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이란 빚이 없는 사람이죠”
  • 윤영무│MBC아카데미 이사 ()
  • 승인 2015.06.0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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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김호 취옹예술관장의 별난 ‘백만장자론’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과 가평군 상면 일대에 걸쳐 있는 축령산(祝靈山·879m).  산자락의 한 곳인 가평군 상면 수목원로 300번지에는 전통 한옥으로 지은 취옹예술관(炊翁藝術館)과 부속 건물인 전통 한옥 10채가 조선시대 서원을 확대해놓은 것처럼 배치돼 있다. 취옹이란 뜻은 예술관 관장인 김호씨(60)가 도예가인 자신의 아호를 따서 만든 것이다. ‘불을 땐다’는 취(炊)와 ‘늙은이’라는 옹(翁)에 예술관을 붙여 산속에 예술의 씨앗을 심고자 했다. 연간 수십만 명이 다녀간다는 아침고요수목원이 이곳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지만 일반인들은 아직까지 이곳에 전통 한옥 예술관이 있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아내와 함께 24년째 취옹예술관 운영 

김호 관장이 경기도 가평에 위치한 취옹예술관에서 통일을 염원하는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 취옹예술관 제공
취옹예술관 입구는 좌우에 기둥 하나씩을 세워 지붕에 기와를 얹은 일주문이다. 그곳을 지나면 전통 한옥 식당과 작은 연못이 나오고, 정면으로 좌우 길이 80m쯤 되는 석축(石築)을 만나게 된다. 이 석축의 돌계단을 따라 올라서면 취옹예술관, 전통 한옥 강의실(80명 수용 규모), 2층 누각(樓閣)이 나타난다. 또 다른 석축 계단을 올라가면 넓은 마당에 전통 한옥 객사 2채, 차를 마시는 사랑채 등 전통 한옥 4채가 고풍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끄트머리 한 구석 장독대에는 수십 년 된 전통 발효 보약 된장 항아리가 수십 개 있다. 사랑채에는 여성 손님 몇이서 문살창호 쪽을 향해 앉아 우두커니 밖을 내려다보고 있다.

김호 취옹예술관장은 24년째 이곳을 지키고 있다. 그는 1955년 양띠 생이다. 호적이 늦어졌기 때문에 실제 나이는 더 많다고 한다. 서울 성북동이 고향이지만, 흙에 반해 30대 초반부터 경북의 한 전통 가마터로 내려가 도예를 배웠다. 결혼 직후 경기도 양평에 정착해 몇 뙈기의 밭에 농사를 지으며 시골 사람처럼 살았다. 남들이 모두 서울로 갈 때 정반대로 시골로 내려간 셈인데 그 복도 잠시였다. 얼마쯤 살다가 산사태를 만나 겨우 목숨만 건지고 24년 전 지금의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그때부터 꼬박 4년 동안 낙엽송만 무성했던 산비탈 2000여 평을 개간하듯 터를 닦았다. 이때 나온 돌로 성벽 쌓듯이 석축을 쌓았는데 길이가 자그마치 1500m. 경기도에서 가장 긴 돌담이 됐다. 그 터 위에 혼자만의 힘으로 취옹예술관과 부속 건축물인 전통 한옥 10채를 지었다. 자연음식을 만들고 자수를 하는 부인 장은희씨가 그의 동반자다.

“빵모자를 쓰고 말총머리를 하는 이유가 있나요?” 필자가 물었다. 그는 우스갯소리로 그러는 것인지 모르지만 “머리 감기가 귀찮아서 그렇다”고 대답한다. 어째서 그는 전통 한옥에 푹 빠지게 됐을까. 도예가라면 도자기 굽는 일에 충실해야 하는 것 아닌가. 

“원래는 예술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려고 했지요. 예술인들이 몇 개월씩 묵으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순수 전통 한옥 공간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당초 예상과는 달리 수익성이 전혀 없는 겁니다. 돈에 대한 생각을 미처 못했어요. 몇 년 전부터 연수원 시설로 한 업체에 임대를 줬는데 건물 관리가 전혀 되지 않는 겁니다. 어떻게 지은 집인데…. 할 수 없이 제가 다시 들어와 이곳을 관리하며 한옥 숙박시설과 1박 2일 이상의 단체 연수원이나 세미나 장으로 개방해 활용하고 있습니다.”

