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 천국, ‘추모공원’으로 탈바꿈
  • 정락인│객원기자 (.)
  • 승인 2015.09.22 10:00
  • 호수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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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묘지 면적, 국토의 1%로 포화 상태…장묘 선진화로 ‘매장 방식’ 급감

우리가 사는 한반도는 ‘묘지 천국’이다. 이미 ‘묘지 포화’ 상태다. 현재 전국의 묘지 면적은 국토의 1%인 10만 헥타르, 서울시 면적의 1.65배에 달한다. 전국 산천 곳곳에 자리 잡은 분묘는 대략 1435만여 기로 추정된다. 이 중에서 연고가 없는 ‘무연고 분묘’가 224만여 기(15.6%)다. 관할 관청에 신고하지 않고 무단으로 조성된 묘지가 전체 묘지의 70%에 해당하는 1004만여 기에 이른다. 전통적인 ‘매장 풍습’의 영향 때문이다.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과 훼손을 막기 위해서도 장묘문화의 획기적인 변화가 요구됐다. 최근 들어 그런 변화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인 매장 방식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 남인순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고인을 땅에 묻지 않고 화장

경기도 파주시 용미리 제2묘지(왼쪽)와 고양시 용미리 제1묘지 ⓒ 시사저널 박은숙·최준필

하는 비율이 2001년 38.8%에서 지난해에는 78.8%로 무려 40%나 높아졌다. 고인 10명 중 8명 정도가 화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수도권인 서울(87.3%)·경기(85.3%)·인천(89.3%)은 선진국 수준인 80%를 훌쩍 넘어섰다.

‘죽음’ ,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여기에는 ‘장묘법’에 따라 매장묘 설치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현행법에는 매장한 지 최장 45년이 경과하면 유골을 화장해 봉안해야 한다. 내년 1월부터 ‘한시적 매장 제도’가 시행되면 매장 비율은 더욱 낮아질 전망이다. 이 제도는 묘지의 설치 기간을 15년으로 제한하고, 3회까지만 연장을 허용하는 것이 골자다. 이에 따라 분묘를 설치할 때는 당국에 신고해야 하고, 최장 60년간의 사용 기한이 끝나면 1년 이내에 해당 분묘 시설물을 철거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만약 유골을 화장해 봉안하지 않으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사실상 ‘매장’은 이제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사람들이 새로운 장묘문화에 눈을 돌린 데는 ‘죽음’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도 크게 작용했다.

우리 사회에서 ‘죽음’은 금기의 단어였다. 가장 싫어하는 숫자는 ‘4’이고, 건물 엘리베이터에도 4층은 ‘F’로 표기돼 있다. ‘4’가 ‘死(사: 죽음)’를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 기피하고 있는 것이다. 상가(喪家)에 가는 것을 “재수 없다”며 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얼마만큼 ‘죽음’을 두려워하며 경계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죽음’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웰다잉(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대학에는 죽음을 연구하는 학과까지 생겨났다. 지난 2009년 2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이후 ‘웰다잉’은 현대인의 화두로 떠올랐다.

김 추기경은 선종하기 전 인공호흡기 같은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장기 기증을 하며 떠나 많은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그 이후 ‘잘 먹고 잘 살자’라는 ‘웰빙(Well-being)’에서 ‘품위 있게 죽자’라는 ‘웰다잉(Well-dying)’ 문화가 급속하게 퍼졌다. 대법원에서 존엄사를 인정하는 판결까지 나왔다.

이병찬 한국죽음준비교육원 원장은 “사람은 누구나 한 번 태어나고 죽는다. 무섭고 두렵다고 피했다가 갑자기 죽게 된다면 본인이나 가족에게는 원망과 한(恨)이 남게 된다. 만약 사랑하는 가족에게 유언장 하나 남겨놓지 않고 죽었다고 생각해봐라. 얼마나 허망하고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웰다잉은 평소에 차근차근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웰다잉이 확산되면서 사람들이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있다. 죽은 후에 땅에 묻혀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사라진 것이다. 죽음을 막연하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누구나 맞이해야 할 삶의 과정으로 인식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는 생각이다.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장년층 이상에서는 장례비용을 마련해두기 위해 틈틈이 일을 나가기까지 한다. 내세에서의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묘지’가 ‘공원’으로 변신

죽음에 대한 인식이 선진화되면서 자연친화적인 장례문화도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죽은 사람들을 묻는 ‘묘지’가 ‘공원’이라는 개념으로 바뀐 것에서 알 수 있다. 추모공원은 단순히 ‘명칭’만 바뀐 것이 아니다. 납골당이나 납골묘가 있는 묘지는 실제 ‘공원화’가 이뤄지고 있다. 떠나는 이에게는 편안하고 영원한 안식을, 보내는 이들에게는 고인을 마음껏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며 인공 폭포와 분수대, 조각공원 등을 설치하고 있다. 묘지의 개념을 완전히 탈피해 ‘기피하는 장소’가 아닌 ‘찾아가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납골묘’나 ‘납골당’도 점차 과거형이 되고 있다. 새로운 ‘자연친화적’ 방법이 도입되면서다. 대표적인 것이 ‘자연장(自然葬)’이다. 자연에서 온 인간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낸다는 개념으로, 화장한 유골을 수목과 화초, 잔디 등의 밑이나 주변에 묻어 장사하는 것을 말한다.

