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민심 여론조사, '차기 대권주자' 손학규 1위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5.05.15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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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리얼미터, 호남 지역 1000명 여론조사 결과…문재인·박원순·안철수 제쳐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지난해 7월 손학규 전 고문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초야에 칩거할 때만 해도, 올해 2월 문재인 대표가 새정치연합 대표에 선출된 이후 대권 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선두를 질주할 때만 해도, 누구도 지금의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4·29 재보선 참패에 이은 정청래-주승용 최고위원 충돌 파문 등으로 궁지에 몰린 문 대표를 바라보는 호남의 시선은 싸늘하다. 대신 호남 민심은 손 전 고문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2012년 9월6일. 모든 시선은 광주 염주체육관에 쏠려 있었다. 18대 대선 민주당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경선에서 최대 분수령은 광주·전남 지역이었다. 결선에 진출한 문재인·손학규·김두관·정세균 등 ‘빅4’는 이 지역에서의 승리에 사활을 걸었다. 그 전까지 7개 지역 경선에서 파죽의 7연승을 달리며 선두를 질주했던 문재인 후보였지만, 광주·전남은 그에게 가장 취약한 지역이었다. 반면 2위로 문 후보 뒤를 쫓고 있던 손학규 후보는 광주·전남에서 승기를 잡아 문 후보와의 격차를 좁히고자 했다. 4파전이 자연스럽게 손학규-문재인 2파전으로 좁혀지면, 김두관·정세균 후보와 단일화를 꾀해 최종 승부처인 서울·경기에서 대역전을 노려봄 직했다.

하지만 손 후보의 꿈은 산산이 깨졌다. 광주·전남의 선택은 뜻밖에도 문재인이었다. 48.46%의 지지를 얻은 문 후보는 32.31% 지지에 그친 손 후보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1, 2위 격차를 더 벌렸다. 사실상 여기서 경선 승부는 판가름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누구보다도 광주·전남 등 호남에 공을 들여온 손 후보였기에 충격과 실망은 컸다.

ⓒ 연합뉴스

호남 신당 참여 희망 인사 조사도 1위

2014년 7월31일.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고문은 7·30 재보선 수원 병 지역 선거에서 낙선한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으로 내려갔다. 강진 백련사 뒤 한 흙집에서 그는 부인 이윤영 여사와 함께 사실상 칩거 상태에 들어갔다.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 중 한 명이었던 그의 갑작스러운 정계 은퇴 발표도 충격적이었지만, 왜 하필 전남 강진인가에 대해 의문부호가 붙었다. 손 고문의 고향은 경기 시흥이고, 의원 시절 지역구도 광명·분당 등 경기 지역이었다. 경기도지사를 지내기도 했다. 아내의 고향은 이북이다. 다만 첫째 사위의 고향이 강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손 전 고문은 최근 “그건 (첫째 사위 고향은) 자그마한 인연이고, 강진은 내가 1970년대 (대학 운동권)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민주화의 성지 같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손 전 고문의 강진 은둔이 호남 민심을 자극했던 것일까. 아니면 시대가 다시 손학규를 부르는 것일까. 호남이 손학규를 향해 손짓하고 있다. 시사저널이 여론조사 전문 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호남 지역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손 전 고문은 ‘차기 대선 주자 지지도’에서 문재인·박원순·안철수 등 이른바 야권 ‘빅3’를 모두 제치고 1위에 오르는 놀라운 결과를 나타냈다. 뿐만 아니라 ‘호남 신당이 창당될 경우 참여했으면 하는 인사’ 가운데서도 1위에 올랐다. 특히 전북보다는 광주·전남에서 이런 여론이 더 강했다. 호남의 민심이 문재인의 대안으로 손학규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번 여론조사는 5월13~14일 이틀간 광주(274명)·전남(368명)·전북(358명)의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유선전화 임의 걸기(RDD) 방법을 통한 ARS 조사로 이뤄졌다.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이며, 응답률은 6.1%였다.


■ 4·29 재보선 책임론에 대해… “문 대표 사퇴해야” 46.1%

호남 지역의 민심은 문재인 대표에게 싸늘했다. 특히 광주가 매우 차가웠다. 광주·전남에 비해 전북은 상대적으로 문 대표에 대해 덜 비판적이었다. ‘4·29 재보선 광주 서구 을 지역에서 무소속 천정배 후보가 당선된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란 질문에 ‘문 대표에 대한 반감’을 지적한 의견이 37.3%로 가장 높았다. ‘조영택 새정치연합 후보의 낮은 경쟁력’과 ‘동교동계의 약한 선거 지원’을 꼽은 의견은 각각 18.1%, 11.6%에 그쳤다. 문 대표에 대한 반감 여론이 전북은 28.9%로 나타난 데 비해, 광주·전남에서는 41.9%나 됐다. 특히 재·보궐 선거가 치러진 광주에서 43.7%로 높게 나타났다.

