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버려진 모텔 복도를 더듬더듬 걸을 때의 공포 느껴보셨나요?
  • 김회권 기자·신중섭 인턴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5.07.2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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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가 체험’ 회원들과 함께한 흉가 체험기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차는 점점 외진 곳으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은 어둠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가로등도 하나 없는, 작은 불빛조차 허락하지 않는 충남 천안의 한 외곽 지역. 내비게이션의 낭랑한 도착 안내가 아니었다면 이곳이 약속 장소인지도 몰랐을 터다.

약속 시간인 저녁 9시보다 조금 빨리 도착했다. “뭐야? 아무것도 없는데?” 오직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과 풀벌레 소리만 가득한 곳. 우리에게 주소를 준 사람은 이곳이 ‘버려진 모텔’이라고 했다. 여기에 무슨 모텔이 있다는 건지 의아해하던 찰나 전조등 불빛에 살짝 간판이 보였다. 수풀 사이에 버려진 모텔 간판이 귀신처럼 숨어 있었다. 순간 오싹했다.

주변에 불빛 하나 없는 천안의 한 폐모텔. 회원들은 작은 플래시 하나에 모든 걸 의지해야 한다. ⓒ 시사저널 이종현

“도대체 이런 걸 왜 하려고 하세요?” 우리에게 여기서 만나자고 한 다음카페 ‘흉가 체험’ 운영자 노창배씨(34)가 묻는다. 이런 걸 왜 취재하느냐고. 그건 우리가 오히려 되묻고 싶다. 당신들은 왜 이런 공포를 쫓아다니며 사서 고생하느냐고.

암흑을 뚫고 용케도 회원들이 하나둘씩 이 외지고 스산한 곳에 도착했다. 모텔 앞에 모인 사람은 취재진을 포함해 총 6명. 나이는 20~30대, 직업은 직장인, 편입 준비생 등 다양하다. 우리의 취재 이야기를 들은 운영자가 ‘벙개’를 때렸고 급하게 모인 탓에 숫자가 평소보다 적단다. 보통 이 카페가 진행하는 폐가 체험은 지역 단위 모임일 경우 10명 정도, 전국 단위 모임일 경우 40~50명이 모인다고 했다.

흉가 안에 숨겨둔 휴대전화 챙겨 나와야 미션 끝

우리 앞에서 불온한 기운을 뿜고 있는 이 모텔이 하필이면 전국 7대 흉가 중 하나라고 한다. 출발하기 전 노씨에게 우리가 가야 할 장소가 어떤 곳이냐고 물었다. 대답은 이랬다. “그곳이 소문으로는 식당과 모텔 귀신 출몰이 잦아서 식당 주인 모두가 나갔다고 하네요. 저희 쪽에서도 영혼을 몇 번 봤고요. 심령사진도 많이 찍힌 곳입니다.”

들어가는 데도 나름의 규칙이 있다. 먼저 서약서를 써야 한다. 내부에는 깨진 유리 조각이나 여러 가지 파편이 많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안전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노씨가 플래시를 하나씩 나눠준다. 새끼손톱만 하다. 엄청 작은데 불빛마저 희미해 이걸 비추면 묘하게 더 스산한 분위기가 연출될 것 같다.

기자를 가장 두렵게 만든 건 서약서도, 작은 불빛도 아니다. 당연히 다 같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7대 흉가라고 불리는 저 건물에 한 명씩 들어갔다 나와야 한단다. 이게 원칙이며 이게 이 체험의 핵심이다.

도대체 이런 장소는 어떻게 찾아내는 걸까. 카페에는 ‘폐가 수색단’이 있다. 이들은 전국을 돌며 소문으로 전해지는 이런 음산한 곳을 확인한다. 흉가로 인정을 받기 위한 조건은 두 가지다. 5㎞ 이내에 민가가 없을 것, 그리고 귀신이 많을 것.

이제 모텔에 들어가야 한다. 모텔이라기보다는 흡사 군부대의 생활관 같은 허름한 모양새다. 건물 하단 창문에 불을 비추니 섬뜩한 지하가 드러났다. 저절로 고개가 반대쪽으로 돌아간다. 보고 싶지 않다. 귀신이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이곳에 맨 먼저 진입하는 사람은 역시 운영자 노씨다. 건물 내부 상태를 보고 위험한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들어가기 전 갑자기 노씨가 휴대전화를 거둬 간다. “그냥 하면 재미없잖아요. 구석구석 숨겨놓을 거니까 각자 찾아오기.” 그러다가 못 찾으면 어쩌려고? “그러면 두고 가야죠 뭐.” 노씨의 말대로라면 객실이나 화장실, 그것도 여러 군데를 돌아야 한다. 새끼손톱만 한 불빛 하나 들고 혼자서.

휴대전화를 들고 먼저 들어가는 노씨를 뒤따랐다. 객실은 서로 마주 보게 돼 있었다. 문은 부서지거나 없다. 방 안에 온전한 것 역시 하나도 없다. 너무나 더러운 매트리스는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양 널브러져 있다. 한쪽의 객실을 살펴보려고 돌아서면 누군가가 우리를 등 뒤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서늘한 기운이 목선을 타고 올라온다. 복도에는 유리 파편들이 흩어져 있고 낡은 신발과 먼지 쌓인 병들이 흐트러져 이곳에 사람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온전한 벽도 없다. 누군가가 할퀸 것처럼 벽지는 처참하게 뜯겨져 있고 심지어 천장마저 부서지고 곳곳에 구멍이 나 있다. 거꾸로 누군가가 매달려 목만 내밀기 딱 좋다. 손톱만 한 빛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어둠이 내리면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선다.

