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올라탄 젊은 갑부들이 몰려온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06.16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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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김범석, 스마일게이트홀딩스 권혁빈, 록앤올 박종환 등

글로벌 모바일 앱 통계 분석업체 ‘앱애니(App Annie)’는 최근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이 올 1분기 미국·일본·영국 등을 제치고 모바일 데이터 사용량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가장 많은 데이터를 소비한 앱은 카카오톡이었다.

카카오톡은 2010년 3월 처음 서비스를 시작했다. 2009년 11월 국내에 아이폰이 출시된 직후였다. 당시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NHN 해외 사업 총괄 대표를 끝으로 경영에서 물러난 상태였다. 그런 그가 카카오톡을 통해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다. 김 의장은 2014년 10월 포털업체 다음과 ‘빅딜’을 성사시키면서 합병 법인인 다음카카오의 최대주주 자리까지 꿰찼다. 김 의장의 지분 22.2%와 개인 회사인 케이큐브홀딩스의 지분 17.6% 등을 합하면 지분은 43.26%에 이른다. 6월12일 다음카카오의 종가(11만4500원)에 보유 주식 수(2446만6788주)를 단순하게 곱해도 김 의장의 주식 가치는 2조8000억원에 이른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서경배 아모래퍼시픽 회장에 이은 재계 7위의 주식 부자로 등극한 것이다.

왼쪽부터 권혁빈 스마일게이트홀딩스 대표, 김범석 쿠팡 대표,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 박종환 록앤올 대표. ⓒ 시사저널 포토·뉴스뱅크 이미지

김범수 의장 보유 지분 가치 3조원 육박

카카오톡이 인기를 얻으면서 게임을 서비스했던 중소 게임 개발업체들도 대박을 쳤다. 국민 게임으로 ‘애니팡’ 시리즈를 개발한 선데이토즈가 최대 수혜자다. 애니팡 시리즈의 누적 다운로드 횟수는 현재 6000만건에 이른다. 이 회사의 매출은 2012년 238억원에서 2013년 416억원, 2014년 1441억원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2013년 말에는 코스닥에도 입성했다. 선데이토즈의 주가는 3000원대에서 1만7000원대로 4배 이상 올랐다.

이정웅 선데이토즈 대표는 2014년 3월 보유 지분 20%를 권혁빈 스마일게이트홀딩스 대표에게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주식을 넘기는 시기는 대주주의 보호 예수 기간이 끝나는 2016년 11월이다. 이 대표는 이번 거래로 1200억원을 손에 쥐게 됐다. 권혁빈 대표 역시 선데이토즈를 인수할 경우 주식 가치가 2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카카오톡에 ‘쿠키런’을 서비스한 지 3개월 만에 누적 다운로드 횟수 1000만건을 기록한 데브시스테즈의 이지훈·김동흔 공동대표 역시 2014년 10월 상장해 대박을 터뜨렸다. 데브시스테즈의 경우 70만주 정도의 스톡옵션을 임직원들이 나눠 보유하고 있다. 행사 가격은 500원에서부터 8900원까지다. 이 중 500원에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물량도 21만3000주에 달한다. 6월11일 이 회사의 종가가 3만2450원임을 감안하면 직원들도 돈방석에 앉을 것으로 전망된다.

주목되는 점은 김범수 의장이 다음과 카카오를 묶은 모바일 플랫폼으로 한때 사업 동반자였던 이해진 NHN 의장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내 검색 시장 1위는 다음이었다. 2000년 7월 네이버가 한게임과 합병하고, 2002년에는 질문형 검색 서비스 ‘지식iN’이 성공하면서 네이버는 포털업계 부동의 1위로 올라섰다. NHN은 현재 재벌 계열사가 아닌 IT(정보·기술) 벤처기업 중에서 유일하게 기업 가치가 20조원을 넘고 있다. 이 의장의 주식이 4%대임을 감안하면 가치는 1조2000억원대로 추정된다.

김 의장이 카카오톡에 게임과 뉴스, 만화, 아고라 서비스를 결합할 경우 강력한 모바일 포털을 구축할 수 있다. 김 의장은 5월 내비게이션 앱인 ‘김기사’의 개발사 록앤올의 지분 전량을 626억원에 인수했다. 이로 인해 박종환 대표를 포함한 ‘김기사’ 창업 3인방은 하루아침에 600억원대의 갑부가 됐다. 다음카카오는 향후 김기사와 카카오택시를 연동한 새로운 서비스로 네이버를 압박할 예정이다. 두 사람 중 누가 이기느냐에 따라 국내 인터넷 산업 지도가 다시 그려질 수 있다.

김범석 쿠팡 대표의 행보도 주목된다. 김 대표는 2010년 전자상거래(e커머스) 벤처 기업인 쿠팡을 설립했다. 이른바 ‘쿠팡맨’을 통한 당일 배송 서비스로 회사 설립 2년 만에 연 거래액 1조원을 돌파했다. 스스로를 ‘한국의 아마존’이라고 칭하며 한국의 e커머스 시장을 선점하는 데 성공했다. 쿠팡의 매출 중 70% 이상이 모바일을 통해 이뤄진다. 대한민국 국민 2명 중 1명이 현재 쿠팡 앱을 내려받은 상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쿠팡이 한국의 신생 업체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곳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김 대표는 최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으로부터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대학생 시절 김 대표의 롤모델은 손정의 회장이었다. 손 회장의 어록을 벽에 붙여놓았을 정도다. 그는 “재일교포로 좋지 않은 환경에서 성장했고, 학교 성적도 좋지 않았지만 자신감이 있었다. 그것이 모든 성공의 시작이었다”며 “한동안 손정의 회장의 어록을 벽에 붙이고 이메일에도 사인처럼 넣고 다녔다”고 말했다.

