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은 이미 대선 레이스에 올라섰다
  • 유지만·박준용 기자 (redpill@sisapress.com)
  • 승인 2015.10.14 15:36
  • 호수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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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의 권력 지향형 행보 “대선 출마 안 한다는 말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말라”

대통령이 되는 데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개인적인 역량과 탁월한 정치력 등을 꼽는다. 운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권력의지’다. 노무현 정부 시절 여당 중진 의원을 지낸 한 인사는 “권력의지가 부족한 정치인은 결코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과거 ‘3김(金)’ 중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사이에 가장 큰 차이가 권력의지였다는 분석도 있다.

지금 정치권에 ‘반기문 대망론’이 확산되고 있다. 현재 여권의 대선 후보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청와대와 ‘친박’의 반대를 뚫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대두되면서, 그 대안으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거론되는 것이다. 물론 반기문 대망론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이미 1년 전부터 친박계에 의해 준비되어왔다는 지적도 있다.<시사저널 1355호 ‘반기문 대망론, 1년 전부터 시작됐다’ 기사 참조> 그럼에도 최근 들어 부쩍 확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 총장의 유엔 사무총장 임기는 내년 12월31일까지다. 여기에는 청와대와 친박의 최근 위기감이 반영돼 있다. 자칫 이렇게 갈 경우 ‘김무성 대세론’이 굳어질 수 있고, 내년 4월 총선 이후에는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갑자기 반 총장이 대선 후보군에 포함되기 시작했고, 그 결과는 김 대표를 제치는 1위였다.

ⓒ EPA연합

주변 “절대 안 한다고는 하지 마라” 조언

다수의 정치평론가가 “이제 반기문 카드는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었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반 총장의 대권 도전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는 이들 중 대다수가 지적하는 부분이 바로 ‘권력의지’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비록 여론조사에서는 가장 앞서 있긴 하지만, 권력의지가 약하기 때문에 결국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한때 대선 주자 지지율 선두를 줄곧 달렸음에도 결국 2007년 1월 대선 출마 포기 선언을 한 고건 전 총리에 빗대기도 한다. 실제 새누리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여권 내에서도 반 총장이 실제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 총장의 핵심 측근들은 이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반 총장에 대해 “누구보다 권력의지가 강한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평소 조심하는 반 총장의 성격상 누구에게 함부로 드러내지 않을 뿐, 목표를 이루기 위한 추진력과 치밀함은 어느 정치인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강하다는 얘기다. 또한 반 총장 주변의 반응에서도 처음 대망론이 불거졌던 지난해와는 또 다른 기류가 감지되기도 한다. 시사저널은 ‘반기문 대망론’ 실체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주변 인사들로부터 매우 의미심장한 증언들을 확보했다.

반 총장의 고향인 충청 지역의 한 유력 인사는 “주변에서 반 총장에게 대선 출마 가능성을 묻거든, ‘대통령 안 한다는 얘기만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밝혔다. 그의 증언이다.

“(반 총장) 주변에서는 반 총장의 대통령 출마 얘기가 언제든 터져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내년 12월에 유엔 사무총장 임기가 끝나면 곧바로 대선이 다가오면서 반 총장을 더욱 주목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가서 출마 준비를 하고 정치판에 뛰어들어도 검증 시간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 지금 섣불리 ‘안 한다’는 얘기를 입 밖으로 꺼낼 경우 이를 빌미로 반 총장이 (그때) 공격당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현재 몸담은 유엔 사무총장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게 최고의 ‘작전’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실제 지금 반 총장의 발언을 되짚어보면, “절대 대선 출마는 없다”고 못 박은 적은 한 번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도 반 총장은 국내 정치를 할 뜻이 없다고만 밝히면서 대선 출마에 대한 의사는 확실하게 표명하지 않았다. 그저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훌륭히 마치는 게 중요하다”고만 말할 뿐이다. 그러면서 “나를 대선 후보 여론조사 군(群)에 포함시키지 말아 줄 것”을 요구하는 정도였다.

‘반기문 대망론’은 지난해 10월 말에 열린 새누리당 내 친박계 의원들의 모임 ‘국가경쟁력강화포럼’에서 처음 제기됐고, 이후 야당까지 반 총장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데 가세했다. 그때도 반 총장 측은 국내 정치에 선을 그었다. 스스로 여러 차례에 걸쳐 “사무총장직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측근들도 “반 총장은 국내 정치에 큰 관심이 없다”며 ‘대망론’을 차단했다. 이 같은 태도는 반 총장이 올해 5월 세계교육포럼 참석차 방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반 총장과 친분이 있는 한 언론인의 전언이다. “반 총장과 연락을 취해 그의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가장 가까운 최측근을 접촉했다. 일정이 너무 타이트한 탓에 좀처럼 시간을 내기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요즘 (국내에서 대망론) 얘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뭔가 좀 달라지는 분위기가 있다고 봐도 좋은 것인가’라고 묻자 ‘그렇게 봐도 된다’는 답을 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절대 그럴 일 없다’는 태도였는데, 실제 확 달라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지난 9월4일 반 총장이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 이후 태산(泰山)에 올라간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반 총장이 자신의 대권 도전 의지를 우회적으로 표현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비가 왔는데, 비를 맞으며 태산에 오르면 천하를 얻게 된다는 중국 속설과 맞물리며 정치적 해석이 뒤따른 것이다. 당시 전승절 행사에서 반 총장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다. 바로 뒤를 이어 지난 9월 말 뉴욕을 방문한 박 대통령과 나흘간 약 7번에 걸쳐 만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망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 같은 태도 변화는 반 총장의 심경에 일정 부분 변화가 온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는다. 사실 반 총장의 출마 가능성은 지난 2012년 대선 때도 점쳐졌다. 대선 직전인 2011년에 반 총장의 연임이 확정되면서 수그러든 것일 뿐, 자신이 스스로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내외가 2009년 8월17일 고향인 충북 음성군 원남면 상당1리 행치마을을 방문, 선친 성묘를 마친 뒤 종친회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연합뉴스

