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흔들기만 할 뿐 깃발 들 사람 없다
  • 김현│뉴스1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5.05.2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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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표 비판엔 한목소리…구체적 해법에선 ‘모래알’

4·29 재보선 참패 후폭풍을 겪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내 비노(非盧) 진영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재보선 참패 후 “친노(親盧)와 달리 비노 진영은 뚜렷한 구심점이 없고 결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재보선 참패에 대한 반발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당초 정치권의 예상을 벗어나 비노 진영은 문재인 대표를 향한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는 터다. 비노 진영의 집단적 반발이 어떤 강도와 방식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일단 문 대표는 당 내홍 수습을 위해 ‘초계파 혁신 기구’ 구성안을 고육지책으로 내놓았지만, 안철수 전 대표가 문 대표의 혁신위원장직 제안을 거부하면서 난항에 부닥친 상황이다.

정치권에선 잇따른 당내 갈등으로 비노 진영의 반발 강도가 거세지고 있지만, 하나의 흐름으로 귀착될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문을 보이고 있다. ‘모래알’이라고 평가받는 비노 진영의 결집력이 어느 수준을 보일지 미지수인 데다, ‘반(反)문재인 깃발’을 들어올릴 만한 중심 인물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비노 진영으로 분류되는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5월20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비노 진영이 하나의 계파가 아닌 만큼 어느 하나의 목소리를 내긴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한길 전 대표도 5월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문 대표의 ‘미발표 문건’에 대해 반박하면서 “소위 비노는 친노가 아니라는 게 공통점이지 조직으로 뭉친 계파가 아니다”고 말했다.

안철수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왼쪽)가 혁신위원장직을 제안한 문재인 대표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혀 당 내분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 시사저널 이종현
비노 진영, 단일 대오 형성 못하고 갈라져

실제 문재인 대표에 대해 공세를 퍼붓고 있는 비노 진영은 단일한 흐름이 아닌 세 갈래 정도로 구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 대표 사퇴보다는 친노 패권주의 청산 선언 등 구체적 움직임을 요구하는 그룹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소수 그룹 중에서는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또는 전당대회 개최로 새 지도부 구성을 주장하는 그룹과 신당 창당 등을 통한 야권 재편을 그리는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 정치권에선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그룹 중에서 동교동계 일부가 새 지도부 구성에, 정대철 상임고문과 박주선·조경태 의원은 천정배 무소속 의원을 포함한 야권 재편론 쪽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비노 진영 내 유력 인사들의 행보도 엇갈리고 있다. 2·8 전당대회에서 문 대표와 치열하게 경쟁했던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 김한길 전 대표 등은 문 대표의 직접적인 사퇴를 언급하지 않은 채 ‘책임론’을 거론하며 문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박 전 원내대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지나가선 안 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고, 김 전 대표는 “(문 대표가) 오로지 친노의 좌장으로 버티면서 끝까지 가볼 것인지, 아니면 그야말로 야권을 대표하는 주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결단을 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안철수 전 대표는 김 전 대표나 박 전 원내대표와 달리 “모든 선거에 대한 결과는 대표 책임”이라면서도 문 대표의 거취 문제에 대해선 직접적 언급을 삼가는 등 ‘문재인 체제 흔들기’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대신 문 대표와 만나 “지금은 빠른 시간 내에 당내 혼란을 수습하는 게 최우선”이라며 원내대표 합의 추대를 주장하는가 하면 문 대표가 제시한 혁신 기구에 전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끌어내며 ‘협력적 경쟁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다만 최근 문 대표가 제안한 혁신위원장직을 거부하면서 지난 5월19일 두 사람 간 회동을 둘러싼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어 안 전 대표가 다시 문 대표와의 ‘경쟁’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비대위원장 시절 친노 진영을 중심으로 한 주류 측의 공세로 비대위원장은 물론 원내대표직까지 사퇴했던 박영선 전 원내대표도 ‘혁신의 필요성’만 강조한 채 문 대표 책임론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 서울시 제공·연합뉴스·시사저널 박은숙
‘문재인 대안’으로 거론되는 인사 제각각

뚜렷한 비노 진영의 구심점이 없다 보니 비노 진영 내 의원들 사이에도 답답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많아지고 있다. 수도권의 또 다른 재선 의원은 “뭔가를 해보려고 해도 깃발을 들 만한 사람이 없으니 문 대표를 비판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현재 당내엔 안 전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 등 비노 진영의 구심점이 될 만한 인물이 있지만, 안 전 대표는 여전히 리더십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못 보여주고 있고 박 시장은 당 외부 인사라는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비노 진영에선 7·30 재보선에서 낙선한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의 흙집에 칩거하고 있는 손학규 전 상임고문을 거론하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 손 전 고문은 시사저널이 리얼미터에 의뢰해 조사한 호남 민심 여론조사(5월13~14일)에서 차기 대권 주자 1위라는 결과를 낳으며 정치권에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김한길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문 대표가 물러나더라도 현재의 당 상황을 수습하는 일을 새로운 사람이 하긴 어렵다”며 “경험도 많고 대선 주자로서 힘을 갖고 있는 손 전 고문이 비대위 체제 등을 이끌면 되지 않겠느냐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당내 대표적인 ‘반문(재인)’ 인사인 조경태 의원은 “손 전 고문은 훌륭하신 분”이라며 “손 전 고문이 (정계 복귀를) 결단해 필요하다면 나와 이 위기 과정을 수습하는 데 앞장서주시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정계 복귀를 촉구했다.

비노 진영 일각에선 ‘친노의 대안’으로 평가받는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거론하는 이도 없지 않다. 비노 진영 의원 모임인 ‘민주당의 집권을 위한 모임’(민집모)의 한 관계자는 “안 지사도 비노 진영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인물”이라며 “문 대표가 대권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안 지사가 굳이 친노 진영에 자신을 가둬두진 않을 것이다. 솔직히 안 지사를 보면, 노선이나 당내 스킨십적인 측면에서 비노 진영과 충분히 교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치권에선 비노 진영의 반발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비노 진영이 명확한 요구사항을 밝히지 않은 채 문 대표 책임론만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데다 비노 진영이 요구하고 있는 친노 패권주의 청산 이면엔 ‘공천권’이라는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측면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한 핵심 당직자는 기자들과 만나 “비노 진영은 솔직하게 자신들의 공천을 보장하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 아니냐”며 “그런 얘기를 대놓고 할 수 없으니 ‘친노 패권주의’라는 것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문 대표 등 친노 진영이 비노 진영의 반발에 강한 의구심을 제기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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