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강남 마지막 노른자위 ‘군침’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07.22 14:2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부지 인수해 ‘신세계 벨트’ 조성 구상

신세계그룹은 최근 10년간 가장 가파르게 성장한 재벌 기업 중 한 곳이다. 신세계와 이마트의 매출은 그사이 10배 이상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무려 30배나 늘어났다. 재계 서열은 22위에서 13위(공기업 제외)로 9계단이나 상승했다. 몸집만 키운 것이 아니다. 부채율은 300%대에서 100%대로 크게 낮췄다. 2006년 8조748억원이던 신세계그룹의 자산 총액은 지난해 27조원으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자산 규모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의 자산 증가율 평균을 두 배 이상 상회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브랜드를 내세워 과감히 투자하고 체질을 개선한 결과다.

마트·백화점 위주 성장 동력 한계

신세계의 변화를 주도한 이는 정용진 부회장이다. 정 부회장은 2006년 신세계 부회장에 취임했다. 경영 스승으로 알려진 구학서 전 회장이 지난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현재는 ‘홀로 서기’ 중이다. 요즘 정 부회장의 고민은 마트나 백화점식 성장의 한계를 어떻게 돌파하느냐다. 정 부회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마트를 오픈하고 가만히 있어도 손님이 북적인다는 말은 더 이상 공감할 수 없다”며 “요즘 할인업체는 온라인 모바일 커머스보다 뒤떨어진 구시대 유물 취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유통업계의 블루오션이었던 대형마트의 성장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서울고속버스터미널(경부선)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호남선)을 연계한 ‘신세계타운’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어 주목된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고속버스터미널과 신세계백화점. ⓒ 시사저널 최준필

정 부회장은 2012년 11월 부산 파라다이스 면세점을 인수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 지난해와 올해 김해공항과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면세점 사업을 본격화했다. 2012년 10월에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메리어트호텔, 호남선 터미널 등을 소유한 센트럴시티를 1조250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센트럴시티는 통일교 3남 문현진씨가 운영하는 국제통일교회재단(UCI) 소유였다. 통일교 측과 소유권 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신세계에 매각된 것이다.

이로 인해 신세계는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통일교 신도 수백 명이 서울 중구에 위치한 신세계백화점 본사로 몰려가 항의 집회를 열었다. 신도들은 “센트럴시티는 1년에 수백억 원을 버는 알짜 회사다. 신세계에 팔 이유가 없다”며 “UCI가 소송에서 불리해지자 보유 자산을 서둘러 처분한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신세계 측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에 따라 센트럴시티를 통해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을 계속 확대해 나갔다. 2013년 4월 IBK투자증권-케이스톤파트너스 컨소시엄(IBK펀드)으로부터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주식 38.74%를 2200억원에 인수했다. 이듬해에는 한일고속이 보유한 지분 9.55%도 900억원대에 매입했다.

서울고속터미널 부지는 강남에서 마지막 노른자위 땅으로 평가된다. 서울고속터미널(경부선)이 위치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19-3번지 일대의 공시지가는 매년 10% 가까이 상승하고 있다. ㎡당 가격이 2012년 1250만원에서 2015년 1600만원으로 3년 만에 28%나 뛰었다. 해당 부지가 5만8432㎡임을 감안하면 공시지가만 9350억원에 이른다. 바로 옆에 위치한 강남고속터미널(호남선) 부지까지 합하면 14만㎡로, 최근 현대차그룹이 인수한 삼성동 한전 부지의 2배에 달한다. 호남선 부지와 연계해 개발할 경우 인근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랜드마크 빌딩을 올릴 수 있다.

시장에서는 강남터미널 개발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신세계가 강남터미널과 호남터미널 부지를 개발해 ‘신세계 벨트’를 조성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신세계는 지난해 9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증축에 들어간 상태다. 6층짜리 판매 시설을 확장해 11층을 만들 예정이다. 증축이 마무리되면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영업 면적은 현재 5만1000㎡에서 2만4000㎡ 확대된 7만5000㎡(약 2만3000평)가 된다. 서울 시내 최대 규모인 롯데백화점 본점(7만㎡)을 뛰어넘게 된다. 신세계의 외식 브랜드도 속속 강남에 둥지를 틀고 있다. 한식당 올반과 수제 햄버거 가게 쟈니로켓, 딘앤델루카, 패이야드, 더메나쥬리 등 신세계그룹 산하 거의 모든 외식 브랜드가 최근 강남 신세계점에 둥지를 틀었다. 정용진 부회장이 꿈꾸는 ‘신세계 벨트’ 조성을 위한 정지 작업으로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개발되면 삼성동 한전 부지 이상 가치