“운영이 되나요?”

“….” 입을 한참 닫았다가 용기를 내는 듯했다.

“그게 안 됩니다. 단체 연수나 세미나 수입이 괜찮긴 하지만 이자 갚기도 버겁지요. 이자만 없다면 그럭저럭 운영이 될 텐데. 하지만 전통 한옥 숙박, 한옥 스테이를 사람들이 참 좋아해요. 외국인도 많이 오고요.”

전통 한옥 10채를 짓기 위해 그가 투자한 돈은 땅값까지 얼추 43억원 남짓이다. 이 중 12억원이 빚이다. 뜻을 같이하는 선후배들이 십시일반 도움을 주기도 하고, 은행 융자를 받아 메워나갔지만 점점 한계점에 이르고 있다. 처음에는 빚을 좀 졌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했으니 후회는 없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하지만 이자를 갚으면서 전통 한옥 10채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일은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최근에는 주말에 음악회도 열고, 전통 혼례 체험, 청혼의 방, 천연 염색 등 일반인을 위한 한옥 체험 행사도 열어봤지만 오히려 돈이 더 들어갈 때가 많았다.

시골에 정체불명 주택 많아 아쉬워  

“빚이 많으면 하루하루가 지옥 같을 수도 있는데, 투자자를 찾아보는 게 어떨까요? 아니면 투자가가 빚을 갚아주고, 김 관장님을 월급 사장으로 고용해 운영해도 될 것 같은데요.”

“여기는 힐링센터를 하면 딱 맞아요. 기업체 연수원으로 활용해도 좋고요. 연수원으로 허가를 받은 곳인 데다 한국관광공사가 인정한 우수 한옥 숙박시설까지 되어 있으니…. 사업을 하고 싶다면 같이 경영을 하고, 여의치 않다면 그런 분들에게 이곳을 넘기고 싶어요.”   

“넘긴다는 것은 판다는 말인가요?”

“네. 이자 내기에 지쳤어요. 이제 짐을 벗어던지고 전통 한옥이나 지으면서 살고 싶어요.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모양입니다. 저 같은 목수라면 집을 짓는 게 팔자지요.”

“도예가가 전통 한옥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도예를 하면 되잖아요?”

“도예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돼요. 가마터도 만들어야 되고…. 중학교 때 폐사(廢寺)에 갔다가 전통 한옥을 꼭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사실 전통 한옥만 지어가지고는 사업성이 없어요. 제 생각인데 사람들이 전원주택을 지을 때, 10평 내외의 보급형 전통 한옥을 개발해, 단지를 만들어 짓고 살게 되면, 10년 뒤 그 마을은 관광 명소가 될 수 있어요. 한국인의 주거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이 되니 전국을 그렇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국적 불명의 주택들이 시골 곳곳에 생겨나고 있어요.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전통 가옥이 많이 없어졌지요. 일본인들은 자기 조상들이 살던 집을 그대로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잖아요. 우리들이 살던 집을 다 뜯어내고 빌딩을 올렸다고 칩시다. 그러면 북촌이니 서촌이니 하는 곳이 있을 수 있겠어요? 저는 북촌 같은 마을을 이 땅에 남기고 싶은 거죠.”

“나무꾼이 가득 진 나뭇짐 지게를 부엌 앞마당에 부려놓으면 몸이 날아갈 것 같다고 해요. 김 관장님도 이제 예술관의 짐을 내려놓고 다른 일을 하고 싶은 건가요?”

“하하하…잘 보셨습니다. 내 속이 편한 게 백만장자지요. 욕심이 많아서 빚을 많이 졌어요. 욕심을 내려놓고, 빚을 다 갚고 나면 몸이 하늘을 훨훨 날아오를 것 같아요. 행복한 사람이란 별사람이 아닙니다. 빚이 없는 사람이지요. 빚을 갚으면 모두가 백만장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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