“조용히 기다리지만, 나설 땐 확실하게”

결국 반 총장의 대권을 바라는 측근들의 조언과 새누리당 친박계의 ‘러브콜’이 맞물리면서 반 총장의 이미지를 더욱 빛나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여당 전략통으로 통하는 한 관계자는 “반 총장 자신이 가진 ‘권력의지’가 조금씩 새어나오면서 국내 정치에 발을 담그기 전에 ‘대통령 반기문’의 밑그림을 그리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를 하려는 것”이라며 “반 총장 자체가 정치 지향적이다 보니 박 대통령이 미국 갔을 때 7번이나 만남을 가졌던 것 같다. 대선에 꿈이 없다면 굳이 그럴 이유가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세간에 알려진 반기문 총장의 별명은 ‘기름장어’다. 미국 언론에서 붙여준 별명이라고 한다. 기자들이 꼬투리를 잡으려 해도 몸에 기름을 바른 장어처럼 잘 피해 다닌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별명이다.

흔히 반 총장의 스타일에 대해 ‘조용한 리더십’이라고 표현한다. 평소 자신의 생각을 잘 드러내지는 않지만, 원하는 바에 대해서는 집념을 가지고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하원 TV조선 정치부장은 자신이 쓴 <조용한 열정 반기문>이란 책에서 반 총장에 대해 “직접적으로 꼬집기보다는 에둘러 표현하는 게 그의 스타일이다. 속에는 온갖 감정이 요동쳐도 겉으로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자약한 전형적인 충청도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반 총장의 고향 선배인 안영수 경희대 교수는 “반 총장은 어릴 때부터 한 번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표시한 적이 없다. 그러나 속으로 5년, 10년을 계획하고 그 길을 밟아나가는 사람이다. 겉은 한없이 부드럽지만 속에는 칼과 쇠가 들어 있다”고 평가했다.

과거 유엔 사무총장 선거 과정에서도 반 총장의 조용하면서도 집요한 성향을 엿볼 수 있다. 남정호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쓴 <반기문, 나는 일하는 사무총장입니다>에는 사무총장 선거에 나선 반 총장이 미국 부시 대통령을 직접 찾아간 얘기가 나온다. 2006년 7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간 한·미 정상회담 자리에 동행한 반 총장은 부시 대통령에게 자신을 유엔 사무총장으로 지지해줄 것을 직접 요청했다.

지난 9월 초 반 총장이 중국 전승절에 참석한 것도 일종의 ‘조용한 사전 작업’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중국 전승절 행사에 서방 국가 지도자가 한 명도 가지 않았다. 그런데 만약 유엔 사무총장마저도 가지 않았다고 생각해 보라. 사실상 유일하게 참석한 박 대통령이 상당히 이상해 보였을 것”이라며 “과연 (반 총장이) 그렇게까지 (참석)할 필요가 있었는지, 박 대통령과 상당한 교감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형식적으로는 국제기구인 유엔을 대표한다는 명분이었지만, 기저에는 박 대통령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가져가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현 시점에서 ‘반기문’은 분명한 대선 ‘상수’로 자리 잡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반 총장은 ‘차기 대선 후보 적합도’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 등을 큰 차이로 제치며 1위로 나서 있다. 여기에 청와대와 친박계에서 반 총장을 비롯한 충청권 인사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관리’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더욱 탄력을 받는 상황이다. 리얼미터의 ‘주요 대선 주자 적합도 조사’에 따르면, 반 총장은 지난 6월 16.6%로 김무성(18.8%), 문재인(23.5%) 대표에 뒤졌으나, 올해 9월 말 조사에서는 28.5%로 무려 12.1%포인트 상승하며 1위에 올라섰다. 2위인 김무성 대표(16.6%)와의 격차도 컸다.

하지만 정치는 그야말로 생물이다. 지금의 상황이 내년 4월 총선 이후와 반 총장의 임기가 끝난 후인 12월에는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여권에는 현재 잠재적인 대선 주자가 많이 있다. 김무성 대표를 비롯해 최경환 경제부총리나 김문수 전 지사, 오세훈 전 시장 등이 모두 반 총장의 잠재적 경쟁자들이지 않나. 이들과의 경쟁과 야당의 검증 공세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결코 대권을 가져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5월25일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서울 종로구 정부청사 창성동 별관으로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안대희 카드’도 띄우는 고도의 노림수

여권 한편에서는 청와대에서 ‘안대희 카드’를 내밀 것이란 예상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은 내년 총선에서 서울 종로 출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때 서울 노원 병 출마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여권 핵심에서 ‘정치 1번지’라는 상징성이 있는 종로 출마를 권유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무총리 임명 당시 ‘전관예우’ 문제로 낙마했지만, 금액이 크지 않았고 ‘국민 검사’로 불릴 만큼 대중적 인기를 얻은 점 등을 청와대나 친박계에서 여전히 높은 상품 가치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반기문 카드’가 뜨는 시점과 동시에 ‘안대희 카드’가 뜨고 있는 게 청와대의 고도의 노림수라는 분석이다. 결코 어느 한쪽만의 일방적 독주를 허용하지 않고 경쟁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잘 차려진 밥상 위에 결코 숟가락만 올려선 대권을 잡기 어려울 것이란 메시지이기도 하다. 정치 지향적이면서 권력의지가 강한 반 총장에게 던지는 메시지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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