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두 살 할머니, 그리고 제3의 인물
  • 경북 상주=이승욱 기자·유지민 인턴기자 ()
  • 승인 2015.07.2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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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농약 사이다’ 살인 사건 미스터리 현장 취재

지독히도 고요했다. 7월22일 오후 주민 80여 명이 살고 있는 상주시 공성면 금계1리는 인적 하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조용했다. 성인 무릎만큼 자란 벼가 때때로 불어오는 바람에 출렁이며 녹색의 물결을 만들어냈다. 논두렁에서 스며 나오는 짙은 풀냄새가 코끝을 자극할 뿐,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었다. 6명의 할머니가 고독성 살충제가 든 사이다를 마시고 쓰러졌던 마을회관을 둘러보던 기자의 뒤에서 정적을 깨는 메마른 음성이 들려왔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빚어진 참극

여든을 바라보는 김 아무개 할머니가 자전거를 끌고 나오며 기자에게 말했다. “저기요, 아저씨. 저 구루마(보행용 카트) 좀 치워주면 안 되능교.” 김 할머니가 가리키는 손가락의 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경찰이 마을회관 현관 입구에 설치한 노란 폴리스라인 안으로 분홍색과 검은색 보행용 카트 2대가 보였다. “저거만 보면 그 할매들 생각이 나서 못 살겠다니깐. 저 구루마 썼던 할머니 하나는 저세상 갔고, 다른 하나는 병원에 누워 있잖어. 제명을 다 살지 못했으니 얼마나 불쌍하노. 아이고….”

ⓒ 시사저널 최준필

김 할머니의 눈에는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사건이 발행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금계마을 주민들은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금계마을의 평화를 깨뜨린 참담한 비극을 마주한 주민들의 마음속에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공포가 뒤엉켜 있는 듯했다.

지난 7월14일 오후 2시43분 금계1리에 사는 고령의 할머니 6명이 마을회관 냉장고에서 1.5리터짜리 페트병에 담긴 사이다를 나눠 마신 후 쓰러졌다. 이들 중 정 아무개 할머니(86)와 라 아무개 할머니(89)가 숨졌고, 신 아무개 할머니(65), 이 아무개 할머니(88), 민 아무개 할머니(83), 한 아무개 할머니(77)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상태가 상대적으로 나은 신 할머니를 제외하면 대부분 의식이 불분명하고 위중한 상태다. 할머니들이 나눠 마신 사이다는 사건 발생 하루 전날인 7월13일 초복을 맞아 동네 주민들이 마련해준 것이다. 초복 날 마시고 냉장고에 보관해둔 사이다를 다시 마시는 과정에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경찰 수사 결과 사이다 병에서는 고독성 살충제인 메소밀 성분이 검출됐다.

경찰은 피해 할머니와 함께 마을회관에 있었던 박 아무개 할머니(82)를 검거했다. 사건 발생 사흘 만이었다. 사건 처리는 신속하게 이뤄졌다.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은 박 할머니가 고령임에도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고의적으로 범행을 했는지 여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마을 주민이자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치밀한 독극물 살인 사건의 유력 피의자로 지목되자 충격은 컸다. 박 할머니는 이 마을에서 70년 가까이 살았고, 피해 할머니들과는 오랫동안 함께한 사이였다.

 

정황만 있고 결정적인 증거 없어

경찰이 박 할머니를 유력 용의자로 본 데는 그에게서 불리한 여러 정황이 나왔기 때문이다. 박 할머니는 피해 할머니들과 사건 당일 마을회관에 함께 있었지만 유일하게 농약이 든 사이다를 마시지 않았다. 또 박 할머니의 집 앞마당에서 뚜껑이 없는 박카스 병이, 그리고 뒷마당의 대나무밭에서는 메소밀이 검은 비닐봉지에 싸인 채 발견됐다. 경찰의 정밀 감식 결과, 이 박카스 병 안에서 사이다에 든 농약 성분과 동일한 메소밀 성분이 검출됐다. 또 사이다 병을 막아둔 뚜껑은 박 할머니 집에서 발견된 박카스 병 뚜껑과 동일했고, 할머니 집에서 발견된 다른 박카스 병과 유효 기간도 일치했다. 박 할머니가 입고 있던 바지의 주머니 안쪽과 밑단, 그가 이용하던 전동 스쿠터 등에서도 메소밀 성분이 발견됐다.

