈을 정리하려던 계획에도 제동이 걸렸다. KT 측은 “매각 조건이 KT캐피탈의 가치를 반영하지 못했다고 판단해 중단하기로 했다”며 “KT캐피탈의 재매각 여부는 향후 상황을 보고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황 회장이 비통신 분야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점차적으로 부동산 사업 비중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KT는 지난해 8월 송파지사 부지 일부를 복합문화시설로 활용하겠다며 관할 구청에 지구단위계획변경 신청서를 제출했다. 송파지사 건물은 그대로 두고 지사 옆 빈 땅에 1100실 규모의 가족호텔을 지을 예정으로 알려졌다. 서울 동대문·영등포 등 옛 전화국 용지를 활용한 기업형 임대리츠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KT 자회사인 KT에스테이트가 기존 유휴 부지에 건물을 지으면 산하 부동산 운용 자회사가 이를 매입해 임대관리 사업을 영위하는 방식이다.

KT 안팎에서는 지난 1년간의 구조조정이 마무리되고 있는 시점에서 돌연 호텔이나 부동산 임대 시장에 뛰어든 데 대해 의문을 표시한다. KT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황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본사 인력의 27%를 감축했고, 236개 지사도 79개의 광역지사로 통합했다”며 “통신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여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KT의 부동산 사업 강화가 수익성 악화를 막기 위한 용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통신 경쟁력 회복과 수익성 추구 ‘엇박자’

전임 이석채 회장도 취임 초기부터 ‘All New KT’를 선언하며 개혁에 나섰다. 이사 보수 한도부터 대폭 삭감했다. 검사 출신 인사를 영입하면서 내부 기강 확립에도 공을 들였다. 이로 인해 지사 한 곳이 사실상 공중분해됐다. 100명이 넘는 KT 직원과 협력업체 대표가 회사 고발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이 회장 취임 이후 KT의 경영 지표는 갈수록 악화됐다. 무리한 확장으로 KT의 영업이익은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10.15%에서 3.52%로 3분의 1 토막이 났고, 부채비율은 118.29%에서 170.86%로 크게 높아졌다. KT 내부에서는 이 회장을 두고 ‘상처뿐인 영광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이 회장이 취임해서 한 일이 뭐냐”는 거친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해 1월 황 회장이 취임한 이후에도 경영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황 회장은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했지만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감소하는 추세다. 지난해 말 KT의 영업이익은 2917억원으로 적자 전환됐고, 당기순손실도 9662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과 순이익률은 각각 -1.24%와 -4.12%까지 떨어졌고, 부채비율은 186.47%로 높아졌다. 수치상으로 보면 황 회장이 통신 본연의 사업만을 강조할 수 없는 상태다.

KT 측도 이 같은 상황을 부인하지 않았다. 회사 관계자는 “우량 계열사인 금호렌터카를 팔아야 할 정도로 내부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통신 본연의 사업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수익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임 이석채 회장 때와는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고 말한다. 또 다른 회사 관계자는 “전임 이석채 회장과 달리 황 회장은 철저하게 실용적인 스타일이다. 정치적인 이슈는 배제하고 사업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직원들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면서 내부적으로 다시 해보자는 분위기가 일고 있다. 이번에는 다를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서울 양천구 목동 KT전산정보센터 전경. ⓒ 시사저널 최준필
KT가 부동산 사업에 진출하면서 뒷말도 나오고 있다. KT의 부동산 계열사인 KT에스테이트는 최근 서울 목동 KT전산정보센터(목동센터)에 독일계 회사인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티센크루프)를 유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 회사는 오는 7월부터 목동센터에 입주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목동센터가 지정용도 건물로 묶여 있다는 점이다. 방송 및 통신시설의 비율이 건축 연면적의 80%를 유지해야 한다. 현재 목동센터에는 금호렌터카와 웨딩홀, 커피숍 등이 각각 1층과 지하 1층에 입주해 있다. 지하 3층 일부도 금호렌터카의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티센크루프까지 입주해 3개 층을 쓰게 되면 비통신 시설 비율이 20%를 초과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인근의 한 건물주는 “KT가 목동센터의 공실을 채우기 위해 주변 시세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티센크루프와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거대 기업이 임대 시장을 교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KT 측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측정을 해본 결과 이상이 없었다”며 “티센크루프가 입주해도 비통신 시설 비율은 16~17% 수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티센크루프가 입주했던 건물의 주인이 의도적으로 흠집 내기를 시도하고 있다”며 “목동 주변 건물의 공실률이 상승함에 따라 임대료를 낮춰주는 게 업계 관행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KT는 금호렌터카가 사용하는 지하주차장과 챔버홀 등을 실측 대상에서 제외했다. KT가 측정한 결과에 대해 의문이 나오는 이유다. KT금호렌터카가 어떻게 이 건물에 입주했는지도 납득하기 어렵다. 목동중심지구 지구단위계획에 따르면 KT목동센터에는 예식장이나 자동차 관련 시설의 입주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KT렌터카의 경우 자동차 임대뿐 아니라 판매도 겸하고 있기 때문에 논란이 예상된다.

KT는 금호렌터카가 지하주차장 용도를 불법으로 변경했음에도 묵인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주차장 일부를 개조해 렌터카의 청소나 정비 장소로 활용한 정황이 나타난 것이다. KT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KT는 2012년 목동센터를 예식장과 뷔페 연회장으로 무단 용도변경했다가 양천구청으로부터 1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받았다”며 “2012년 9월 목동센터를 2320억원에 매각하면서 건물주에게 부과되는 과징금 1억원 상당을 매년 대납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주차장 용도변경이나 비통신 시설의 입주 역시 예식장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고 있다. 양천구청 건축과 관계자는 “지하주차장을 다른 용도로 변경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사실관계를 확인해 문제가 있다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KT 관계자는 “문제의 장소는 단순히 렌터카를 청소하는 곳이었다. 그나마 지금은 시설을 폐쇄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1층에 예식장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며 “예식장 역시 10년간 계약을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벌금을 대납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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