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 프로그램 ‘사적 유용’ 가능성 충분”
  • 엄민우·조해수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5.07.2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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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민간인 사찰’ 논란 관련 전 국정원·사정기관 관계자 증언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아내와의 불륜이 의심되는 한 사기꾼을 정보기관 내부 기술을 이용해 뒷조사를 벌여 혼쭐을 내준다. 주인공은 생면부지의 중고차 상인에 대해 이름은 물론 집 주소까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영화 <트루 라이즈>의 한 장면이다. 또 다른 영화 <다크나이트>에서도 주인공인 브루스 웨인이 악당 조커를 찾기 위해 시민들의 휴대전화를 전부 해킹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의 조수는 브루스 웨인에게 “감청은 비도덕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그의 곁을 떠날 뜻을 밝힌다. 결국 시민들을 해킹한 기계는 파괴됐다.

공익을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해킹의 사적 유용은 영화에서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운 주제로 등장한다. 그것이 현실세계로 옮겨올 경우엔 더욱 문제가 복잡하다. 그런 일이 2015년 7월 대한민국에서 발생했다. 국정원의 이탈리아 해킹팀 업체 프로그램 구매 사건이다. 국정원은 이 프로그램을 “민간인 사찰에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의혹은 점점 더 증폭되고 있다. 한 국내 해킹 전문가는 “스마트폰을 쓴다는 것 자체가 해킹 피해의 잠재적 대상일 수 있다. 이번 사태 이후 주변에서 그나마 안전한 아이폰으로 갈아타는 사람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감청은 먼 나라 이야기 아니다”

국정원이 이탈리아 업체로부터 구입한 해킹 프로그램 ‘RCS(원격 조종 시스템)’를 어떤 목적으로 사용했을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이번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에서는 국정원 담당 직원 임 아무개 과장의 자살과 국정원 직원 일동의 성명서 발표 등 극히 이례적인 내부  행보를 보며 ‘국정원이 감추려는 것이 심상치 않은 내용일 것’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국정원 사정에 밝은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이병호 국정원장의 경우 수십 년간 국정원에만 근무한 인물로 특히 보안이나 정보에서는 프로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다. 국정원이 ‘직원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단체 성명을 내는 등의 행위는 그의 스타일로 비춰볼 때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임 과장에 의해 삭제된 자료들이 상당히 민감한 내용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당장 프로그램 구매 시기 등을 봤을 때 국정원이 이를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했을 것이란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사정기관 및 정치권에서는 이와 더불어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심을 하고 있다. 바로 사적으로 유용했을 가능성이다. 여기에서 ‘사적 유용’이란 일부 내부 직원의 일탈 또는 어떤 필요에 의해 지시가 이뤄진 경우를 말한다.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 사적 유용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과거 국정원 및 사정기관 관계자 등의 증언에 따르면 배제할 수 없다. 다음은 전직 국정원 관계자 A씨의 말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해킹 프로그램이 사적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컨대 국정원 고유 업무와 상관없이 유명 인사나 일반인 등에 대해 (도·감청을) 시도했을 수 있다. 종북이나 테러 가능성을 염두에 둔 대상이 많겠지만, 100명 중 한두 명은 아닐 수도 있다. 이런 정황이 나올 경우 난리가 난다. 윗선은 알지도 못하고 낭패를 보는 것이다.”

업무상 국정원과 교류한 바 있는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국정원이 갖고 있는 감청 권한은 실로 막강하다. 스마트폰 감청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며 “과거 정부 시절 이야기지만, 업무적으로 알게 된 한 내부 관계자가 ‘(외부에서) 사적으로 궁금한 개인의 신상에 대해 자꾸 알아봐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고 고민스럽게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국회에서는 일단 정치적 이용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사적 유용에 대해서도 의심을 하고 있다. 해당 문제에 대해 추적 중인 새정치연합의 한 고위 당직자는 “보통 국정원 내부에서의 사적 해킹은 내부 고발자를 두려워해서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해외 서버를 거치는 등의 방식을 봤을 때 이번 건의 경우엔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뿐 아니라 다른 사정기관에서도 비슷한 일이 행해져 문제가 되기도 한다. 실제 개인의 주민등록번호 등을 조회해서 사적인 정보를 유출해 징계를 받은 사례도 있다. 2012년 한 경찰은 고교 동창의 부탁을 받고 사기·횡령 사건 피의자의 개인정보를 조회한 후 외부로 유출해 문제가 됐다. 이 경우처럼 프로그램을 악용하려 들면 얼마든지 개인의 사적 정보를 빼내 외부로 유출할 수 있고, 최소한 기술적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해킹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민간인이라 해서 사찰 도중 멈추긴 어렵다”

