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피아 감시보다 자기네 ‘밥줄’ 먼저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5.09.0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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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퇴직자 줄줄이 대기업행…재취업 당연시 풍토

올해 초 관가에는 비상이 걸렸다. 공직자 재취업을 막는 ‘관피아 방지법’(공직자윤리법 개정안) 적용을 피하기 위해 인사를 앞두고 미리 퇴직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벌어진 것이다. 공무원이 정년 전에 경쟁적으로 퇴직하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공직사회가 얼마나 퇴임 후 재취업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는지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관피아 방지법이 시행된 지 5개월이 흘렀다. 그러나 이 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감사원 퇴직자들은 재취업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비판이 관가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감사원은 관피아를 감시해야 할 책무를 지닌 곳이어서 더욱 뒷말이 무성하다. 관피아 방지법도 ‘감피아’(감사원+마피아)를 막기는 버거워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문으로 들어가 대표이사로 영전하기도

삼성화재는 지난 6월 퇴직한 김상윤 감사교육원장을 고문으로 영입했다. 그는 감사원 재직 시절 특별조사국장·공공기관감사국장·재정경제감사국장 등을 거쳤다. 감사교육원장은 1급 자리다. 삼성화재 외에도 또 다른 대기업 역시 그를 스카우트하려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에는 감사원 국방감사단장을 지낸 김 아무개씨가 SK텔레콤 고문으로 취업했다. TK(대구·경북) 출신인 그는 이전엔 NH농협증권 등기이사 및 감사위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지난해 2월 감사원이 미래창조과학부 통신요금 정책을 감사하던 시기에 김영호 당시 감사원 사무총장이 SK텔레콤의 고위 임원을 만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SK텔레콤은 해당 감사에서 밀접한 이해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김 총장은 “SK텔레콤이 감사원에서 퇴직한 고위 관료를 고문으로 영입하고자 해 그에 대한 평판을 들으러 와서 만난 것”이라고 해명했는데 이때 언급된 고위 관료가 바로 김 전 단장이다. 당시 김 총장 발언은 감사원 출신의 대기업 재취업을 당연시하는 투였다. 감사원 퇴직자들에 대한 대기업들의 수요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게 하는 사례다. 그가 SK텔레콤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 몸담았던 NH농협증권 감사 자리 후임도 역시 감사원 국장 출신이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방산 비리 특별감사단장을 맡았던 문호승 감사원 제2사무차장은 올해 초 사임하고 최근 서울대학교 감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 전에 감사를 맡고 있던 사람 역시 감사원 출신이었다. 감사원 출신이 지나간 자리를 또 다른 감사원 출신이 채운 것이다. 감사원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대 외에 대기업에서도 그를 영입하려고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반적으로 대학교 감사 자리는 국장급 퇴직자가 가던 곳이었는데 사무차장을 지낸 문 전 단장이 간 것을 놓고 감사원 내에서도 뒷말이 많았다. 쉽게 말해 눈높이를 낮춘 셈이다. 대학교는 기업에 비해 인기가 없는 곳이지만 재취업을 까다롭게 하는 관피아 방지법이 생긴 후부터는 선호도가 높아졌다고 한다.

기업 고문으로 갔다가 대표로 영전한 경우도 있다. 건설엔지니어링 부문 5위 안에 드는 중견 그룹 S사에 취업한 이 아무개 전 감사원 부이사관이 그렇다. 30년간 감사원에 재직했던 그는 S사에 취업한 지 1년 만에 대표 자리까지 올라 화제가 됐다. 당시 그 회사 노조에선 “기술경영을 해야 되는데 감사원 출신 전관을 재직 1년 만에 사장에 앉히는 것은 영업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반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아직까지 S사의 공동대표로 재직 중이다. 얼마 전 이완수 현 사무총장과 함께 사무총장 후보로 거론됐던 이욱 전 감사교육원장 역시 한 대기업 고문으로 지내다 최근 퇴임했다.

‘윗선’에서 움직여 재취업 자리 만들어

감사원 출신의 이 같은 재취업은 기업에서 적극적으로 원하기도 하지만, 윗선에서 직접 챙겨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감사원 내부 사정에 정통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이다. “임기를 채우지 않은 직원들이 퇴직을 하기 전 고위급에서 기업 관계자 등을 만나 미리 자리를 만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해외에 자리를 만들어주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선호도가 낮기 때문에 만들어줘도 잘 안 나가려고 한다.” 감사원 퇴직자들의 취업 뒤에는 단순히 기업의 요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물밑 작업’이 있다는 것이다.

