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35세 이상 남자가 병역 비리 도왔다”
  • 노진섭 기자 (노진섭 기자)
  • 승인 2015.07.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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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아들 병역 의혹 재판에서 공방…서울시 “대꾸할 가치 없는 허위 사실”

7월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양승오 박사에 대한 3차 공판이 열렸다. 양 박사(동남권원자력의학원 핵의학과 주임과장)는 2012년부터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주신씨의 병역 비리 의혹을 제기해왔다. 검찰은 지난해 그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기소했고 두 차례 공판이 진행됐다. 이날 양 박사는 피고인으로 법정에 입장했다. 그는 “박주신씨가 증인으로 출석하면 많은 부분이 풀릴 텐데, 그가 영국에서 귀국하지 않아 병역 비리 의혹을 키우고 있다. 8월께 박씨를 고발해 법정에 세운 후 진실을 밝힐 것”이라며 “권위 있는 영상의학 전문가의 검증을 받아 박씨가 병무청에 제출한 척추 사진이 가짜임을 증명하겠다”고 밝혔다.

박씨는 현재 영국에 유학 중이다. 양 박사의 변론을 맡은 차기환 변호사는 “박씨가 1시간만 내서 척추 사진을 찍으면 모든 의혹이 풀린다. 만일 귀국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우리가 판사·검사·의사를 대동해 영국으로 찾아가 그곳에서 촬영할 의향도 있다”고 말했다.

양 박사는 서울대 의대 출신으로 국내 최고 영상의학과 의사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박씨의 병역 비리 의혹을 제기해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아 보인다. 그는 “전문가로서 양심상 의혹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며 “내가 제기한 의혹이 진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나면 의사 면허를 반납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허무맹랑한 얘기’라고 일축했다. 박원순 시장 측 관계자는 “2년 전 세브란스병원에서 공개 검증으로 끝난 사안이다. 악의적인 의도로 지엽적인 의혹을 제기해서 흠집을 내려는 것이다. 그래서 검찰이 허위사실 유포로 그들을 기소한 것이지 우리가 요청한 것도 아니다. 그들의 의혹 제기에 구체적으로 답변할 가치도 없다. 해명하는 것이 오히려 그들의 노림수에 말려드는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박주신씨의 병역 비리 의혹을 제기한 양승오 박사와 박원순 서울시장 ⓒ 서울시청 제공, 연합뉴스

“척추 사진 속 인물은 박주신 아니다” 

양 박사의 의혹 제기는 2011년 8월 박씨가 공군훈련소에 입소한 후 3일 만에 허벅지 통증으로 퇴소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해 11월 재입영 통지에 응하지 않던 박씨는 12월 자생한방병원(서울 강남구)에서 MRI(자기공명영상)를 찍고, 혜민병원(서울 광진구)에서 허리디스크 진단서를 받았다. 이를 병무청 서울사무소에 제출하면서 재검을 받았다. 재검 현장에서 CT(컴퓨터 단층촬영)를 찍었고, 이것을 제출한 MRI와 비교했다. 병무청은 동일 인물임을 확인하고 현역에서 4급 공익근무로 변경 처분을 내렸다.

2012년 2월 강용석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박씨의 병역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박씨가 병무청에 제출한 MRI 사진이 박씨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허리디스크가 심한 제3자의 사진을 병무청에 제출해 병역을 기피했다는 주장이다. 그러자 박씨는 그해 2월22일 세브란스병원에서 공개적으로 MRI를 촬영했다. 그 결과 병무청에 제출한 MRI 사진과 동일 인물로 확인됐다. 강 의원은 의원직을 사퇴했고 그로써 병역 비리 의혹은 일단락됐다.

이 무렵 양 박사는 MRI 사진에서 미심쩍은 부분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30년 이상의 임상 경험상 뼈 사진을 보면 환자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는데, 병무청에 낸 척추 사진 속 인물은 당시 27세인 박주신씨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의학적 근거로 제시한 게 골수 신호 강도다. 이는 척추에 있는 골수 상태를 식별하는 표지인데 사람의 나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20세 이하 청소년 경기 전에 선수들의 손을 MRI로 찍어 나이를 감별하는 것도 골수 신호 강도와 성장판 양상을 보기 위함이다. 양 박사는 “골수에는 조혈 골수와 지방 골수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조혈 골수가 줄고 지방 골수가 늘어난다. 20대에 30% 정도이던 지방 골수는 나이를 먹으면서 늘어난다. 박씨가 세브란스병원에서 찍은 MRI에는 지방 골수가 30대 중반 이후의 사람처럼 많다. 그래서 그 척추 사진 속 인물은 20대인 박씨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양 박사는 그 척추 사진을 외국 의학자들에게도 보내 객관적인 의견을 들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유럽 근·골격 방사선학회 골다공위원장으로 영상의학계 석학으로 불리는 주세페 굴리엘미 이탈리아 포지아 대학 영상의학과 교수는 “골수 양태와 추간판 신호에 근거해 해당 요추 MRI는 36~40세 남성의 것”이라고 판단했고 태국 치앙마이 대학의 너트 박사도 “40~60대로 추정된다”는 소견을 보내왔다.

