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과의 대화] 동정하는 동네 사람들을 죽이고 싶었다
  • 배상훈│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프로파일러) (.)
  • 승인 2015.09.02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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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질러놓고 구조 활동 돕는 척하며 동태 살펴

2014년 12월28일 21시38분쯤, 강원도 양양군에 위치한 다세대주택 2층에서 불이 났다. 엄마 B씨와 세 명의 아이(12살·9살·6살) 등 일가족 4명이 사망한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화재로 인한 사망 사건의 경우 실화인지 방화인지를 구분하는 핵심은 사망자들이 발견된 위치다. 실화의 경우 사망자들이 발견되는 위치는 창문 앞이나 출입구 쪽이 대부분이다. 본능적으로 불을 피해 탈출하려는 상황에서 사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 사망자들은 작은방과 방문 앞, 거실 등에서 발견됐다. 방화가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사체 검안에서도 유류를 몸에 직접 뿌리고 불을 붙였을 때 생길 수 있는 물결무늬가 발견됐다. 이 또한 강력한 방화의 증거가 된다. 현장감식에서도 초기 발화 지점에서 화염의 빠른 진행이 의심됐고, 휘발유 유증도 발견됐다. 결정적으로 부검을 통해 사체에서 ‘졸피뎀’이라는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다. 이 사건은 방화 살인인 것이다.

ⓒ 일러스트 정찬동

동반 자살로 사건 몰아가려 해

방화 사건의 경우 유력한 용의자는 첫 신고자이거나 현장에서 소화를 돕는 행동을 하는 인물인 경우가 많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결과가 궁금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화재 사건에서 현장 비디오 영상 확보는 매우 중요하며, 또한 현장 소방관들의 증언 역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신고자 C씨와 현장 소화 참여자 A씨에 대한 진술 조사와 함께 탐문 수사가 진행됐다. 또한 B씨의 남편, 즉 아이들의 아버지 D씨에 대한 수사도 진행됐다. 결과적으로 D씨는 알리바이가 증명돼 용의선상에서 제외되었는데 문제는 A씨였다.

A씨는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도왔다. 집 안에 4명이 있다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리고 소방관을 따라 2층 계단으로 올라가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의 진술이 기존의 가족 관계와 현장 상황 등에서 엇나가기 시작했다. 동반 자살 쪽으로 사건을 몰아가려는 의도도 포착됐다. 진술 분석을 통해 거짓 진술 가능성이 추정됐고, 결정적으로 통화 기록에서도 거짓이 밝혀졌다. 현장에서 발견된 차용증을 통해 A씨가 범인임이 명확해졌다. A씨는 B씨에게 돈을 꾸고 갚지 못하자 결국 살해할 계획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그런데 수사가 진행되면서 그가 저지른 범죄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A씨는 이번 사건을 포함해 최소한 3회 정도의 금전 관련 방화 살인 사건을 저질렀다.

범죄는 범죄자의 생활 범위와 깊은 상관관계를 가진다. 범죄자들은 대부분 자신에게 익숙한 대상·장소·수단 등을 통해 범죄를 실행한다. 상식적으로 볼 때 어떤 특정한 범죄자가 자기와 무관한 아주 먼 장소에 가서 전혀 모르는 방법으로 범행을 저지르고 돌아와서 아무 일 없는 듯이 생활할 것 같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자기와 무관한 대상과 장소 등에서 범죄자는 타인의 눈에 쉽게 띄므로 행동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

범죄는 익숙함 속에서 발생한다. 여기에서 ‘익숙함’이란 범죄 실행자에게 상당한 자유를 가져다준다. 물론 이런 ‘익숙함’이라는 개념이 단순히 공간적·지리적 ‘가까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가깝지 않아도 자신이 익숙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볼 때 범죄자에게 범죄는 일종의 게임과도 같다. 실제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과 수단을 선호한다. 그래서 범행 추적에 동종 전과자 추적이 중요한 것이고, 인근 관련 범죄자 추적이 중요한 것이다.

