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장 기함’ 플래그십 세단 전쟁
  • 박성의 기자 (sincerity@sisabiz.com)
  • 승인 2015.09.25 18:26
  • 호수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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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스,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아야 진정한 플래그십
현대자동차 플래그십 세단 ‘2015 에쿠스’ / 사진 = 현대자동차

해군 함대 제독이 탄 주력함을 플래그십(flag-ship)이라 부른다. 한국말로는 기함(旗艦). 말 그대로 깃발을 꽂고 선봉에 선 대장선이다. 이를 차용해 자동차 브랜드의 최고급 세단을 가르켜 ‘플래그십 세단’이라 부른다.

바야흐로 ‘플래그십 세단 격전기’다. 치열한 자동차 전쟁 중에 완성차 회사들은 저마다 플래그십 세단 개발에 열을 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차 인기가 치솟아도 자동차 회사들은 경차보다 플래그십 세단 개발에 목을 멜 것이라 진단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플래그십 세단은 돈이 된다. 무엇보다 플래그십 세단의 위용이 자동차 브랜드의 인상을 좌우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 플래그십 세단 인기 이유? 돈이 된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자동차 한 대를 팔아 남기는 돈, 즉 마진(margin)을 대외비로 취급한다. 일종의 영업비밀이다. 마진이 공개될 경우 마케팅과 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게 이유다.

대외비지만 업계에 몸담았던 이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사실이 하나 있다. 일반 세단을 만드는 것과 고급 세단을 만드는 비용이 큰 차이가 없다. 즉 고급 세단 마진이 훨씬 높다는 사실이다.

국내 완성차 회사에 11년간 재직했던 P씨는 “현장에서는 자동차 문짝 값은 똥차 금차 안 가리고 다 비슷하다는 얘기가 있다”며 “플래그십 세단과 일반 세단 판매가는 천지차이지만 생산단가는 그 정도로 벌이지지 않는다는 것”이라 말했다.

플래그십 세단이 형성하는 높은 가격은 생산단가와 별개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즉 기아차의 경우 모닝이 K9보다 아무리 잘 팔려봐야 마진율에서 K9이 앞선다는 것이다.

그는 또 생산효율이 늘며 생산단가는 낮아졌지만 플래그십 세단가격은 오히려 올랐다고 지적한다. ‘비싸야 잘 팔린다’는 일명 ‘명품 법칙’이 플래그십 세단에도 통용된단 것이다.

P씨는 “기술이 발달할수록 차종 간 생산단가 차이는 점점 좁혀진다”며 “그러면 플래그십 세단 가격이 내려가야 정상이지만 10년전이나 지금이나 플래그십은 비싸다. 옵션을 뺀 일명 깡통 세단도 가격이 오른 것은 기이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 국내 플래그십 세단 절대강자는 ‘에쿠스’

국내 플래그십 세단 시장 선두는 현대차 에쿠스다. 지난 1999년 4월 첫 출시된 에쿠스는 라틴어로 개선장군의 말이란 뜻이다. 현대차의 국내 플래그십 세단 전쟁 첨병에 서서 명성을 쌓아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드높던 명성에 금이 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에쿠스는 올 1~7월까지 3700여 대가 팔려나갔다. 전년 동기 대비 판매량이 약 37% 급락했다. 특히 7월 판매량은 220여 대에 그쳤다. 수입 고급 세단들이 점유율을 갉아먹었고 고루한 디자인도 한몫했단 분석이다.

이에 현대차는 6년 만에 풀체인지(완전변경)를 거친 3세대 에쿠스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현대차의 집약된 기술력을 한데 담아 명작을 내겠다는 게 현대차 설명이다.

에쿠스가 인기는 시들하지만 제원에서는 국내차 중 단연 압도적이다. 특히 최대출력과 최대토크 부문에서는 경쟁자가 없다.

에쿠스 쌍둥이차 격인 K9이 동일 배기량 모델에서 에쿠스와 유사한 성능을 구현한다. 심지어 가격은 에쿠스보다 저렴하다. 하지만 판매량에서 에쿠스 상대가 되지 못한다. 올해 들어 월평균 385대가 팔렸다.

기아차는 지난해 말 5.0리터 8기통(V8)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5.0 퀀텀 모델을 라인업에 추가했지만 판매량은 여전히 바닥을 긴다. 월 20~30대씩 팔려나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K9이 에쿠스에 비해 젊은 세단인 점을 판매부진 이유로 꼽는다. 플래그십 세단은 역사가 중요한데 기아차 플래그십 역사가 너무 짧다는 것이다.

그나마 에쿠스와 전통면에서 쌍벽을 이루는 차가 쌍용차 체어맨이다.

성능면에서는 에쿠스나 K9보다 떨어지지만 1997년 탄생해 ‘원조 회장님 차’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만큼 CEO들이 애용하는 차로 유명하다. 지난 7월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업무용 차량을 에쿠스에서 체어맨으로 바꾼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쌍용차는 주행성능과 내구성을 개선 작업을 수시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점진적으로 점유율을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 국내 플래그십 세단, 장기적인 개발 플랜 필요해

자동차 회사에게 플래그십 세단이란 일종의 자존심이다. 마진과 별개로 기술의 집약을 보여주는 모델이기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완성차 업계가 플래그십 세단 내수 1등을 놓고 다투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한다. 국내 플래그십 세단 시장이 작은 우물이라면 세계 자동차 시장은 대서양이다. 그만큼 소비층이 넓고 경쟁 모델도 많은 해외시장에서 선전해야 명차 반열에 오를 수 있다 말한다.

구상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지인학과 교수는 “벤츠 같은 명차 브랜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성능과 디자인 개선 작업을 수행해 왔다”며 “국내 플래그십 세단 수준이 많이 올라왔지만 아직 특유의 품위 등이 부족한 것이 한계”라고 밝혔다.

세계 플래그십 세단 패권을 놓고 다투는 회사는 독일 명차 브랜드들이다. 벤츠와 BMW, 아우디 등의 플래그십 모델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현대차는 에쿠스 경쟁모델로 벤츠 S클라스나 BMW 7시리즈를 꼽지만 플래그십 명성에서 차이가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플래그십 세단 모델이 성장하려면 장기적인 개발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단기적인 안목을 버려야 성능과 품위 모두를 잡을 수 있단 분석이다.

구 교수는 “가격과 덩치가 크다고 플래그십 세단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며 “내수에서 팔리지 않고 금방 단종해 버린다면 역사는 쌓일 수 없다. 꾸준한 품질 향상과 기술 개발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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