고속터미널 부지를 ‘신세계 벨트’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터미널이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 한다. 대체 부지로 KTX 역이 위치한 수서 등이 거론되고 있다. 강남터미널 지분을 보유한 천일고속의 경우 이전 호재로 최근 1년 만에 주가가 149%나 급등했다. 정부도 최근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국토교통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전체 회의를 열고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가결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인허가 문제를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어 고속터미널 부지 개발에 더욱 힘이 실릴 전망이다.

하지만 우려도 만만치 않다. 신세계그룹이 현재 확보한 서울고속터미널의 지분은 48.29%다. 경영권은 확보했지만, 기존 주주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추가 지분 매입이 불가피하다. 기존 주주인 고속버스업체들이 연합해서 대응할 경우 신세계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7월21일 예비 입찰이 마감되는 동부익스프레스 인수전이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부익스프레스는 현재 한진(16.67%), 천일고속(16.67%), 중앙고속(5.54%) 등과 함께 서울고속터미널 지분 11.11%를 보유하고 있다. 신세계가 동부익스프레스를 인수하면 서울고속터미널 지분은 60%에 육박한다. 향후 서울고속터미널의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게 되기 때문에 일찍부터 신세계의 인수전 참여가 점쳐졌다.

하지만 신세계는 동부익스프레스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정용진 부회장은 6월 말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와 서울상공회의소 회장단 긴급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동부익스프레스 인수와 관련해 보고를 받지 않았다. 관심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부회장은 올해 4월 진행된 금호산업 인수전 때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당시 시장에서는 롯데그룹이 일부 사모펀드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금호산업 인수전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금호산업이 롯데에 매각되면 신세계는 호남의 전략 거점을 잃게 된다. 신세계는 2012년 롯데에 일격을 당한 아픈 기억이 있다. 인천시가 15년간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가 입점해 있던 인천종합터미널 건물 및 부지를 롯데그룹에 매각한 것이다. 2013년 서울 강남점이 들어서 있는 센트럴시티를 1조200여 억원에 인수했고, 5000억원의 보증금을 주고 광주신세계 입점 계약을 2033년까지 연장한 것도 그때의 쓰라린 기억 때문이란 분석이다. 롯데가 공격할 수 있는 빌미를 미리 제거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2월2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서울상공회의소 정기의원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금호산업 인수전 철회하고도 은밀히 타진

재계에서는 금호산업 인수전에 신세계가 어떤 식으로든 참여할 것으로 예상했다. 당시 정 부회장은 인수의향서 접수 전날까지도 “금호산업 인수전에 관심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신세계는 4개 사모펀드와 함께 입찰자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하루 만에 입찰을 철회했다. 시장에서는 최종 입찰 명단에 롯데의 이름이 없자 슬그머니 발을 뺀 것으로 봤다. 하지만 신세계는 금호산업 인수전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 않았다.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과 각을 세우고 있는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측에 공동 인수를 제안했다. 박찬구 회장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제안이었다. 친형과 소송을 진행 중인 상황에서 신세계와 함께 인수전에 참여할 경우 모양새가 좋지 않을 수 있다. 박찬구 회장 측이 이 제안을 거절하면서 신세계는 발을 뺀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이번 동부익스프레스 인수전에서도 정 부회장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다.

신세계는 이미 동부익스프레스 인수를 위해 1조원 이상의 실탄을 확보해놓은 상태다. 신세계는 최근 3억 달러 규모의 영구사채를 발행했고, 삼성생명 지분을 시간외 대량 매매 방식(블록딜)으로 처분했다. 이 돈으로 서울 시내면세점에 투자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시내면세점 사업자는 경쟁사인 호텔신라-현대산업개발 연합과 한화갤러리아에 밀려 무산됐다. 이 돈을 돌려 동부익스프레스 인수전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재계 관계자는 “신세계는 이전부터 서울고속터미널 지분 확보를 위해 물밑 접촉을 벌여왔다. 매물로 나온 동부익스프레스의 경영권을 보유한 KTB PE 측에도 지분 인수를 제안했지만 가격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 부회장이 의욕적으로 진행한 서울 시내면세점 입찰에서 미끄러졌기 때문에 동부익스프레스 인수전에 ‘올인’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