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어먹기’의 행복
  • 김재태 편집위원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15.09.22 09:17
  • 호수 135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말그대로 돈을 마구 쓸어 담았습니다. 몇 달 사이에 엄청나게 벌었죠. 게다가 세금 걱정을 할 필요도 없으니 들어오는 대로 다 제 돈인 것입니다. 돈에 취해 흥청망청하다 보니 결국 이 슈퍼 하나만 달랑 남게 된 것입니다.”

꽤 오래전, 안면을 트고 지내던 동네 슈퍼마켓 주인과 술 한잔을 할 기회가 생겨 얘기를 나누던 중에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슈퍼마켓을 하기 전에 어찌어찌하다 동영상 CD를 불법으로 복제해 팔게 됐고, 그 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는 것입니다. 판타지 소설처럼 황당한 얘기를 들으면서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알고 있던 상식이 한꺼번에 우르르 무너지는 듯했습니다. ‘이런 세계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한동안 멍했습니다.

최근에 보도되어 화제가 된 일명 ‘페라리-벤틀리 교통사고’를 접하면서 맨 처음 떠오른 기억이 바로 이 슈퍼마켓 주인과의 대화였습니다. 이 역시 일반인의 상식과 생활수준으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억’ 소리 나는 사건입니다. 치정으로 얽힌 부부 싸움이 대낮 차량 충돌로 비화된 것입니다. 이 사건은, 부인이 몰던 차에 들이받힌 남편의 직업이 일정하게 없는 데다 한때 불법 도박 사이트를 관리한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더욱 이목을 끌었습니다. 변변한 직업도 없는 사람이 고가의 슈퍼카를 몰고 월세 수백만 원짜리 집에 산다는 내용은 놀라움을 넘어, 일반인의 감수성으로는 도저히 가 닿을 수 없는 ‘딴 세상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슈퍼마켓 주인이나 ‘페라리-벤틀리 부부’와 같은 딴 세상 사람이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다는 사실입니다. 세금을 내지 않고 버티면서도 떵떵거리는 사람, 부정하게 뒷돈을 받아 부를 축적한 사람,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입니다. 지하경제를 주무르며 배를 채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도권 밖에서 흘러 다니는 돈이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넘치고, 그만큼 ‘블랙머니 졸부’도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뜰 때 맨 먼저 머리를 조여 오는 것은 바로 ‘벌어먹기의 고단함’입니다. 벌어먹기 위해 매일 치르는 전쟁 같은 삶의 압박감은 누구에게나 간단치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페라리-벤틀리 부부’ 같은 딴 세상 이야기가 들려오면 온몸의 기운이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벌어먹고 사는 것의 힘겨움’이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역겨움 혹은 분노로 순식간에 바뀌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벌어먹기가 정당한 대우를 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모든

 

벌어먹기가 공평한 규칙 속에서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최근에 ‘공정 해고’와 ‘쉬운 해고’를 싸고 뜨거운 논란을 부른 노

동 개혁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개혁이든 그 결과로 인해 ‘벌어먹기’의 신성함이 침해당하지 않아야 올바른 것입니다. 못 가진 자의 것까지 빼앗는 사람이, 법을 우롱하고, 어기며 사는 사람이 더 많은 부를 챙기도록 하는 통로 자체를 더 만들어주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민족의 명절 한가위를 맞아, 꿈처럼 먼 얘기일지라도 ‘벌어먹기의 고단함’이 아닌 ‘벌어먹기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우리 모두에게 오기를 간절히 빌어봅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