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물갈이’에서부터 ‘청와대 차출설’까지
  • 서상현│뉴스1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5.09.16 19:09
  • 호수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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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여당 TK 지역구 의원들 간 냉기류

 

“요즘 대구 분위기 어떤교?”라고 물어보면 대개 이런 대답들이 돌아온다. “싸하다” “아릿하다” “묘하다” “심상찮다”. 20대 총선을 약 7개월 앞둔 지금 대구의 정치적 공기는 생각보다 무겁고 예상보다 매캐한 안갯속이다. 복잡한 것 같지만 딱 잘라 정리하면 ‘박근혜냐, 유승민이냐’다.

“전국에서 대통령 욕해도, 우리는 아니잖아요. 컵에 물이 ‘절반밖에 없다’하고, ‘절반이나 있다’하고는 다른 답이듯, 그래도 우리는 아직 대통령 임기가 절반이나 남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잖습니까. 동네 딱 가보면 ‘유승민이가 좀 잘하지, 우리가 대통령 뽑으라고 도와줬는데’ 이렇게 말하는 어르신들이 좀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줘야 할 때잖아요.”(대구 동구의 한 공무원)

9월7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유승민 앉은 테이블 가장 구석에 배치

“그래도 그라믄 안 되지.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배신의 정치라 카면서 그렇게 눈 부릅뜨고 갈등을 조장하면 리더로서는 잘못된 겁니다. 얼마든지 불러서 얘기할 수 있고, 뒤에서 거칼(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를 온 국민 앞에서 망신 주고 그러면 쓰나. 유승민 그 양반도 허리 숙여 사과하더만. 그때 좋게 좋게 끝냈어야지. 다 같은 고향 사람들이고 말이야. 안 그런교?”(2012년 대선 때 박 대통령 찍었다는 대구 동구 신서혁신도시 주민 60대 여성).

대구에서만큼은 국회법 거부권 파동으로 인한 ‘유승민 사태’는 일단락되지 않고 이렇게 진행 중이다. 대구 사정에 밝은 여권의 한 정보통은 “(총선 전까지) 7개월 사이 정치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통’(대통령)한테 유리할 수도 불리할 수도 있는 사건은 언제든지 발생 가능한 긴 시간”이라며 “(공천을 위해) 현역은 바닥을 다지고 비비고, 신인은 공중전(중앙당 공천)과 육지전을 병행하는 수밖에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하지만 현역의 마음이 더 바쁠 것”이라고 했다.

요즘 대구 지역구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면 단번에 통화가 되는 일이 드물다. “지역 행사 중이었다”는 게 콜백(call-back)의 가장 많은 이유이고, “KTX에 있어 통화가 어려웠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그야말로 틈만 생기면 대구행이다. 그만큼 현역이지만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발생한 두 정치적 행위는 여러모로 해석이 가능한 정치적 사건이었다. 하나는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의원들의 청와대 오찬이고, 다른 하나는 박 대통령의 대구·경북 지역 방문이다.

8월25~26일 새누리당 국회의원 연찬회가 천안 우정공무원교육원에서 열렸다. 북한의 목함지뢰 매설 도발에 따른 남북 고위급 협상이 잘 마무리된 후여서 의원들의 참석률도 높았고 의기투합도 좋았다. 게다가 25일 저녁, 청와대는 26일 ‘오찬 번개팅’을 김무성 대표에게 제시했고, 김 대표도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138명의 여당 의원이 오전 일찍 청와대로 향했다.

정치적 해석은 오찬의 형식과 오찬장의 자리 배치에서 불거졌다. 이날 박 대통령은 오찬 때 으레 그래왔던 것과는 달리, 의원들과의 악수와 눈빛 교환 인사를 생략한 채 입구에서 곧바로 오찬장 가장 가운데 정면의 헤드테이블로 직행했다. 게다가 의원들이 상임위 소속별로 테이블에 앉았는데, 입구의 대각선 가장 반대편에 국방위원회 테이블이 놓였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국방위 소속이다. 북한 도발에 따른 여야의 초당적 대처를 격려하고 노동 개혁 등 각종 과제를 당부하는 자리였음을 감안했을 때 국방위 테이블 위치가 다소 묘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정가는 곧바로 반응했다. “청와대의 대통령 ‘심기 경호’가 지나치다” “유승민 망신 주려 당 의원들을 다 초청한 것” “앙금이 남아 있다” 등등. 유승민 전 원내대표 측은 “청와대 초청에 응하지 않으면 네거티브한 해석이 나올 수도 있어 참석했는데 오히려 더 나쁜 해석들이 나와 곤혹스럽다”고 안타까워했다.

정치적 함의가 느껴지는 두 번째 일은 9월7일 발생했다. 박 대통령의 대구와 경주 방문은 당초 8월21일 예정이었다. 그 전날 일부 대구 의원들이 대구시와 새누리당 대구시당으로부터 전갈을 받았는데, “대통령이 대구시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은 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서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두고 토론회를 갖는다. 행사의 성격상 정치인들의 참석이 맞지 않으니 이해해달라”는 취지였다고 한다. 일종의 ‘불참 명령’인 셈이다. 하지만 그날 행사는 목함지뢰 폭발로 순연됐고, 3주 가까이 지난 9월7일 재개됐다. 그러나 그 하루 전날인 6일 대구시는 또다시 지역 의원들에게 참석하지 말라는 공지를 보냈다.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의 TK행 동선은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친한 의원들의 지역구로 조합된다. DGIST는 이종진(달성군), 중구 서문시장은 김희국(중·남구)·김상훈(서구) 의원의 경계선상에 있다. 경주의 정수성 의원은 유 전 원내대표의 경북고 선배다. 이들 모두 유 전 원내대표의 원내대표 경선을 도왔고, 크게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원내대표 사퇴 정국에서도 유 전 원내대표의 편에 섰던 아군들이다.

8월26일 유승민 전 원내대표(오른쪽 두 번째) 등 새누리당 의원들이 청와대에서 열린 여당 국회의원 초청 오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대구 출마설 나도는 청와대 참모들 동행

게다가 정치인들의 등장을 달가워하지 않으면서도, 20대 총선에서 대구에 출마할 것이라 소문이 난 청와대 인사들은 이례적으로 이날 행사에 박 대통령과 동행했다. 청와대 안종범 경제수석은 올 초부터 대구 수성 갑 출마설이 돌고 있다. 대구 청구고를 졸업한 신동철 정무비서관은 중·남구에 출마한 경력이 있고, 지금도 소문이 무성하다.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 천영식 홍보기획비서관도 모습을 드러냈다. 눈여겨볼 대목은, 안 수석을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은 수행과는 동떨어진 직책에 있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9월9일 박 대통령이 참석한 인천 송도의 지역희망박람회에는 청와대가 인천 지역 국회의원 전원을 초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곧바로 정치권은 ‘대구만 출입 엄금?’이란 해석을 내놓았다. 이런 정치적 냉기류 전선을 타고 각종 설(說)이 난무한다. 현역 전원 물갈이에서부터, 청와대 차출설까지. 이를 교묘히 이용한 도전자들의 네거티브와 마타도어도 정치판을 어지럽히고 있다. 새누리당의 텃밭 중 윗목이 요동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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