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앞세우고, 문재인은 ‘뒤로 한 발짝’
  • 김현│뉴스1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5.07.29 14:1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정원 해킹 의혹’ 호재 만난 야당, 딜레마에 빠진 까닭

또다시 ‘국가정보원’이라는 블랙홀이 여의도 정치권을 빨아들이고 있다. 박근혜 정부 임기 첫해였던 2013년, 국정원의 불법 댓글 의혹 사건으로 야당이 장외투쟁에 나서는 등 여야가 치열한 대치를 벌인 적이 있는데,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 구매를 통한 감청 의혹이 다시 정국을 휩쓸고 있다. 이번 국정원 감청 의혹을 둘러싼 여야 간 대치가 2013년 당시처럼 ‘강(强) 대 강(强)’ 대결 국면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013년 ‘국정원 댓글 파문’ 대응 실패 데자뷰

시곗바늘을 2013년으로 돌려보자. 2012년 18대 대선을 앞두고 터진 국정원의 불법 댓글 의혹 사건은 해를 넘겨 2013년 정국을 뒤흔들었다. 특히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 지휘 아래 있던 수사팀의 수사 내용이 속속 전해지면서 국정원 댓글 사건은 정치권의 한복판에 자리 잡았다.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은 당내 강경파들을 중심으로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을 파고들었고, 김한길 대표를 중심으로 한 온건 성향 지도부도 공세에 동참했다. 여권은 ‘대선 불복’ 프레임을 앞세운 맞대응과 함께 이른바 2007년 남북정상회담 ‘NLL 대화록’ 카드로 맞불을 놓으며 반격했다. 국정원 문제를 둘러싼 여야 간 대치가 장기화되면서 야당 지도부는 같은 해 8월 서울시청 앞 광장에 천막당사를 설치하고 장외투쟁에 돌입했다. 김 대표는 당시 45일간 노숙 투쟁을 벌였다.

7월17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오른쪽)가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 연석회의에 참석하는 안철수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 위원장을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2013년 완전히 꺼지지 않은 ‘국정원 정국’의 불씨는, 국정원이 지난 2012년 이탈리아의 ‘해킹팀’ 업체로부터 해킹 프로그램을 구매해 운용한 정황이 최근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드러나면서 되살아났다. 그러나 국정원 해킹 의혹 사건을 다루는 새정치연합의 태도는 2013년 그때와는 사뭇 다르다. 2013년의 국정원 정국 당시엔 김한길 대표의 노숙 투쟁이 말해주듯 일정 부분 국회 의사일정마저 거부한 채 ‘강경 대응’ 기조가 주도했다. 반면 현재는 국정원 해킹 의혹과 추가경정예산안 문제에 대한 ‘분리 대응’ 방침을 천명하는 등 ‘차분한 대응’ 기조를 보여주고 있다. 안규백 전략홍보본부장은 7월23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국정원 해킹 의혹 사건은 단계적으로 차분하게 대응해나갈 것”이라며 “의사일정 연계 등은 하책 중의 하책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어떤 사안을 다른 사안과 연계하는 데 대한 국민 여론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의 이 같은 차분한 대응 기조는 2013년 국정원 댓글 의혹 파문에서 얻은 교훈으로 보인다. 당시 야당은 강한 공세를 퍼부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게다가 여권이 대응 카드로 꺼냈던 ‘대선 불복’ 프레임이나 ‘NLL 대화록’ 파문에도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역공의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컸다. 특히 그 주범으로 문재인 대표가 꼽히기도 했다. 문 대표가 당시 NLL 대화록 파문에 대한 반격에 나서면서 김한길 대표 등 당 지도부와 엇박자를 낸 것이 오히려 전선을 흐트러뜨리게 했다는 지적을 받은 것이다. 이와 관련해 새정치연합의 한 핵심 당직자는 “2013년 당시엔 국정원 문제를 차분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급하게 다루다 보니 우리 스스로 헛발질을 하면서 여권에 공세의 빌미를 준 게 많았다. 그때를 되새겨서 지금은 세밀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당시 지도부가 비주류인 김한길 대표 체제였던 탓에 주류였던 친노·강경 그룹이 분위기를 대신 이끌었던 것과 달리 지금은 문 대표를 중심으로 한 주류가 당 지도부를 맡고 있다는 점도 이런 기조가 형성되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문제는 국정원 해킹 의혹 사건에 야당이 제대로 대응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새정치연합은 백신 개발자로서 IT 전문가인 안철수 전 대표를 내세워 철저한 진상 규명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아직까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 국정원이 야당의 자료 제출 요구에 대해 ‘국가기밀 유출’ 가능성을 제기하며 거부하는 등 실체를 밝히는 데엔 상당한 제약이 있는 상황이다. 안 전 대표가 위원장으로 있는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해킹팀에서 유출된 400GB의 자료를 보고 있는데, 국민이 납득할 만한 내용이 나오는 데는 시간이 좀 필요하지 않겠느냐”며 “국정원이 반박할 수 없는 자료를 찾기 위해선 우리가 요구한 자료가 필요한데, 그 자료를 받지 못한다면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안보’를 앞세운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방어막으로 자칫 이번 사건이 정쟁으로 흐를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 또한 새정치연합으로선 고민거리다. 안 전 대표가 연일 기자회견에서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은 국정원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 국정원 본연의 일인 안보에 집중케 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선 이번 국정원 해킹 의혹 사건에 안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선 것을 두고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안 전 대표가 이번 해킹 의혹 사건을 통해 정치적으로 부각되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제대로 파헤치지 못할 경우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비노’ 진영에 속하는 한 재선 의원은 “안 전 대표가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해 실체를 드러내면 정치적으로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국정원 사건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의혹만 부풀렸다는 인상을 주게 되면 정치적인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비노 진영의 한 인사도 “사실 지금은 문 대표가 전면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제한 후 “그런데 안 전 대표가 나서 국정원과 정쟁을 벌이고, 문 대표는 한 발짝 물러서 당내 통합과 민생을 챙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어찌 보면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