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부끄럽지 않은가
  • 김인숙 | 소설가 (.)
  • 승인 2015.08.05 18:20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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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금 베를린에 있다.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3개월간 체류 예정인데, 처음 얼마 동안 의례적으로 받았던 인사 중의 하나는 ‘왜 베를린에 오게 되었느냐’는 것이었다.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대해서 묻는 질문이 아니라 수많은 나라, 수많은 도시 중에 왜 베를린이냐는 질문이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왜냐하면, 베를린이니까. 베를린은 분단과 통일의 상징이고, 그 상징인 장벽이 여전히 흔적으로 남아 있는 역사의 도시다. 그 역사는 전쟁과 나치즘으로 얼룩진 잔혹한 과거사이기도 하고, 그 잔혹한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한, 또 다하고 있는 현대사이기도 하다.

베를린에 도착해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학술회의를 보러 갔다. 일본 정부의 역사 수정주의에 관한 강연이 중심인 가운데, 강제징용과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 관련 논의도 있었다. 카탈로그에 의하면 그랬다. 강연자들이 독일인과 일본인이어서 한국어 통역 서비스가 없었다. 그러나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느낌이 있었다. 목소리의 울림 때문이다. 독일 베를린에서 양심적인 일본인들이 자국 정부의 수정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의 울림은 뜨거웠다.

일본과는 달리, 혹은 일본과는 천차만별적으로 독일은 과거 청산을 비교적 잘한 나라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것은 전후 전범 처리나 보상 문제에만 국한되는 평가는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좀 더 본질적으로 독일 국민들이 자신의 내부로부터 얼마나 철저히 스스로의 과거를 반성했는가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베를린에서 만난 일부 베를린 사람들은 자신들의 과거 청산이 아직도 멀었다는 말을 한다. 그 말은 다른 식으로 해석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역사의 기억이 남아 있는 한 청산에 완료의 시점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히 현재진행형이고, 영원히 더욱더 철저해야 할 일일 터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베를린 도심에서 차로 한 시간쯤 떨어진 거리에 포츠담이 있다. 일본에 대해 항복을 권유하고 한국의 독립을 재차 확인한 포츠담 선언이 바로 이 도시에서 이루어졌다. 일본이 이 선언을 수락하지 않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고, 최종적으로 우리나라는 해방이 되었다. 일본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를 짐작할 것이다. 일본으로부터의 해방이 과거사로부터의 해방은 아니기 때문이다. 곧 8월이다. 그리고 올해는 광복 70주년의 해다. 70년이 흘렀어도 전범국인 일본은 스스로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다. 아베 정권의 전쟁 범죄 부인 발언에 대해서는 아무리 분노해도 넘치지 않는다.

일본 정부에 대한 분노와 함께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들 스스로의 과거 청산이다. 내부로부터의 반성이다. 모든 병은 내부의 병소를 제거할 때 깨끗해진다. 과거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가. 친일 부역자들은, 내부 전범들은, 우리의 과거사 속에서 충분히 청산되었는가. 그들은 여전히 권력과 함께 현존하고, 역사 속에 부끄럼 없이 존재하지는 않는가.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볼 일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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