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청와대 의중 떠보려 ‘간보기’?
  • 진희관│인제대 통일학연구소 소장 ()
  • 승인 2015.07.1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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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여사 평양 초청한 김정은의 노림수

이희호 여사의 8월 방북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지난해 말 김양건 북한 대남담당 비서에 의해 개성에서 전달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친서를 계기로 추진된 사안이다. 이 친서는 지난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3주기에 이희호 여사와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측에서 ‘화환과 조의문’을 보낸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에 다음 날 김 제1위원장이 12월18일자로 감사 편지를 보냈고, 24일 개성을 통해 전달된 것이다. 물론 북한은 최근 남한 측 언론의 ‘북한 고위층 망명설’ 등의 보도들에 대해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신랄하게 비난하면서, 이 여사의 방북이 불발될 수도 있다는 엄포를 놓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여사 방북, 민간 차원 아닐 수도

흥미로운 것은 초청한 측에서 ‘불발’을 언급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간의 진행 과정을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즉, 이희호 여사의 방북이 단순히 개별적이고 민간 차원의 방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남측 당국의 ‘메시지’ 또는 ‘요구’가 함께 포함된 반관반민(半官半民)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물론 이 여사 측에서도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호응을 해서건 아니건 간에, 현재의 꽉 막힌 남북 관계 혈맥을 풀기 위해 기꺼이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도움이 되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번 조선중앙통신의 논평은 이 여사의 방북에 더해서 우리 정부의 요구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박근혜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서 돌아봐야 할 사안들이 많을 것이며, 특히 공약 이행 등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을 점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더욱이 통일·대북 문제에서 어떠한 성과를 만들어왔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고민들을 북한 역시 모르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지렛대로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는지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2011년 12월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아 김정일 시신에 조문한 후 김정은 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이희호 여사가 2014년 10월28일 청와대를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을 접견하고 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연합뉴스

이 점은 북한의 유일 지도자인 김정은 제1위원장 역시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그 또한 시종일관 남측 정부를 비난할 수만은 없는 일이며,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서야 할 상황이다. 그래서 관계에 부담이 되지 않는 이희호 여사의 초청을 통해 해법을 모색하는 기회로 삼고자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감사 편지 전달자가 김양건 대남담당 비서였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그는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북측 책임자였다. 오랜 기간 통일전선부 부장으로 활동해온, 북한 내에선 대남 문제의 최고 실력자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2013년 6월에는 폐쇄되었던 개성공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북 장관급 회담을 개최하려다 ‘격’ 논란으로 파행을 겪었을 때, 우리 정부가 “김양건 비서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 그 인물이다.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동갑으로 1942년생인 그는 아직도 건재하다. 최근 매우 극소수를 제외하고 대다수 원로가 ‘뒷방’으로 밀려나고 있고 상당수가 젊은 인재로 교체되면서 김정은 시대 엘리트의 변동을 실감케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김 비서의 건재는 이례적일 수밖에 없다. 다른 의미로는 대를 이어 남북 관계와 남북 정상 합의를 유지하고 이어나가는 데 적합한 인물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와 같은 인물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기존의 남북 관계를 이어가고자 하고 있으며, ‘6·15’와 ‘10·4’ 체제로의 복원을 위해 지속적인 주장을 펴왔다. 지난 6월, 6·15공동선언 15주년에 발표된 ‘공화국 정부 성명’에서도 다섯 가지 입장을 밝힌 바 있고, 이 중 다섯 번째 내용이 ‘남북공동선언들을 이행하기 위한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6·15와 10·4 선언에 대해 “(남한 당국이) 말로만 존중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남북 관계의 근원적인 변화와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거의 남북 정상 합의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명확히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자신감에 찬 김정은 행보

왜냐하면 박근혜 정부는 과거 남북 정상 합의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정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도 보인 적이 없다. 애써 무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지난 4월 중순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홍용표 통일부장관은 남북정상회담 제안 계획을 묻는 질문에 대해 “사전에 신뢰를 쌓고 실무적인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힌 바 있다. 이명박 정부 이후 우리 정부는 기존의 남북 합의에 대해 침묵하고 있고, 북한은 계속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희호 여사에 대한 초청과 방북 추진은 해법이 전무한 남북 관계 개선에 단비가 될 수도 있으리란 기대를 낳고 있다. 해갈까지는 어렵지만 상호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 여사를 초청하게 된 배경은 우선적으로 답례의 차원이지만, 6·15 정신을 비롯한 기존 남북 합의와 그 프로세스를 계승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또한 남북 간 비공개 접촉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입장이 무엇인지 간접적으로나마 전해 듣고자 하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광복 70주년을 맞는 올 8·15에 ‘지도자’로서의 위상과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여사의 방북 초청과 접촉 과정 등이 갖는 의미는 적지 않다.

실제 최근 김정은의 행보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김정일 3년상 이후 이 여사와 현정은 회장에 대해 감사 서한을 보내고 초청하게 된 것은 일종의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지적도 있다. 올 신년사에서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그리고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6월 초 평양생물기술연구원 현지지도 때부터는 ‘김일성-김정일 휘장’(배지)을 가슴에 착용하지 않은 사진이 로동신문 1면에 빈번하게 실리고 있다. 뭔가 달라진 느낌이다. 향후 대남 관계에서도 이러한 자세를 보일지 관심이 가는 점이다. 이제 공은 우리 정부에 넘어와 있다. 일회성 방북으로 그치게 될 것인지, 이를 관계 개선의 출발점으로 삼을 것인지는 우리 정부의 의지에 달린 문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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