양 박사는 척추 사진 속 인물을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등에 약 3cm 두께의 피하지방이 관찰된 점 등을 종합하면 최소 몸무게가 95㎏ 이상이고, 비만한 30대 중반 이후의 남성이 사진 속 주인공”이라며 “이 사람이 27세 70~80㎏인 박씨를 대신해 척추 사진을 찍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 “이미 공개 검증으로 끝난 사안” 

두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하나는 박씨가 병무청에서 재검을 받을 당시 CT를 찍었고, 그날 제출한 MRI와 동일 인물임이 확인됐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차 변호사는 “병무청 서울사무소 2층에 CT 촬영실이 있고 그 출입문 옆에 화장실이 있다. 그곳에서 제3자가 박씨의 옷으로 갈아입고 CT실로 가서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촬영기사도 박씨인지 아닌지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이 수사 과정에서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의문은 박씨가 세브란스병원에서 공개 검사를 받은 부분이다. 박씨는 기자들이 입회한 가운데 MRI를 찍었고 기존에 병무청에 제출한 사진과 동일 인물임이 밝혀졌다. 그런데 당시 세브란스병원은 MRI를 찍는 사람의 신분을 확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브란스병원 MRI실에는 4개의 독립된 촬영실이 있다. 한 개의 촬영실에는 박씨가 있었지만 다른 촬영실에서 제3자가 척추 사진을 찍고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차 변호사는 “공개 검증이라고 하지만 서울시 관계자, 세브란스병원 관계자, 서울시가 선발한 시청 출입기자 4명만 참관했다. 그나마 기자들이 그곳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2시10분이다. 관계자들이 주고받은 문자 기록을 보면 제3자는 1시50분에 이미 그곳에 도착했다”며 “그날 제3자가 척추 사진을 찍었고 병무청에 제출한 사진과 대조해 동일 인물임이 확인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짜 박주신 척추 사진 두 장 확보했다”

1년 동안 양 박사의 공판이 진행되는 가운데 두 장의 척추 사진이 더 나왔다. 공군 훈련소에서 찍은 사진과 영국 비자를 받기 위해 찍은 사진이라고 하는데, 차 변호사는 공군 교육사령부 등에서 이들 사진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이 사진을 병무청에 제출한 사진(자생병원에서 찍은 것)과 비교하면 수많은 의혹이 한 번에 풀릴 것으로 보고 있다. 검증 결과가 동일 인물로 판명 나면 양 박사는 허위사실 유포자가 되고, 서로 다른 인물로 결론 나면 박씨는 병역 비리를 저지른 것이 된다는 설명이다.

7월21일 법정에서도 이 사진이 대형 화면을 통해 공개됐다. 증인으로 나온 세브란스병원 의사도 “두 사진이 다르다”는 의학적 소견을 밝혔다. 자생병원에서 찍은 사진(병무청 제출)에는 갈비뼈에 석회화(칼슘이 쌓인 흔적) 소견이 있다. 석회화란 나이가 들어 뼈에 발생하는 퇴행성 증상의 하나로 질병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한 번 생기면 없어지지 않으며 뼈 사진을 찍어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 등장한 두 사진에는 그런 흔적이 없다.

또 ‘자생병원 사진’에는 1번 흉추(등뼈)의 극돌기(등에 만져지는 볼록한 뼈)가 곧다. 하지만 ‘공군 사진’과 ‘영국 비자용 사진’에는 이것이 오른쪽으로 휘어 있다. 변호인 측은 이들 사진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을 재판부에 신청했다. 차 변호사는 “외부 압력에도 휘둘리지 않고 감정해줄 의학자 두 명을 재판부에 건의했다”며 “1~2주 내에 검증 허락이 떨어지면 공개된 곳에서 감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양 박사는 “지금까지는 병역 비리 가능성을 99.9%라고 봤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 가능성을 100%로 수정하겠다”고 말했다.

법정에는 박씨의 귀도 증거로 나왔다. 자생병원에서 찍은 뼈 사진에 나타난 귀 모양과 실제 박씨의 귀 모양이 다르다는 것이다. 자생병원에서 찍은 뼈 사진 속 인물의 귀는 귓불이 넓고 둥근 모양인데, 박씨의 귀는 귓불에 살이 없는 날렵한 형태라 확연히 구별된다는 주장이다.

이런 공방이 오가는 법정에 언론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차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단순한 병역 면탈을 넘어섰다. 여러 증거로 볼 때 정상적이지 않은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 사건이다. 서울지방병무청,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그리고 관련 병원들이 모두 진실을 숨기려고 한다”며 “그럼에도 주요 언론은 이 문제를 다루지 않고 있다”며 섭섭한 심기를 드러냈다.

영국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박씨가 향후 법정을 찾을지가 주목된다. 재판부는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박씨의) 소환 절차를 밟겠다. (서울시가) 소환 가능한 일자를 보내주면 재판을 통해 신문하고 신체검사를 하겠다는 취지다. 그쪽에서 답변이 없다면 법원에서 기일을 정해 소환을 하고 불응하면 그에 따른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증인 신분인 박씨를 강제 구인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양 박사 측은 박씨를 강제로 법정에 세우기 위해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차 변호사는 “병역법과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고발하면 박씨가 한국에 없으므로 기소 중지가 될 텐데 여권법상의 취소 조치 등으로 강제 소환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래서 재검 등을 받으면 모든 의혹이 투명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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