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녀가 갑자기 땅속으로 사라졌다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5.05.26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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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도시 개발로 우리나라도 싱크홀 사고 잦아

최근 싱크홀(sink hole)이 사건·사고 뉴스의 단골손님으로 등장하고 있다. 갑자기 도로가 무너져내려 길 가던 차 앞바퀴가 빠지는가 하면, 예고 없이 발밑이 푹 꺼지며 사람이 빨려들어가듯 추락한다. 고층 건물이 통째로 삼켜지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갑작스레 만들어지는 싱크홀은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다.

2010년 이후 서울에서만 총 3119건의 크고 작은 싱크홀이 발생했다. 문제는 매년 싱크홀의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 2010년 436건에서 2011년 572건, 2012년 691건, 2013년 854건으로 계속 늘어나다가, 지난해 779건으로 소폭 줄어들었다. 특히 여름 장마철에 싱크홀 현상이 두드러진다. 도대체 멀쩡하던 도로에 왜 갑자기 구멍이 뻥뻥 뚫리는 걸까. 싱크홀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2014년 8월22일 서울 서초구 교대역에서 서초역 방향으로 약 100m 떨어진 지점의 도로 한복판이 함몰돼 승합차가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 뉴시스
싱크홀의 가장 큰 원인은 지하수 유출

지난 2월20일 서울 도심 한복판 용산에 구멍이 뻥 뚫려 두 남녀가 사라졌다. 예기치 못한 깊이 3m의 싱크홀 등장으로 그 위를 걷던 남녀 행인 두 사람이 순식간에 추락한 것. 이 충격적 모습이 담긴 동영상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타고 급속히 퍼져 나갔다. 이를 본 시민들은 경악했다.

원래 싱크홀은 땅이 푹 꺼지는 ‘지반 침하’ 현상에 따른 자연적 구덩이다. 지반 침하를 일으키는 원인은 지하수다. 자연 상태의 싱크홀은 석회암 지대에서 자주 발생한다.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지하수에 녹으면서 서서히 땅이 꺼져내려 땅속에 빈 공간이 생긴다. 장구한 세월 동안 땅속 깊숙이 침투해 들어간 빗물이 암반의 빈 공간으로 스며들어 암반 지하수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긴 자연적 싱크홀은 때때로 수백 m가 넘는 웅장한 크기로 장관을 이룬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멕시코의 제비동굴(Cave of Swallow)이나 사리사리나마(Sarisarinama)라 불리는 베네수엘라의 거대 싱크홀은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관광 명소로 탈바꿈했을 정도다.

하지만 도심의 싱크홀은 상황이 다르다. 중국 곳곳이나 우리나라의 도심에서 생겨나는 싱크홀의 원인 역시 지하수다. 지하수를 너무 끌어다 쓰면 지반을 받치고 있던 지하수가 빠져나가면서 지반에 구멍(공동)이 생겨 지표가 무너질 수 있다. 멀쩡하던 도심 한복판에 뚫린 용산의 싱크홀도 공사 도중 지하수 누수로 주변 지반이 약해져 발생한 것이다. 싱크홀 바로 옆에 아파트 공사 현장이 있었던 게 원인이었다.

땅속의 낡은 수도관들도 도심 싱크홀을 부르는 위험 요소다. 낡은 상수도관에서 흘러나온 물이 주변의 퇴적물을 쓸어간 탓에 빈 공간이 생긴다. 지난해 국회의사당 앞에 생긴 깊이 5m짜리 싱크홀이 대표적인 예다. 도심의 싱크홀은 과다한 지하수 이용이나 개발 사업 추진 때 생기는 지하수 흐름의 교란, 상하수도관 누수 등 인간의 활동에 의해 인위적으로 발생하는 셈이다.

설마 기껏 지하수가 빠져나가는 것만으로 그렇게 큰 싱크홀이 만들어질까. 이는 땅속의 압력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땅속의 압력은 깊이가 깊을수록 커진다. 2.5m 깊이마다 1기압씩 높아진다. 따라서 25m에서는 10기압, 250m 지점의 암반층은 100기압의 압력을 받는다. 그 압력을 지하수가 받아내고 있는데, 만일 그 지하수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은 여러분의 몫이다. 빠져나가는 지하수의 양이 많을수록 싱크홀의 규모가 커지는 것 또한 당연하다.