잘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범죄 대상

이처럼 대단히 단순한 명제를 여성에게 적용하면 상황이 조금 복잡해진다. 지금까지 말한 명제의 주체는 남성이다. 만약 범죄자의 다수가 남성이라는 전제하에서 생활 범위 이론이 성립된다고 하면, 여성의 경우 생활 범위가 극히 한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범위를 넓게 봐도 가족과 친족, 동네 이웃, 자녀의 학교, 학교 동창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나 더 붙이자면 직장 정도다. 이들 집단은 인간적으로 친밀한 사람들의 집단이다. 이렇다고 볼 때 여성 범죄자에게 생활 범위 이론을 적용하면 친밀한 집단과 범죄 대상이 겹친다는 의미가 된다. 대개 남성의 경우 생활 범위가 넓어서 자신에게 친밀한 집단과 범죄 대상이 겹치는 경우가 드물다. 물론 남성이 주체가 되는 가족과 관련된 범죄의 경우에는 다르겠지만, 대부분 친밀한 집단의 범주와 범죄 대상 범주는 상이하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여성이 생계를 책임지는 경우가 드물어 그 자체로 여성의 범죄율이 남성에 비해 높지 않은 상황을 만들었다. 실제 체감하는 위험도도 낮았다. 하지만 이제는 여성이 생계를 책임지는 경우가 흔한 사회가 됐다. 결론적으로 볼 때 여성이 범죄의 주체가 되는 상황에서는 생활 범위 이론에 따라 생활 범위 안에서 범죄의 대상을 찾게 되고, 결국 친밀한 집단 안에서 범죄의 대상을 선택하게 되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육체적으로 타인에게 위협을 가하기 어려운 여성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범죄 수단이 약물 주입과 방화다. 범죄 대상이 모르게 독약이나 수면제 등을 먹게 하는 방법이 선호되는데, 이는 우리나라만의 특징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여성의 활동 범위가 좁은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반면 총기 규제가 느슨한 미국과 같은 경우 쉽게 구할 수 있는 총기를 통해 범행이 이뤄진다. 동유럽과 같이 여성의 신체가 크고 물리적인 힘을 이용하는 데 익숙한 사회의 경우 여성에 의한 도끼 살인 사건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결국 범죄는 익숙함과 상관관계를 갖는 것이다.

평소에 친밀한 사람들을 공격해서 이득을 얻는 방식의 여성 범죄에 대해 남성 범죄보다 훨씬 잔혹하다고 비난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일정 정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물론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여성의 범죄이든 남성의 범죄이든 모든 범죄는 다 잔혹하다는 점이다. 잔혹하지 않은 범죄는 없다. 문제는 기존에 인식됐던 남성 범죄들이 주로 잘 알지 못했던 제3자를 대상으로 한 반면, 여성들이 저지른 범죄들이 주로 잘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성들도 범죄를 저질렀는데 하필 그 대상이 가까운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돈이 필요해 가장 하기 쉬운 보험 범죄를 저질렀는데 그 대상이 자신의 ‘내연남’이었다거나,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동네 언니’였다거나, 자신과 같이 학부모회에서 활동하던 ‘누구 엄마’였던 것이다.

양양 일가족 방화 살해 사건의 현장검증이 진행된 1월13일 용의자가 얼굴을 가린 채 사건 현장에 도착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가난 속에서 장애 아이 키워온 외톨이

필자의 대학 동기 가운데 이 사건이 발생한 강원도 양양이 고향인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자신과 가족들이 A씨는 물론 B씨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사건이 동네에서 벌어져 너무 충격적이라고 했다. 평소 너무 친절한 사람이었다는 기억이 소름끼치도록 무서워졌다고 했다. 실제 이런 일을 접하게 되면 많은 사람이 유사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동네 사람들은 A씨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까. 그 친구도 그렇고 동네 사람들도 사실은 A씨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녀는 행복해지고 싶었지만 그렇게 될 수 없었던 외톨이였다.

별다른 재산도 가족도 없이 살다가 이 동네로 흘러들어온 A씨에게는 남편도 없이 장애를 가진 아이만 하나 있었다. 유일한 혈육인 그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을 했다.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장애 아이들을 돌보면서 자신의 아이도 키웠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삶은 좋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장애를 가진 아이 때문에 아이를 집에 두고 직장에 나갈 수도 없었다. 그는 외톨이였고 돌봐주는 사람 없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동정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에게 잘 대해주는 B씨와 같은 사람도 있었지만 남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신은 가지지 못한 남편과 정상인 아이들을 가진 B씨가 너무 부러웠다. 그럴수록 비참하게 살고 있는 자신이 더욱 싫었다.

그런 자신을 동정하는 주변 사람은 더 싫었다. 그는 자신과 동네 사람들을 죽이고 싶었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보험 사기였다. 대상은 평소에 관계를 가졌던 내연남. 이미 보험 수익자는 본인 명의로 바꿔놓았다. 불을 질러 죽이면 됐다. 모두 혼자 사는 남성들이었다. 사실 자신의 몸에만 집착하는 그들과 관계를 가진 것 자체가 이미 그들을 범죄 대상으로 삼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과 장애 아들을 동정했던 B씨와 그 아이들을 죽이고 마을을 떠나고 싶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몇 번의 방화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했던 A씨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걸까. 공동체로부터 자신이 버려졌다고 생각한 어떤 사람이 반사회성을 가진다고 해서 모두 인격장애자는 아닐 것이다. 그러한 외톨이들을 공동체가 품어내지 못한 게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동네 사람들이 그에게 특별히 잘못한 일은 없을 것이다. 평소처럼 대했고 잘해주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런 동정 어린 관심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물론 자신이 무언가를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모두가 타인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A씨가 방화 살인을 저지른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 사회가 이러한 외톨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준다면 무차별적으로 행해지는 공격의 빈도가 낮아지지 않을까. 안타깝게 죽은 아이들의 영혼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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