‘재보선 참패 이후 일고 있는 문 대표 퇴진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란 물음에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이 46.1%로 나타났다. 반면 ‘문 대표 체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25.2%)와 ‘사퇴 요구는 지나치다’(19.3%) 등 ‘사퇴 반대’ 여론은 44.5%로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광주·전남에서는 그 차이가 컸다. 사퇴 찬성이 49.1%로 사퇴 반대(43.3%)보다 5.8%p 더 높게 나타났다. 광주만 국한해서 보면 54.2% 대 39.7%로 격차가 더 벌어진다.

‘정청래 최고위원과 주승용 최고위원의 충돌 파문에 대한 의견’에서는 ‘주 위원의 인격을 모독한 정 위원 책임이 크다’는 의견이 47.1%로 가장 많았다. ‘당내 갈등을 조장한 주 위원 책임이 크다’는 의견은 27.6%였다. 이 격차는 특히 주 위원의 지역구가 있는 전남(53.2% 대 20.7%)에서 더 크게 벌어졌다.

■ 호남 신당에 대해… 광주·전남 “지지한다” 49.0%

지금 정치권의 최대 관심은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의 분열 가능성이다. 당장 당이 둘로 쪼개지지는 않더라도 당 밖에서 하나의 ‘야권 세력’이 결집되어 있으면, 그 존재감만으로도 당 내부에 큰 분란을 몰고 올 수 있다. 그 바탕은 천정배 의원의 당선으로 이미 마련된 셈이다. 천 의원은 당선 일성으로 “경쟁력 있는 신당을 만들어 대안 세력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호남 신당’에 대해서는 부정했다. “지역 정당이 아닌 전국 정당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역적 기반이 호남이 될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시사저널은 이번 호남 민심 여론조사를 실시하면서 ‘최근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호남 신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물었다. 46.9%가 ‘창당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고, 38.5%는 ‘창당 가능성이 작다’고 봤다. 지지 여부에 대해서는 43.4%가 ‘지지한다’고 답했고, 42.0%가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호남 신당에 대해 호남 지역민들은 창당 가능성을 크게 보는 반면, 지지에 대한 찬반은 엇비슷했다. 하지만 광주·전남에서는 ‘지지한다’(49.0%)는 의견이 ‘지지하지 않는다’(41.2%)보다 7.8%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호남 신당 창당 가능성을 크게 보는 응답자를 대상으로 ‘호남 신당이 창당된다면 꼭 참여했으면 하는 인사는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놀랍게도 손학규 전 새정치연합 고문을 꼽은 이가 30.6%로 가장 많았다. 의외의 결과가 나온 셈이다. 안철수 의원이 26.8%로 2위였고, 박지원 의원(10.7%), 박원순 시장(8.3%), 정동영 전 의원(8.0%) 순이었다.


■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 지지에 대해… 손학규 전 고문 1위 올라

리얼미터가 지난 5월11일 발표한 정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선 주자 지지율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위에 올랐고,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2위였다. 3위는 박원순 시장, 4위는 안철수 의원이었다. 물론 이는 전국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다. 야권 후보만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줄곧 문 대표가 선두를, 박 시장과 안 의원이 2, 3위로 뒤를 쫓는 ‘3강’ 체제가 유지되어왔다.

하지만 이번 시사저널-리얼미터의 호남 지역 여론조사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차기 대선 주자 중 어느 후보를 지지하는가’란 질문에서 1위는 손학규 전 고문(22.4%)으로 나타났다. 비록 오차 범위 내이긴 하지만, 빅3로 불리는 박 시장(20.5%), 문 대표(19.4%), 안 의원(18.6%)을 모두 제쳤다. 손 전 고문은 광주·전남 지역에서 24.6%로 호남 전체보다 높게 나타났다.

‘내년 4월 총선 때 어느 정당 후보를 지지하겠는가’란 질문에서는 ‘새정치연합 후보’가 33.6%로 가장 높게 나왔다. 하지만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호남에서 새정치연합 후보 지지율이 3분의 1 선에 그쳤다는 점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만하다. ‘호남 신당 후보’가 25.3%로 2위를 차지했다. 새정치연합으로선 긴장할 만한 수치다. 만약 신당이 생긴다면 내년 총선 때 새정치연합과 치열한 각축을 벌일 것임을 알려준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이번 조사 결과에서 특히 손 전 고문의 부상에 주목했다. 그는 “새누리당도 보수 정당이지만, 선거 때만 되면 ‘좌클릭’을 통해 중도 성향의 표를 흡수하며 승리를 이끈다. 새정치연합도 당연히 중도 성향을 공략할 수 있는 외연 확장을 꾀해야 하고,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손 전 고문 역할론이 커지고 그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 대표는 “비록 손 전 고문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긴 했지만, 정계에 복귀하는 수순이 자기 스스로 입장을 번복하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요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떠밀려 나오는 상황이 연출된다면 명분에서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과거 DJ(김대중) 역시 정계 은퇴 선언 이후에 복귀해서 호남의 전폭적인 지지로 대권을 잡는 데 성공한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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