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사태’ 강 건너 불 아니다
  • 송응철 기자·권용주│오토타임즈 편집장 (.)
  • 승인 2015.10.07 18:21
  • 호수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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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차업체 연비 과장 논란 재점화 정치권, 징벌적 배상 제도 ‘만지작’

폭스바겐 사태가 일파만파다. 파장은 폭스바겐 제품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룹 내 다른 브랜드인 아우디와 스코다도 스캔들에 감염됐다. 특히 소프트웨어 조작 사실이 여러 차례 보고됐음에도 경영진이 묵살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범죄의 질적인 면에서도 악의성이 도드라졌다. 미국에선 집단소송이 쏟아지고, 세계 각국은 소프트웨어 조작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폭스바겐그룹 전체가 거대한 폭풍에 휘말린 상황이다.

폭스바겐 사태 수습비용 80조원 이상 추산

이번에 문제가 된 건 폭스바겐의 대표 엔진인 ‘2.0 TDI 엔진’이다. 주력 차종인 골프나 제타 등에 적용돼왔다. 폭스바겐이 해당 엔진에 심어놓은 소프트웨어는 상당히 지능적이었다. 자동차의 주행 시간과 속도 반응, 대기압력, 스티어링 휠 등의 움직임 등을 인식해 ‘시험 모드’로 판단하면 배출가스 정화장치를 열심히 작동시킨다. 때문에 실험실에선 측정되는 배출가스 테스트는 언제나 합격점을 받았다. 그러나 소프트웨어가 실험실 바깥이라고 판단하면 배출가스 정화장치는 작동을 멈췄다. 효율은 올랐지만 질소산화물의 배출량은 많아지게 됐다.

ⓒ AFP연합

폭스바겐이 연비 조작이라는 무리수를 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폭스바겐이 가솔린 엔진의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 디젤 엔진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가솔린 엔진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해봐야 미국과 일본, 한국의 쟁쟁한 자동차들이 버티고 있어 시장 확대가 쉽지 않았다. 결국 디젤 엔진으로 승부를 봐야 했다. 그런데 미국은 유럽보다 디젤의 배출가스 규제가 3배나 까다롭다. 그럼에도 폭스바겐은 유로5 단계 기술로 배출 규제를 통과하면서 독일 디젤 기술의 우수성을 입증했다.

욕심은 여기서 그쳐야 했다. 규제를 통과한 폭스바겐은 소비자에게 디젤의 고효율을 부각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운행은 달랐다. 실제 도로 주행 때 배출 규제를 통과하려면 최대 300만원에 달하는 추가적인 정화장치를 달아야 했다. 하지만 값이 비싸 포기했다. 그래서 운행 때는 검사를 하지 않는다는 틈새를 파고들었다. 비싼 정화장치를 달지 않아도 되니 디젤의 가격 경쟁력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소프트웨어 조작을 선택했다. 그 결과 미국 디젤 승용차의 대부분을 폭스바겐이 차지했다. 국내에서도 ‘폭스바겐=디젤’의 이미지가 굳어지며 골프 등은 없어서 못 파는 차종 리스트에 올랐다. 그 사이 질소산화물은 대기 중에 여과 없이 쏟아졌다.

스캔들은 미국에서 발각됐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조사 끝에 폭스바겐은 조작을 실토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9월18일부터 9월29일까지 폭스바겐 주가는 41% 하락해 38조원에 달하는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EPA는 최대 180억 달러(약 21조3120억원)의 벌금을 부과할 예정이다. 여기에 전 세계 조작 의심 차량 1100만대 리콜 비용으로도 200억 달러(약 23조7100억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비용을 모두 합하면 이번 사태를 봉합하는 데 드는 비용이 80조원이 넘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이는 폭스바겐그룹의 지난 5년간 순이익을 웃도는 규모다. 향후 소비자들이 집단소송에 나서게 될 경우 수습비용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폭스바겐에 이번 사태는 전례 없는 재앙이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업계엔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특히 최근 국내외에서 판매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기아차에 반사이익이 생기리란 기대감이 조성되고 있다. 앞서 2010년 도요타의 대규모 리콜 사태 당시 현대·기아차는 ‘쏠쏠한 재미’를 봤던 경험이 있다. 그해 현대·기아차의 판매량은 전년 대비 23.8%나 증가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한국은 중국·일본·미국과 달리 승용 디젤의 비중이 큰 시장이라 이번 사건의 여파가 크게 작용할 수 있다”며 “수입차에 비해 열세였던 디젤 라인업을 차례로 갖춰가고 있는 국내 브랜드의 선전(善戰)을 전망해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비 조작 논란이 불거진 ‘2.0 TDI 엔진’. ⓒ 권용주 제공

국내 자동차 제조사에 일단 호재로 작용할 듯

반면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있다. 도요타 사태 당시에는 현대·기아차와 도요타가 경합을 벌이는 부분이 많았지만 폭스바겐의 경우 그렇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박영호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폭스바겐은 도요타만큼 미국 시장에서 한국차와 경합을 벌이는 제조사가 아니다”라며 “이번 리콜에 따른 효과가 도요타 리콜 때만큼 크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이 어떤 식으로든 반사이익을 누리게 되리란 분석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그렇다고 마냥 축배를 들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도 폭스바겐 사태로 불거진 연비 과장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2012년 현대차와 기아차에선 이번 폭스바겐 사태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유로5 R2.0 엔진이 탑재된 기아차 스포티지R·쏘렌토R·카니발R과 현대차 투싼ix R2.0·싼타페DM도 질소산화물 과다 배출로 구설에 오른 바 있다. 그 원인으로 고속 주행 때만 배기가스 저감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 지목됐다. 현대·기아차는 차량 결함이라고 주장했지만,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연비를 부풀리기 위해 ‘장난’을 쳤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연비 과장 논란은 비교적 최근에도 있었다. 지난해 6월 국토교통부는 ‘2013년 자동차 연비 자기인증 적합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현대차의 싼타페와 쌍용차의 코란도 스포츠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GM도 조사 대상에 오른 크루즈 1.8 가솔린 모델의 연비가 과도하게 설정됐다는 사실을 자백했다.