경찰은 특히 박 할머니의 사건 당일 행적을 의심스럽게 여기고 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차에 장착된 블랙박스 영상에서 차가 마을회관 진입로로 들어서는 순간 박 할머니의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 일부 발견된 것이다. 구급차가 회관 안으로 들어서자 마을회관 바깥에 있던 박 할머니가 회관으로 다시 들어갔다. 당시 소방대원은 내부에 추가 피해자가 있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 앞마당에 있던 신 아무개 할머니(65)만 구조했다. 하지만 구급차가 신 할머니를 태우고 회관 입구를 빠져나갈 때도 박 할머니는 회관 앞 계단에 걸터앉은 채 먼 산만 바라보고 회관 내부에 할머니들이 쓰러져 있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결국 나머지 할머니들은 신 할머니 구조 후 50여 분이 지나서야 마을 이장의 신고로 구조됐다. 경찰은 구급대원이 1차로 출동할 당시 박 할머니가 다른 피해자들이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피해 상황을 알리지 않은 점에 주목하고 있다.

박 할머니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로 사건이 일단락되는 수순이다. 하지만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여전하다. 박 할머니는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고령의 할머니가 지인 다수를 대상으로 범행을 했다는 점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대목이다. 경찰로서도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어 의혹은 가시지 않고 있다. 박 할머니 집에서 살충제 성분이 든 박카스 병이 발견됐지만, 그가 살충제를 사이다에 넣었다는 구체적인 증거나 목격자는 없는 상황이다. 이규봉 상주경찰서 수사과장은 “(박 할머니 집에서 발견된) 박카스 병과 냉장고, 사이다 페트병 등에 대한 유전자·지문 감식을 했지만 아직 특이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며 “일반적으로 노인은 피부가 건조한 경우가 많아 지문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경미한 상해를 입은 신 할머니도 사건 당시 박 할머니의 행적이나 특이점 등을 구체적으로 진술하지 못하고 있어 현재로서는 의혹을 규명할 결정적인 단서가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허술한 경찰 수사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경찰이 박 할머니의 집에서 박카스 병 등을 발견할 당시 다른 농약 병이 담긴 노란색 비닐봉투가 있었는데도 이를 수거하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경찰이 박 할머니의 창고에서 농약 병을 발견했지만 수거하지 않았다가, 뒤늦게 집을 찾은 박 할머니의 아들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 이규봉 수사과장은 “이미 농약병이 담긴 노란 봉투는 경찰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했지만 내용물이 없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제품으로 현장 요원이 수거할 만한 증거물로 보지 않았다”며 “(수색 후) 원래 자리에 다시 가져다놔야 했지만 현장에 그냥 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할머니 가족은 “경찰이 철저하게 수사를 하지 않은 정황”이라면서 경찰의 부실 수사 의혹을 제기하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박 할머니가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범행 동기도 구체적으로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점이 의혹을 더 키우고 있다. 사건 발생 하루 전 마을회관에서 박 할머니와 피해 할머니들이 화투판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말다툼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오긴 했지만 이를 범행 동기로 보기에는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마을 이장 한 아무개씨는 “동네에서 10원짜리 화투를 치면서 말다툼을 하기도 하고 금방 화해도 하기 일쑤 아니냐”면서 “시골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박 할머니의 농약 구매 경로 등을 파악하기 위해 탐문 수사를 벌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7월20일 ‘농약 사이다’ 살해 사건의 피의자 박 아무개 할머니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제3의 인물 존재 가능성 있어”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제3의 인물이 범행을 저지른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경찰은 사건 발생 다음 날인 7월15일 탐문 수사 과정에서 한 피해 할머니의 뒷마당에서 농약 병 3개를 발견했고, 이 가운데 한 병에서는 범행에 사용된 메소밀 성분과 동일한 성분이 검출됐다. 박 할머니의 가족은 이를 근거로 “농약이 여러 곳에서 발견될 정도로 농가에 흔히 보관돼 있는 만큼 (박 할머니의) 집에서 농약이 발견된 점을 결정적인 증거로 볼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범행에 이용된 메소밀은 3년 전 이미 단종됐지만 최근에도 밭농사를 짓는 농가에서는 흔히 발견할 수 있다는 게 주민들의 반응이다. 금계1리에 인근한 공성면 소재지에서 농약 판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 아무개씨는 “농가 창고를 뒤져보면 버리지 못한 채 처치가 곤란해 보관하고 있는 메소밀이 많다”고 말했다. 농사를 짓고 있는 공성면 주민 이 아무개씨도 “시골에 메소밀이 없는 집이 없다. 다 갖고 있다. 열 집 중 다섯 집은 다 메소밀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피의자 박 할머니와 가족들은 “누군가 (박 할머니를) 모함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사건을 조작했다”고 주장하면서 제3의 인물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피의자 박 아무개 할머니의 자택. ⓒ 시사저널 최준필

