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과의 대화] 그 남자 주변 사람들이 사라졌다
  • 배상훈│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프로파일러) (.)
  • 승인 2015.08.27 11:15
  • 호수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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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건의 실종·변사 사건 용의자,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

2014년 7월31일 저녁 10시쯤, 인천 삼산경찰서에 실종신고 하나가 접수됐다. 실종자는 36세 남성 B씨. 채무 문제로 사람을 만나러 강화도에 간다며 나갔다가 연락이 없자 부인이 실종신고를 한 것이다. 삼산경찰서 실종팀은 우선 휴대전화 위치 추적에 나섰다. 이를 통해 B씨의 휴대전화 신호가 감지된 최종 통신기지국 위치가 실종 당일 오후 9시42분쯤 강화읍 용정리로 나타나자 강화경찰서에 확인을 요청했다. 연락을 받은 강화경찰서 당직 대원은 실종 당일인 데다 30대 성인 남성인 점을 감안해 별로 대수롭지 않은 사안으로 여겼다.

하지만 얼마 후 사건은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실종신고를 보고받은 강화경찰서 강력팀장은 B씨가 채무 관계로 만나기로 했다는 사람이 A씨라는 얘기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A씨는 2001년부터 2006년까지 강화경찰서 관내에서 발생한 타살 의심 실종 사건 둘과 변사 사건 하나의 유력한 용의자였던 것이다. 물론 A씨에 대한 수사는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마무리됐지만 또 다른 실종 사건에 A씨의 이름이 거론되자 예사롭지 않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 일러스트 오상민

내연녀와 수하 직원 ‘실종’, 펜션 관리인 ‘변사’

첫 번째 실종 사건 피해자는 A씨의 내연녀 K씨였다. 부동산 투기로 큰돈을 만지게 된 A씨가 더 큰 욕심을 부려 무리하게 빚을 내 투자한 것이 화근이 되어 경제적으로 코너에 몰리자, K씨에게 자신이 마련해준 빌라를 돌려달라고 했다가 거절을 당했다. 원래 내연 관계였지만 A씨가 K씨의 딸을 성추행했고 이 사실을 안 K씨가 관계를 끊었다고 한다. K씨는 빌라를 돌려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K씨는 갑자기 사라졌고 빌라는 A씨에게로 명의가 이전돼 있었다. 혐의는 있었지만 증거가 없었다.

두 번째 실종 사건 피해자는 A씨의 수하 직원 J씨였다. A씨는 노숙자였던 J씨를 자신의 부동산에서 일하게 하고 숙식을 제공하면서 자질구레한 일을 시켰다. 나중에 돈을 조금 모은 J씨에게 A씨가 맹지를 팔았는데, 이 땅이 문제가 되어 갈등이 빚어졌다. 그 과정에서 J씨는 A씨가 내연녀 K씨를 죽였다고 소문을 내고 다녔다. J씨는  K씨 사건 담당 수사관에게 그 증거를 넘기기로 한 바로 전날 실종됐다. 문제의 땅은 A씨에게로 넘어간 상태였다. 역시 A씨에게 혐의가 갔지만 이번에도 증거가 없었다.

세 번째 변사 사건은 J씨의 땅을 두고 분쟁을 빚었던 펜션 관리인 H씨가 펜션에서 70m 떨어진 덤불 속에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전후 사정을 봐서는 A씨가 J씨의 돈이 탐이나 못 쓰는 맹지를 팔았다가 나중에 뺏어왔지만 그 땅을 제대로 써먹기 위해서는 펜션 관리인 H씨가 눈엣가시였다. 사건 당일 A씨가 펜션으로 가는 모습이 주민들에 의해 목격됐고, A씨가 펜션을 관리하는 보안업체에 전화를 걸어 CCTV가 마당을 촬영하는지에 대해서만 묻고는 전화를 끊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그러나 당시 통화 녹취파일은 직접 증거로 인정받지 못해 이번에도 증거 불충분이었다.

그리고 문제의 실종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동일범에 의한 연쇄살인이 강하게 의심됐다. 경찰은 이번만큼은 놓칠 수 없다는 절박함에 곧바로 실종자 B씨의 동선을 파악하면서 A씨에게로 수사를 집중했다. 증거 불충분으로 몇 차례나 수사망을 빠져나온 A씨는 자신감에 찬 모습이었다. 임의동행과 거주지 감식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B씨와 만난 사실은 인정했지만 그 외 사건 관련성은 전면 부인했다. 그때 수사팀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슬리퍼에 묻은 빨간 혈흔이었다.

이번에는 지난 세 번의 사건과 달랐다. 꼬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강화 인근 CCTV 전체를 찾아 분석했다. 아울러 B씨의 휴대전화 수색을 병행해 그의 유류품과 휴대전화를 찾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선을 계산해 추정 가능한 사체 유기 장소를 수색했다. 사체는 A씨의 주거지에서 차량으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야산 초입에 암매장돼 있었다. 경찰은 A씨를 긴급체포했다. 역시나 범행을 부인했다. 불리할 것 같은 상황에서는 모르쇠로 일관했고 현장검증도 번복했다. 자신에게 불리한 모든 증거는 모함이고 누명이라고 반박했다.

유명 프로스포츠 선수 아버지

이 사건을 처음 접한 것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서였다. 방송 제작팀으로부터 현장 분석 요청을 받았다. 사실 이런 종류의 실종 및 살인 사건은 그리 특이하거나 어려운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프로파일러가 분석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처음에는 망설였다. 하지만 강화도에서 발생한 어떤 사건에 대해 언론이 약속이나 한 듯 취재를 기피하고 있다는 한 언론인의 제보를 받은 터라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강화도로 향했다. B씨의 사체가 유기된 야산부터 분석에 들어갔다. 노선버스가 다니는 2차로 도로에서 분기된 비포장도로 100여 m 지점에서 산 방향으로 20m 정도 떨어진 곳으로 빗물 등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땅이 움푹 파인 장소였다.