관피아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8월 김일태 전 감사원 공직감찰본부장이 금융감독원 감사에 임명돼 논란을 낳았다. 금감원 감사는 금융위원장의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금감원은 감사원의 감사 대상 기관이다. 게다가 김 전 본부장은 금융 업무와 전혀 관계없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이어서 금융권에서는 더더욱 관피아 논란이 일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그때는 관피아 논란이 한창이었는데 감사원 출신은 그런 논란도 뚫고 임명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지적했다. 정작 금감원은 2011년 금융사 감사 자리에 퇴직자를 보내지 않기로 했는데, 그 결과 오히려 더 전문성이 없는 곳에 감사원 출신이 진출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감사원 출신은 사기업·공기업·대학교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재취업한다. 검찰은 분야가 한정되는 반면 감사원은 각 분야에 두루 영향력이 닿을 수 있기 때문에 여러 분야로의 진출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들이 가서 하는 역할은 무엇일까. 감사원과의 창구 역할을 한다는 지적이 많다. ‘로비스트’ 비슷한 일을 하는 셈이다. 시사저널은 엘리엇이 신용정보회사에 용역을 줘 삼성그룹 계열사 핵심 임원 및 사외의사들의 이력과 신상정보를 조사했다고 단독 보도(2015년 6월15일자 ‘엘리엇, 삼성 임원 22명 신상 조사했다’ 기사 참조)한 바 있는데, 여기엔 감사원 제2사무차장 출신인 문태곤 삼성생명 감사도 포함돼 있었다. 이때 그를 소개한 다음과 같은 짧은 문구를 보면 재취업한 감사원 출신의 역할을 잘 알 수 있다. ‘대(對)감사원 창구 역할.’ 감사원 재취업을 옹호하는 논리로 쓰이는 ‘청렴하고 감사 업무를 전문적으로 했기 때문에 기업 고문이나 감사 자리에 적합하다’는 것과는 다른 내용이다. 관피아 논란이 결국 ‘연줄을 기반으로 한 창구 역할’이라는 것에서 불거졌다는 것을 감안해 관피아를 잡아내야 하는 감사원은 더욱 재취업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사원 출신들이 쉽게 재취업에 성공하는 반면 소방공무원은 줄줄이 재취업 문이 막혀 대조를 이룬다. 공직자들의 재취업을 무조건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결정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업무 연관성’이다. 재취업하려는 곳과 기존에 일했던 곳이 업무 연관성을 갖는다고 판단되면 취업을 제한하는 것이다. 8월27일 공직자윤리위는 퇴직 공직자 35명에 대해 취업 심사를 한 결과 3명의 취업이 제한됐다고 밝혔는데 공교롭게도 3명 모두 소방공무원이어서 뒷말이 무성했다. 소방 당국 일각에선 ‘우리가 힘이 없어서 그렇다’는 푸념이 나왔다.

이렇게 심사에서 떨어지면 보통 단념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대기업에 취업하려던 한 감사원 출신 퇴직 공직자는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한번 퇴짜를 맞았다가 곧바로 재도전해 통과된 후 최근 취업에 성공했다.

 

관피아 논란이 한창 일었던 지난해 사정기관 일각에서는 이름도 생소한 한 조직을 주목했다. 바로 감우회다. 감우회는 감사원 퇴직자들의 모임이다. 겉으로 보면 평범한 퇴직자 친목 모임인 것 같지만 친목 도모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0년 방위사업청은 비영리 민간단체 추천을 받아 3명의 옴부즈맨을 위촉했는데 이 중 한 명이 감우회의 추천을 받은 감사원 출신 정 아무개씨였다. 그 전해인 2009년에도 역시 감우회는 또 다른 인사를 해당 자리에 추천했고 받아들여졌다.

과거 참여연대는 “감사원이 감우회에 20평 사무실을 무상으로 대여하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감사원은 이런 지적을 받고 감우회 사무실을 이전시켰다. 관피아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새정치민주연합 강동원 의원은 “감우회가 감사원 퇴직자를 공기업 감사로 임명해서 사실상 공기업의 감사원 감사를 차단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감우회는 전체적·조직적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그 안에 여러 모임이 있는데 그 모임끼리 친목을 다지고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우회는 ‘감우회경영회계법인연구원’이라는 곳도 직접 만들어 일반 회계법인과 같은 업무를 수행한다. 이곳은 감우회가 탄생하던 1985년에 만들어졌다. 일반 회계법인처럼 직접 회계용역을 따서 이를 수행한다. 보통 정부 부처나 공기업의 용역을 주로 맡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 원장을 지내다가 민간 기업 사외이사로 간 사람도 있다. 연구원 활동은 감사원 퇴직자들이 전문성을 살려 용역 사업을 한다는 의미에서 나쁘게만 볼 수 없다. 한편에선 감사원이라는 조직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아무리 퇴직자들의 활동이라도 좀 더 엄격한 기준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관피아 논란이라는 것이 결국 ‘인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일부 공기업들 사이에선 이곳에서 회계감사 및 컨설팅을 받으면 감사를 피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돈다. 쉽게 말해 감우회로부터 컨설팅을 받았다는 것 자체에 ‘보험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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