 

“경찰 짜맞추기 수사 하고 있다” 
피의자 박 할머니 사위 인터뷰

 

상주 ‘농약 사이다’ 음독 살인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북 상주경찰서에는 피의자 박 아무개 할머니(82) 검거 후 그의 가족과 친척들이 매일 진을 치고 있다. 이들은 박 할머니의 무죄를 주장하면서 수사 관계자들이 모습을 보이면 다가가서 항의를 하기도 했다. 박 할머니의 가족은 경찰 수사를 보도하는 언론에 대해서도 불신감을 드러냈다. 다음은 박 할머니 사위와의 일문일답이다.

 

가족들의 충격이 클 것 같다.

“경찰 수사는 짜맞추기를 한 것이다. (현장 증거물을 제대로 수거하지 않는 등) 부실한 수사를 하지 않았나. 가족으로서는 경찰 수사의 부당함을 얘기할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경찰 수사의 문제점이 뭔가.

“(박 할머니를 구속시키기 위해) 경찰이 (나오는 증거) 이것도 내보고 저것도 내보는 식으로 짜맞추기한 것 아닌가. 경찰 수사에 대해 가족이 반박하면 또 다른 것 내놓는 식으로…. 간보고 맛보는 식이다. 마치 가족들 반응 봐가면서 수사하는 것 같다.”

박 할머니에게 불리한 정황이 나왔지 않나.

“(그 정황들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언론에서도 다 다뤄지지 않았나. 부당한 부분들. 경찰이 뭔가 급하게 하달된 것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경찰 쪽에서는 박 할머니의 진술이 오락가락한 부분을 문제 삼는다.

“그건 경찰의 질문 방식 때문이다. 여든 넘은 사람한테 젊은 조사관들이 붙어서 묻고 또 묻고 이틀 사흘 계속 물으면 앞뒤 순서를 구분 못한다.”

할머니를 따님이 있는 대구로 데려간 것을 문제 삼기도 하는데….

“우리가 경찰 담당 형사한테 (할머니 모시고 가겠다고) 다 통보해주고, 대구에 데려왔는데. 뭐 ‘도망쳐 있다’ ‘숨어 있다가 잡혔다’는 식으로 보도를 하게 했지 않나.”

박 할머니는 여전히 범행을 부인하나.

“(박카스 병이 발견됐을 때) 내가 만에 하나라도 어머니가 같이 놀던 사람 중에 감정 상한 사람 있으면, ‘고생 좀 해라’ 하고 넣은 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리고 변호사 앞에서 다 이야기하면 도움 주는 방향으로 하겠다고 했다. 근데 시종일관 ‘난 만지지도 숨긴 적도 없다, 농사 안 지은 지 20년 됐다’고 하시더라. 그게 할머니 입에서 나온 이야기다. 그러면서 ‘누가 나를 음해하려고 한 거’라고 계속 말씀하셨다.”

음해한 사람이 누구라고 보나.

“그건 우리도 할머니도 전혀 모르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겠나. 행여나 심증이 있어도 그건…. 마을 사람들은 심증이 있을 거다. 주민들은 알아도 잘 알려주진 않을 거다. 결국 (제3의 인물 잡는 건) 경찰이 할 일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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