주변 지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선택하지 못할 만한 곳이었다. 그 이유는 굳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잘 발견되지 않을 곳인 데다, 쉽게 부패가 진행될 수 있어서 나중에 발견된다고 해도 사체의 신원을 확인하기 힘들 만큼 교묘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너무 잘 아는 사람에 의해 선택된 장소였다. 분석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궁금한 점은 이 사건이 언론인으로부터 제보받은 바로 그 사건인지 여부였다. 어느 정도 예측한 대로였다. 범인으로 지목된 A씨는 유명 프로스포츠 선수의 아버지였다.

짐작하듯이 A씨는 전형적인 소시오패스 성향을 가졌다. 필요에 따라 수시로 내연녀를 바꾼 그는 도덕적·법적 일탈은 물론 살인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면서도 그에 대해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A씨에게 실시한 거짓말탐지기 반응은 그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전혀 죄책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거짓말탐지기 반응 결과는 ‘진실’로 나타났다.

현대 범죄학의 관심 분야 중 하나가 ‘잠재된 폭력 성향의 범죄화’다. 즉 인간의 잠재된 폭력 성향이 유전적으로 존재하고 그것이 발현돼 폭력 범죄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근래 미국의 프로스포츠 스타들의 폭력 범죄에 대한 언론 보도가 늘어나면서 실제 잠재적 폭력 성향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강한 폭력 성향을 가진 사람들 중 그 성향이 스포츠를 통해 비범죄적인 방향으로 성취 동기가 분출됐다가 어떤 이유에 의해 통제가 풀리는 상황이 오면 매우 성공적인(?) 범죄로도 발현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들의 폭력 범죄는 그것이 환경 요인에 의한 것인지 유전 요인에 의한 것인지 잘 알기 힘들다. 환경 요인의 간섭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성공한 프로스포츠 선수의 경우 환경적인 요인이 상당 부분 통제된 상태이므로 그들의 폭력 성향에 대한 연구는 일정한 가치를 가진다.

대표적으로 1994년에 발생한 미국의 유명 미식축구 선수 ‘O. J. 심슨 사건’이 있다. 심슨이 전 부인 니콜 브라운과 그녀의 남자친구 로널드 골드먼을 흉기로 잔인하게 찔러 죽인 사건이다. 불합리한 배심원제도 등 미국 사법의 비극에 의해 끝내 범인임을 알고도 무죄 판결이 났다. 지난해에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소속 공격수 아론 에르난데스가 다수의 살인 사건에 연루돼 체포됐고, 올해는 플로리다 주립대의 쿼터백 드안드레 존슨이 플로리다 주 탤러해시의 나이트클럽에서 한 여성을 주먹으로 심각하게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미식축구는 격렬하고 폭력적인 스포츠의 대명사다. 스포츠 자체가 ‘평시 전쟁 연습’을 위해 고안됐고, 특히 상비군 체제가 완비된 근대 국가에서는 사회의 내적인 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해 프로스포츠가 탄생됐다는 점은 역사적으로 충분히 증명됐다. 스포츠에서 발군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내재해 있는 폭력 성향을 갈고닦아 더 예리하게 만들어야 한다. 본질적으로 스포츠는 승부이고 승부는 상대와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것이다. 제한된 규칙이 있지만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8월8일 강화경찰서에서 한인기 수사과장이 채권자를 살해한 혐의로 긴급체포한 A씨 관련 사건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극단적 폭력 성향에 죄책감도 없어

상대 공격수가 크게 다칠 것을 알고 있고, 이로 인해 자신이 퇴장당할 것을 알면서도 수비수는 강력한 태클을 한다. 투수는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어 서는 타자를 뒤로 물러나게 하기 위해 몸에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타자의 몸 쪽으로 볼을 던진다. 농구에서 박스 아웃은 리바운드 싸움의 기초다. 상대방의 허리와 발목에 문제가 생길 줄 알면서도 강력하게 밀어낸다. 프로스포츠 선수들끼리 동업자 관계, 동료 의식을 공식석상에서는 강조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최고가 될 수 없고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A씨가 프로스포츠 선수 중에서도 상위 1%에 속하는 아들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A씨 자신도 과거 씨름선수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경쟁과 승부에 적합한 성향을 지니고 있었던 셈이다. 그에게 세상의 다른 존재는 모두 넘어서야 할 경쟁 상대였을 수 있다. 더구나 그에게는 죄책감이 없었다. 자신의 치부에 방해가 되는 존재는 쓰러뜨려야 할 적이었고, 실제 그는 여러 적들을 물리적으로 쓰러뜨려버렸다. 극단적인 폭력 성향에 죄책감마저 없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모든 프로스포츠 선수들이 범죄 성향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본질적인 면에서 스포츠가 폭력 성향을 발현하는 데 매우 유용한 수단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성향을 잘 통제하지 못할 경우 스포츠가 아닌 사회에서 폭력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현상적으로 볼 때 현대 사회는 폭력 성향을 규칙이라는 틀 내에서 잘 통제하고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폭력을 잘 통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폭력의 방향을 약간 비껴나게끔 한 것일 뿐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폭력 성향을 자본의 욕망에 맞춰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게임을 통해 실현되고 있는 폭력도 마찬가지다. 끝으로 A씨는 끝내 자백을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에게 세상의 모든 타인은 승부의 대상일 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는 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다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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