국정원은 업무상 필요에 의해 국가안보를 해칠 우려가 있는 용의자들에 대해 감청을 할 수 있지만, 그 주변 인물까지 해킹 및 감청을 하는 것은 사실상 금지돼 있다. 이번에 해킹 대상이 된 인물이 그런 사람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직 국정원 관계자 A씨는 “어떤 사람이 의심되면 그 사람만 해야 되는데 주변 인물까지 확산될 경우 그건 민간인 사찰이 된다. 이번에도 이런 경우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전직 기무사 관계자 역시 “기무사는 법적으로 군인만 사찰 대상이고, 조사 과정에서 민간인이 등장하면 이를 국정원이나 경찰로 넘겨야 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정보요원의 업무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 것이다. 사찰 대상인 군인과 연관된 인물이 민간인이라고 해서 멈추고 더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안철수 의원이 위원장을 맡은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해 국정원에 넘긴 나나테크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검찰 수사와 별도로 이번 사태와 관련해 기술적인 부분까지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계획이다.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 소속의 한 위원은 “국정원은 필요에 의해 감청 등을 할 수 있지만 무분별하게 불법으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다. 설사 나를 해킹하더라도 합법적으로만 했다면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이번에 국정원은 특정인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 대해 불법 해킹을 했을 가능성과 정황이 나오고 있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모든 국가의 정보기관은 해킹을 한다. 미국 CIA도, 이스라엘 모사드도, 영국의 MI6도 마찬가지다. 정보기관의 해킹 및 감청 등 정보 수집 행위 자체는 어찌 보면 당연한 활동이지만 두 가지 경우에 있어 문제가 된다. 우선 해킹 대상이 법의 테두리를 넘어 정해질 경우, 그리고 해킹 사실이 외부에 들통났을 경우다. 두 가지 다 국가 정보기관으로서의 위상을 흔드는 일이다. 첫 번째 경우엔 정보기관으로서의 품격에 손상이 가고, 두 번째 경우엔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 이번 국정원의 경우엔 이미 후자는 밝혀졌고 전자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 등이 이뤄질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전자도 문제지만, 실상은 후자가 더 심각하다고 말한다. 드러나지 말아야 할 정보기관의 동선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 소속 한 교수는 “만약 국가안보를 위해 무분별하게 일반인들을 해킹했다면 행정편의주의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슬픈 건 국정원의 해킹 사실이 들통났다는 사실이다. 향후 국정원이 제대로 된 안보 지킴이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로 넘어간 국정원 해킹 논란

국정원 해킹 논란의 ‘공’은 결국 검찰로 넘어갔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제대로 진행될 것이냐는 데는 의문부호가 따라붙는다. 공을 받는 검찰 쪽도 이번 사건을 마땅찮아 하는 분위기다. 시민사회에서는 벌써부터 특검을 요구하고 있다. 

사건 담당 부서를 둘러싼 신경전도 벌어지고 있다. 야당에서는 공안부를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때와 같은 ‘꼬리 자르기’가 또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안으로 나오는 것이 서울중앙지검 3차장 산하의 첨단범죄수사부다. 첨수부가 키를 잡고, 신설된 대검 과학수사부(부장 김오수 검사장)가 복원과 분석 등 수사의 상당 부분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야당에서는 신속한 수사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사건 핵심 관계자들이 사망하거나 출국해 수사 대상과 범위를 정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진실 규명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핵심 관계자인 임 아무개 과장이 자살했기 때문이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당시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국정원 대북 파트 권 아무개 과장이 임 과장과 똑같이 차에서 번개탄을 피워 자살한 후 결국 윗선을 밝혀내지 못했다. 

시기도 민감하다. 차기 검찰총장 교체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수사는 서울중앙지검에서 맡게 되는데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은 김수남 대검 차장 등과 함께 유력한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채동욱 전 총장이 낙마한 이유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두고 청와대와 충돌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차기 총장 선출을 코앞에 둔 민감한 시점에 청와대의 심기를 건드리는 짓을 누가 하겠는가”라면서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하는 시늉만 하거나, 아니면 특검으로 떠넘기면 그만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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