운영자는 강심장을 가진 사람이다. “저도 사람인지라 처음 들어갈 때는 조금 무섭긴 하죠. 그래도 뭐 몇 년 하다 보니….” 그는 2층까지 여유 있게 둘러보며 방 구석구석 휴대전화 숨기기에 여념이 없다. 운영자들은 회원들의 공포감을 키우는 장치를 흉가 곳곳에 마련한다. 평소라면 운영진 2~3명이 움직이는데 이들은 천장이나 구멍에 숨어 회원들을 놀라게 한다. “회원들 기다리다가 천장에서 잠드는 사람도 있는데요 뭐.” 듣는 사람은 놀랄 만한 말을 대수롭지 않게 한다. 오늘의 공포 장치는 벨소리다. 노씨는 자신의 휴대전화 벨소리를 기괴한 소리로 변경해 회원들이 지나갈 때마다 울리게 할 생각이다.

난장이 된 복도를 살펴보는 카페 운영자. 내부의 분위기는 음산하다. ⓒ 시사저널 이종현

해병대 출신도 땀에 흠뻑 젖어 나오다

모텔 첫 진입자는 고승태씨(28)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 안산에서 왔다. 탄탄해 보이는 몸과 자신감 넘치는 모습. 자신을 해병대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이번이 두 번째 오프 모임인데 공포물이나 스릴을 좋아해 이쪽에도 취미를 갖게 됐다고 한다.

귀신 잡는 해병대 출신도 들어가기 직전에는 긴장되나 보다. “기자님은 같이 안 가시나요?” “플래시는 왜 이렇게 작아.” 투덜거림을 끝내고는 이내 모텔 입구로 들어선다. 살짝 새어나오는 플래시 불빛이 고씨의 위치를 짐작하게 해준다. 뭔가에 부딪히는 듯 우당탕 소리가 나더니 이내 자신의 휴대전화를 들고 모텔 밖으로 나오던 고씨가 흠칫 놀란다. 사진을 찍기 위해 풀숲에 서있던 사진기자를 본 것이다. “내가 놀랐네? 놀랐어!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재밌어요. 사람들이 쉽게 못하는 걸 한다는 게 뿌듯하기도 하고요.” 자랑스러워하는 그의 몸은 땀범벅이다.

흉가를 찾는 사람들은 영(靈)을 체험했거나, 공포를 사랑하거나, 호기심이 있어서 보통 모임에 참가한다. 한지형씨(25)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영이 보여서 흉가 방문을 취미 생활로 삼았다. 한씨의 지인으로 처음 따라온 김민정씨(21)는 호기심에 따라나선 초심자다. 1인 체험이 원칙이지만 렌즈를 갖고 오지 않은 김씨를 위해 이번에만 특별히 두 명이 함께 들어갔다.

진입하자마자 비명이 터져 나온다. 이번에는 유난히 ‘우당탕~’ ‘쿵~’ 하고 떨어지거나 부딪히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소리는 1층에서 2층으로 이동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깨지는 소리도 들려온다. 앞선 체험보다 시간이 꽤 걸린다. 긴 탐험 끝에 나온 두 사람의 표정이 상반된다. 무섭지 않았다는 한씨와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김씨가 가지고 나온 휴대전화는 하나뿐이었다. 다른 하나는 찾지 못한 채 그곳을 빠져나왔다(체험이 모두 끝난 뒤 함께 들어가 휴대전화를 찾아 왔다).

이제 끝났구나 싶은데 모두들 “기자님도 해보셔야죠?”라고 몰아간다. ‘그래, 체험하러 온 건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머리와 입이 따로 논다. “아까 운영자님이랑 들어갔다 온 걸로 치면 안 될까요?”라고 나도 모르게 말하고 있다. 머뭇거리다 결단을 내렸다. “갔다 올 테니 모텔 입구에 다들 계세요.” 그리고는 플래시를 받아 들었다.

희미한 빛에 의지한 채 복도를 혼자 걸으니 엄청난 공포감이 엄습한다. 내 코앞만 살짝 밝을 뿐 너무 캄캄하다. 복도 끝까지 빨리 갔다가 오겠다는 다짐으로 성큼성큼 오로지 직진. 그런데 복도 중간쯤 걸었을까. 입구에서 기다리겠다던 나머지 사람들이 길가로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럴 줄 몰랐다. 속에서 욕이 나온다.

끝까지 왔으니 이제 뒤돌아서야 한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한 다음에 ‘휙~’ 하고 돌았다. 다행히 내 등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올 때 봤던 널브러진 물건들만이 가득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종종걸음으로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소름끼치는 공포 체험은 막을 내렸다.

“왜 쓸데없이 그런 걸 하고 다니느냐.” “신기하다. 한 번 가보고 싶다.” 공포를 찾아다니는 이들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다양하다. 걱정과 호기심이 뒤섞여 있다. 하지만 의외로 적지 않은 사람이 공포를 느끼는 의식에 동참한다고 한다. 이 카페의 오프 모임은 보통 4월부터 시작하는데 여름에 참가자가 가장 많은 것을 보면 피서가 따로 필요하지 않은 모임이다. 할 때마다 신참자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다만 그들 중 대다수가 다음번에는 나오지 않아요.” 겪어보니 그 말이 이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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