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뒷거래위원회’로 불릴라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5.07.07 20:0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정위 직원 한 달 새 2명 비리 혐의로 구속돼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직원들의 잇단 비리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공정위 직원들이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잇달아 구속되면서 어느 공무원 조직보다 도덕성이 요구되는 공정위의 내부 기강이 무너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대구지검은 지난 6월24일 대구 지역의 건설감리 관련 단체에서 돈을 받은 혐의로 공정위의 김 아무개 사무관을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공정위 대구사무소 총괄과장으로 근무했던 김 사무관은 대구건축사회 산하 단체인 대구건축공사감리운영협의회에 조사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이 단체 이 아무개 부회장과 신 아무개 전 사무국장으로부터 2012년 12월부터 2013년 9월까지 총 4차례에 걸쳐 8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에 위치한 공정거래위원회. ⓒ 시사저널 임준선

이번 사건은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 소속 공무원이 조사나 단속을 할 수 있는 이른바 ‘갑의 지위’를 이용해 비리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이번에 구속된 김 사무관은 대구건축공사감리운영협의회의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한 조사 총괄 책임을 맡고 있었다.

잇따른 공정위 직원과 대기업 유착 비리

시사저널 취재 결과 검찰은 김 사무관의 또 다른 혐의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김 사무관은 대구사무소의 과장을 거친 이후 건설용역하도급개선과에 근무할 때 대기업에 조사 관련 정보를 흘린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김 사무관은 2014년 9월 SK건설의 불공정 하도급 거래 행위 사건을 담당하면서 조사 대상이었던 SK건설 측에 사건 처리 결과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지인이 운영하는 건설업체가 SK건설의 협력업체로 등록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에 대해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과 유착된 공정위 직원의 비리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6월 초에도 공정위의 내부 조사 정보를 대기업에 유출하고 그 대가로 수억 원대의 점포 입점권을 챙긴 혐의로 공정위 직원 최 아무개씨가 구속됐다.

무너진 ‘경제검찰’ 위상

부산지검 특수부는 6월1일 롯데쇼핑(주) 측에 현장조사 및 단속 정보 등을 알려주고 그 대가로 부산의 동부산관광단지 내 최대 상업시설인 롯데몰의 점포 입점권을 수수한 공정위 최 아무개씨를 구속했다.

대전사무소 총괄과장 출신인 최씨는 2012년 9월부터 2013년 9월까지 공정위의 단속 계획 등 내부 정보를 5차례에 걸쳐 롯데쇼핑 측에 알려주고 그 대가로 2014년 11월 롯데몰의 점포 입점권을 제공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최씨의 추가 혐의를 확인하기 위해 6월11일 공정위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최씨의 업무 처리 내용 등에 관한 자료를 공정위에 요청한 상태다.

대기업 등의 불공정 거래 행위를 조사해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하는 ‘경제검찰’ 공정위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한 달 사이에 공정위 간부 두 명이 비리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1996년 공정위 국장 등 현직 간부 3명이 기업체로부터 수천만 원대의 뇌물을 받은 것이 드러나 구속됐을 때도 공정위 안팎의 충격이 상당했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공정한 경쟁을 제한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를 엄중하게 제재하겠다”고 줄곧 강조해왔다. 그런데도 대기업과 공정위 직원의 유착 비리가 연달아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공정위의 내부 기강이 얼마나 무너졌는지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무너진 공정위의 기강과 공정위 소속 공무원들의 비위 행위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공정위로부터 제출받아 지난해 10월24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10월 말 기준 각종 비위 행위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공정위 직원은 총 9명이었다. 위법 사유별로는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 방해(4명), 허위 공문서 작성(3명), 금품 수수(1명), 직무유기(1명) 등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경찰 조사를 받은 공정위 직원 수는 2010년 2명, 2011년 1명, 2012년 6명, 2013년 5명에서 2014년에는 9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경찰 수사가 기소로 이어진 경우는 2010년 2건, 2011년 1건, 2012년 1건, 2013년 1건으로 집계됐는데 기소되지 않은 수사 사건은 대부분 벌금 등 약식 기소 처리됐다.

김기준 의원은 “경찰 수사를 받는다고 다 기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담합 등 기업들의 불공정 행위를 조사하고 심결까지 내리는 준사법기관인 공정위 공무원들이 경찰 수사를 받는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측 관계자는 "지난해 경찰 수사를 받은 건들은 금품 수수로 조사받은 직원 이외에는 대부분 각하되거나 무혐의로 종결됐다"고 해명했다.

공정위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그동안 공정위 직원과 대기업 간 유착 비리가 끊이지 않은 부분을 소홀히 넘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인사는 “공정위의 심각한 인사 적체 문제가 모든 비리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최근 공정위 간부 출신들이 대기업이나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공정위는 연초부터 각종 악재에 시달려왔다. 올 들어 정유사 담합에 4000억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한 사건이 대법원에서 패소했고, 남양유업의 대리점 밀어내기 등 ‘갑질’ 행태에 부과했던 119억원의 과징금도 고법에서는 패했다. 지난 6월 말에는 공정위가 포스코ICT의 담합 행위를 적발하고 부과 시효를 하루 넘겨 의결서를 보내 과징금 71억4700만원을 받지 못한 사건 또한 대법원에서 패소해 웃음거리가 됐다.

2014년 12월17일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이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세종심판정에서 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위기의 공정위, 변화가 필요하다

안팎에서 우려가 많지만 공정위는 잦은 비리 사건에 대해 안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6월17일 공정거래위원회의 업무보고가 있었던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 자리에서 정재찬 위원장은 내부 직원 비리 사건에 대한 의원들의 질타에 “(공정위)직원이 야구장에서 기업인들에게 치킨과 맥주를 얻어먹은 것과 같은 건이라면 가벼운 처벌을 할 수 있다. 또 아직 조사 중인 사안”이라고 해명했다.

공정위 관계자 또한 직원들의 잇단 비리 사건에 대해 “이번 사건들은 오래전에 벌어진 일이 우연히 연달아 터져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갑자기 비리 행위가 늘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대구지검에 구속된 직원은 금품 수수 혐의만 적용돼 기소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외의 혐의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며 “그동안 내부 감사 시스템을 통해 비위 행태를 거르지 못한 것은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공무원 조직에서 각종 비리 규정이 강화되고 있고 공정위 또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