손정의 회장에게 10억 달러 투자받아

이번 투자로 김 대표는 제2의 도약을 위한 날개를 달았다. 지난해 5월과 12월 미국의 벤처투자사로부터 총 4억 달러(약 4400억원)를 투자받은 상태다. 이번 소프트뱅크 투자 건까지 합하면 1년여 만에 14억 달러(1조5500억원)를 유치한 셈이다. 이로 인해 쿠팡의 기업 가치가 5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일부 언론 보도가 나왔다. 김 대표의 주식 가치는 최소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경영 전문가들은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이나 박종환 록앤올 대표, 권혁빈 스마일게이트홀딩스 대표, 김범석 쿠팡 대표의 최근 성공에 주목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제조업 기반의 성장 엔진들이 하나둘 식어가고 있다. NHN·다음 등 스타트업 벤처 기업이 중견 기업으로 성장하는 확률은 더욱 낮아졌다. 모바일이 정체된 한국 경제에 새로운 출구를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동걸 한림대 객원교수는 “최근 30~40년 동안 벤처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한 경우는 손가락 안에 꼽힌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하루 빨리 조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수영 전 웹젠 사장 ⓒ시사저널 이종현, 방준혁 넷마블게임즈 의장 ⓒ 연합뉴스, 박관호 위메이드 엔터테인먼트 의장ⓒ 뉴스뱅크 이미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게임업체 웹젠은 코스닥의 ‘황금주’로 꼽혔다. 온라인 MMORPG(역할수행게임)인 ‘뮤’가 대박을 치면서 창업주였던 이수영 전 웹젠 사장은 하루아침에 벤처업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하지만 웹젠은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뮤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2005년 처음 적자를 기록했다. 핵심 개발 인력의 이탈이 가속화됐다. 후속작인 ‘썬’과 ‘헉슬리’도 크게 주목받지 못하면서 웹젠은 군소 게임업체로 전락했다. 한때 15만원을 웃돌던 주가는 계속 하락하더니 지난해 6월 4000원대까지 추락했다.

수렁에 빠져 있던 웹젠을 건진 곳은 중국의 게임 개발업체 킹넷이었다. 킹넷은 “뮤 온라인을 모바일 판으로 부활시키고 싶다”는 의사를 웹젠에 타진했다. 웹젠으로부터 뮤의 지적재산권(IP)을 사들인 킹넷은 모바일 판인 ‘전민기적’을 새로 만들었다. 이 게임이 중국 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서비스 시작 3일 만에 애플의 응용 소프트웨어(iOS) 장터에서 매출 1위, 다운로드 1위를 기록했다. 전민기적의 흥행 덕에 웹젠은 올해 2466억원의 매출과 73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에 비해 각각 236%, 469%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가만히 앉아 로열티를 받은 덕분에 웹젠의 주가 또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1년간 웹젠의 주가 상승률은 600%에 육박한다. 덕분에 시가총액 1조원 클럽 탈환에 성공했다. 비록 지금은 NHN엔터테인먼트에 인수돼 창업주인 이수영 전 사장이나 김남주 전 사장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지만, 게임 명가 부활을 위한 웹젠의 행진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넷마블 신화’의 주인공인 방준혁 넷마블 설립자(현 넷마블게임즈 의장)도 최근 부활에 성공했다. 방 의장은 2000년 게임 포털 넷마블을 설립해 큰돈을 벌었다. 2004년에는 800억원을 받고 넷마블 경영권을 CJ그룹에 매각했다. 3년간 경영권도 보장받았다. 그는 CJ인터넷의 초대 대표를 지내면서 넷마블을 게임 포털 1위에 올려놓았다. ‘서든어택’과 ‘마구마구’ 등이 대표적인 캐시카우였다.

그는 2006년 홀연히 게임업계를 떠났다. 이후 넷마블의 어려움이 가중됐다. 2011년에는 ‘국민 FPS(슈팅 게임)’로 불리던 서든어택마저 경쟁사인 넥슨에 빼앗겼다. 당시 서든어택은 회사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하던 효자 게임이었다.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내놓은 PC 온라인 게임들은 기대 이하의 성적을 냈다. 한때 넥슨·엔씨소프트·한게임(현 NHN엔터)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넷마블은 ‘정체기’에 빠졌다.

2011년 말 방 의장이 넷마블의 고문 형식으로 돌아왔다. 방 의장은 보유하고 있던 CJ E&M의 주식을 팔아 게임 개발 지주회사인 CJ게임즈(현 넷마블게임즈)의 지분을 사들였다. 현재는 CJ E&M을 제치고 이 회사의 최대주주(35.88%)로 등재돼 있다. 방 의장은 스마트폰 게임 개발사를 인수해 공격적 경영에 나섰다. ‘다함께 차차차’ ‘모두의 마블’ ‘몬스터 길들이기’ ‘세븐타이츠’ 등이 잇달아 히트를 치면서 중국 IT 기업인 텐센트로부터 5300억원을 투자받았다. 넷마블은 현재 NHN엔터와 엔씨소프트를 밀어내고 업계 2위에 올라 있다. 과거 게임업계를 주름잡았던 1세대 창업자들이 모바일을 통해 속속 복귀하고 있는 것이다.

‘미르의 전설’ 시리즈로 유명한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는 국내 온라인 게임 운영과 마케팅 사업권을 매각했다. 대신 모바일 게임에 회사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과거 FPS의 대명사였던 ‘스페셜포스’의 개발사 드래곤플라이 역시 명가 재건을 위해 ‘스페셜포스’의 모바일 버전을 개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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