한때 자연장의 대표적인 것은 ‘수목장’이었다. 주검을 화장한 후 뼛가루를 나무뿌리에 묻는 자연친화적 장례 방식이다. 묘지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국토를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는 취지에서 도입했다. 처음에는 일부 사찰에서만 수목장이 운영되다가 점차 확대됐다. 2004년 9월 김장수 고려대 명예교수의 장례식이 경기도 양평의 고려대 연습림에서 수목장으로 치러진 것을 계기로 사회적인 주목을 받았다. 평생을 나무와 함께 산 김 교수는 그의 유언대로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갔다. 김 교수의 수목장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수목장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이후 지방자치단체나 사설 업체가 운영하는 수목장림들이 곳곳에 생겨났다. 2009년에는 국가가 운영하는 경기도 양평의 ‘하늘숲추모원’이 개장했고, 각 지방자치단체도 수목장림을 운영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1일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과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앞으로 산림보호구역 안에서도 수목장이 가능해졌다.

개정안은 화장한 유골의 가루를 나무나 화초, 잔디 아래에 묻는 친환경 장례법인 ‘자연장’과 관련한 규제도 크게 완화했다. 자연장 유골 용기의 크기 제한이 사라지고 표지 규격도 확대됐다. 이에 따라 산림청은 수목장림을 오는 2017년까지 23곳(국립 5곳, 공립 18곳)으로 늘릴 예정이다. 현재 국내에 조성된 수목장림은 국공립 3개소, 사립 50개소 등 총 53개소다. 이 중 문중이나 종중 등 가족과 개인 시설을 제외하고 실질적 이용이 가능한 수목장림은 16곳에 불과하다. 수목장용 나무로는 주로 참나무, 너도밤나무, 자작나무 등이 사용되지만, 부부형으로는 향나무, 가족형으로는 소나무를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 수목장 관계자들의 말이다.

수목·화초·잔디 등 ‘자연장’ 인기

자연장의 형태는 변화를 거듭했다. 최근에는 ‘잔디장’ ‘화초장’이 인기를 끌고 있다. 잔디가 깔린 정원의 일정 면적을 분양받아 화장한 유골분을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30㎝인 지면의 용기에 안장하는 방식이다. 이때 봉분은 만들지 않고, 고인이 누구인지를 알리는 개인 표식만을 설치한다. 환경 훼손이 덜하고 이용비용도 적게 드는 것이 장점이다. ‘화초장’은 자투리땅을 활용해 골분을 안치한 후 비석을 세우고 꽃을 심는 공간이나 정원을 조성하는 방식이다.

화장한 유골을 바다에 뿌리는 ‘바다장’도 관심을 끌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2년 해안선에서 5㎞ 이상 떨어진 해역에서는 바다장을 치르도록 규정했다. 배를 타고 나가 화장한 유골을 바다에 뿌리는 것인데, 고인과 관련된 표식은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정치평론가로 유명한 한 대학교수도 수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바다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아직은 ‘효’에 대한 생각이 남다른 우리네 정서상 부모님을 추모할 장소가 없는 ‘바다장’을 결정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 교수는 장례식장에서 만난 기자에게 “오래 병치레를 하셨는데 편히 자연으로 돌아가시라고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바다에 영면한 프로 축구선수도 있다. 지난 2011년 5월6일 서울 만남의광장 주차장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인천 유나이티드 FC 골키퍼 윤기원 선수도 바다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윤 선수는 경남 거제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윤 선수의 부모는 아들의 유골을 거제 앞바다에 뿌렸다.

윤 선수 어머니는 “추모공원에 가지 않았다. 살아 있는 자의 욕심으로 기원이가 그 조그만 항아리에 갇혀 있다는 사실만 생각해도 가슴이 터질 듯 답답했다”며 “드넓은 동해바다 아름다운 자연으로 보냈다”고 밝혔다. 윤 선수는 생전에 푸른 바다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하지만 윤 선수는 호적상으로는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이다. 경찰이 사망 원인을 자살로 결론짓자 부모는 타살 의혹을 제기하며 5년째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

‘웰다잉’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죽음은 더 이상 불길한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이들은 또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죽음을 준비하고 또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을 가진다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행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올해 추석에는 가족들이 모여 ‘아름다운 죽음’을 얘기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주 장례 시대 온다 

‘우주 장례식’은 미국에서 한창 진행 중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우주 장례업체는 ‘엘리시움 스페이스’와 ‘에스트로보틱 테크놀로지’ 그리고 ‘셀레스티스’ 등이다. 이 업체들은 고인의 분골을 로켓으로 달까지 운송한 후 달 표면에 장례를 치른다. 비용은 우리 돈으로 약 1170만원 선이다. 최초의 우주 장례는 1997년에 있었다. 미국의 민간 우주항공사 ‘오비털 사이언스’의 첫 비행 때 페가수스 로켓에 실린 캡슐에 24명의 유해가 지구 궤도로 올려졌다.

미국 켄터키 주에 있는 ‘메소로프트’사는 지난해 11월 죽은 사람의 유골을 상공 22㎞ 지점인 성층권에서 뿌려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특수 제작된 소형 기구를 상공으로 올려 보낸 다음 자동으로 유골을 뿌리는 시스템이다. 우리 돈으로 300만원 정도면 가능하다.

중국에서도 지난 2월부터 ‘우주 장례식’을 시작했다. 베이징(北京) 소재 ‘피안’이란 장례회사가 미국의 셀레스티사와 계약을 맺고 중국 내 사업권을 획득했다. 피안에 우주 장례식을 예약하면 고인의 유골을 미국 현지로 발송한 후 립스틱 크기의 작은 유골함에 담아 로켓에 실은 후 우주로 발사하는 방식이다. 유골함을 어디로 발사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우리나라에도 미국 업체와 계약을 맺은 우주 장례업체가 등장할 날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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