지질적인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는 싱크홀 발생 우려가 크지 않은 편이다. 국토 대부분이 단단한 화강암층과 편마암층으로 구성돼 있고, 석회암 지역은 강원도 일부 지역에만 분포하고 있어 비교적 안정적이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싱크홀이 일어나는 이유는 자연 현상이 아닌 인위적인 데서 찾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토목공사나 무분별한 도시 개발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건설 과정에서 땅속을 깊게 파다 보면 지하수를 지표로 유출시키거나 지하수 흐름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월20일 서울 용산의 한 도로에 구멍이 뚫려 그 위를 걷던 남녀 행인 두 사람이 순식간에 추락했다. ⓒ MBC 뉴스 캡쳐
땅속 지도 마련으로 지하수 흐름 체크해야

그렇다면 싱크홀 공포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원인이 있다면 해법과 예방책도 있는 법. 극히 상식적이지만, 근본 대책은 무분별한 도시 개발을 중단하는 것이다. 지하수와 함께 도시 아래 흐르는 상하수도의 관리도 중요하다. 수도관에서 누수가 일어나면 지하수와 똑같은 역할로 또 다른 싱크홀을 만들 수 있다.

가장 정확한 조사 방법은 땅을 뚫어 관찰하는 시추법이다. 땅속의 상태를 직접 볼 수 있는 것보다 확실한 건 없다. 여기에는 지표 투과 레이더(GPR) 방법이 많이 쓰인다. 이 장비를 이용해 땅속에 전파를 쏜 뒤, 반사 또는 투과된 파의 속도와 파형을 분석해 싱크홀을 찾는 방식이다. 또 지표에 시추공을 뚫은 다음 시추공을 통해 지반의 온도를 재고, 주변 지하수의 수위 변화를 주기적으로 체크하는 방법도 싱크홀 예측 기법 중 하나다. 하지만 이들 방법은 지표 가까운 곳의 상태만 관측할 수 있고, 이미 들어선 건물 지하의 상태는 확인할 수 없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이에 도심의 지반 정보가 중요해지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는 지하 공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3D 통합 지도를 만들어 싱크홀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 중이다. 서울시는 1998년부터 최근까지 서울 시내 1만5000군데를 시추한 자료를 바탕으로 ‘서울시 지반 정보 통합 관리 시스템’을 마련했다. 확실한 땅속 정보의 ‘지질도’인 셈이다. 이를 통해 지하수의 흐름을 늘 모니터링해나갈 예정이다. 이 시스템에서는 서울 송파구 석촌 지역이 모래 기반의 땅으로 나타난다. 미국(플로리다·테네시 주)은 이미 ‘싱크홀 분석 지도’를 만들어 안전관리에 활용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싱크홀 감지에 인공위성 영상 레이더(SAR)도 활용하고 있다. 영상 레이더로 특정 주파수의 전파를 땅으로 쏜 다음, 반사돼 위성으로 되돌아오는 전파의 시간을 재 거리를 측정하는 방법이다. 잴 때마다 거리가 점점 길어졌다면 땅이 가라앉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데이터를 3년 이상 모아 싱크홀을 찾는다.

미국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루이지애나 주의 지반 변화 데이터를 모아 200m의 초대형 싱크홀을 찾아냈다. 덕분에 그곳 주민들은 일찌감치 대피해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인공위성(COSMO-SkyMed)을 이용해 2012년 소금 호수로 유명한 사해(死海) 인근의 싱크홀 전조 현상을 잡아냈다. 2013년에 발사된 우리나라의 아리랑 5호에도 영상 레이더가 실려 있다. 그동안 전송된 데이터를 분석하면 내년쯤 싱크홀 예측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싱크홀을 찾을 수 있는 모든 방법이 유기적으로 결합돼 하루빨리 싱크홀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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