폭스바겐의 새 최고경영자(CEO)인 스테판 뮐러가 9월25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DPA연합

연비 논란 때마다 국내 제조사 미온적 대처

그러나 연비 과장 논란이 있을 때마다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은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장 현대차·쌍용차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은 자동차 제작사가 제품의 결함을 알게 된 날부터 30일 이내에 자동차 소유자에게 우편으로 통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토부로부터 공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공고할 의무도 없다고 맞섰다. 애초에 연비 부적합 판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참다못한 국토부가 이들 회사에 연비 테스트 결과를 인정하고 소비자 보상안을 마련하라는 공문을 보내고 나서야 현대차는 최대 40만원까지 보상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쌍용차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들 회사엔 아직까지 과징금 조치가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국토부는 연내에는 과징금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과징금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현행 자동차관리법에서 연비 과장에 대한 과징금 규모를 10억원 이내로 한정하고 있어서다. 게다가 정부가 내릴 수 있는 제재는 과징금이 전부다. 소비자에 대한 배상명령을 강제할 권한이 없다. 결국 연비 과장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소비자는 소송을 통해 각자 권리를 찾아야 한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에는 7000여 건의 연비 과장 관련 소송이 계류돼 있다. 하지만 소송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현재까지 연비 과장 소송에서 법원이 소비자의 손을 들어준 전례가 없다. K5 하이브리드가 광고 등에서 연비를 과장했다며 기아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차주는 지난해 2월 패소했다. 아반떼와 i30 차주 2명도 현대차를 상대로 연비 과장 소송을 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제조사들로선 국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문제제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이유가 없다. 해외에서 연비 과장 논란이 불거졌을 때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어서 소비자들의 실망은 클 수밖에 없다. 실제 현대·기아차는 2012년 미국 EPA가 연비가 과장됐다고 발표하자 곧바로 실수를 인정했다. 동시에 북미 지역에 이미 판매된 13개 차종에 대해 보상금 지급 방침도 밝혔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이번 폭스바겐 사태를 계기로 정치권에선 터무니없이 낮게 부과돼 오던 과징금을 현실화하기 위한 법 개정이 검토되고 있다. 판매량을 감안해 과징금을 부과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등을 도입하겠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제조사 중심으로 적용되던 관련법을 소비자 보호 위주로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도입되면 문제 발생 시 제조사는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한다.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이 앞으론 내수 시장에서 제기되는 사소한 불만도 쉽게 넘기지 못하게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 시사저널 박성의

이번 폭스바겐 사태를 어떻게 보나.

폭스바겐의 연비 조작은 2009년부터 6년에 걸쳐 벌어졌다. 장기간 누적된 문제인 만큼 파장도 길 것으로 보인다. 당장 조사에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다. 여기에 리콜 등 소비자 보상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관측된다. 리콜을 해도 끝이 아니다. 수리 이후 연비 악화와 성능 저하, 유지비 증가 등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로 인한 소비자들의 연쇄적인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단순히 폭스바겐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독일 자동차업계 전체로 번질 것으로 판단된다. 폭스바겐은 디젤 엔진 관련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진 회사다. 그런 회사조차 연비를 조작했는데 타사라고 비슷한 일이 없었으리란 보장이 없다. 현재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와 BMW에 대해서도 연비를 과장해 발표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있는 상태다.

국내 자동차업계가 받을 영향은 무엇인가.

일단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이 누리게 될 반사이익은 분명히 있을 것 같다. 이번 사태로 폭스바겐의 자랑인 ‘클린디젤’ 엔진은 물론 승용 디젤 전체의 위상에 막대한 타격이 가해졌다. 향후 디젤 차량 판매가 위축되면서 가솔린 차량 시장에 무게가 실리는 식으로 판도가 변화될 수 있다. 가솔린 엔진 비중이 높은 현대·기아차로선 호재로 작용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긍정적인 영향만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당장 환경부는 최근 문제가 불거진 폭스바겐 차량에 대한 검증을 시작하면서 12월에는 국산차도 시험대에 올리겠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폭스바겐의 연비 조작과 비슷한 문제가 발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이번 일을 계기로 환경 관련 규제가 한층 까다로워지면서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의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유탄을 피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 일로 폭스바겐이 잃은 것 중 가장 큰 건 기업 이미지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폭스바겐은 ‘고객을 속인 기업’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소비자들이 차량을 선택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 중 하나가 기업 이미지다. 그러나 현재 국내 제조사들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지속적인 기업 이미지 하락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기업 이미지 하락 원인을 무엇이라고 보나.

현재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대표적인 예다. 온라인상에서 ‘흉기 차’로 불릴 만큼 이미지가 나빠져 있다. 에어백이 터지지 않거나 트렁크에 물이 새는 등 품질 논란부터 내수 차별, 연비 과장 논란 등 크고 작은 사태로 인해 불거진 소비자 불만에 소극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소비자 신뢰를 되찾기 위해 필요한 노력은.

소비자들의 불만이나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도 최근 이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대차는 최근 소비자들을 초청해 내수와 수출용 차량의 충돌시험을 하거나 ‘커뮤니케이션실’을 신설하는 등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고 있다. 상당히 긍정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적극적인 소비자 배려를 전개해나가길 바란다. 물론 기술 개발이나 품질 제고는 기본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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