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전투기 사업 결국 추락하나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10.14 16:56
  • 호수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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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 미국 정부의 록히드마틴 핵심 기술 이전 거부로 속앓이

2030년까지 한국형 전투기를 개발하겠다는 우리 정부와 군의 야심 찬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한국형 전투기 사업(KF-X)은 기동성 면에선 KF-16과 유사하지만 탑재되는 레이더, 전자장비 등은 더 우수한 ‘미들급’ 전투기 120대를 국내 개발로 양산하는 사업이다. KF-X 사업은 개발비(8조5000억원)와 양산 비용(9조6000억원)을 합해 18조1000억원이 투입되는, 대한민국 건군(建軍) 이래 최대 무기 사업으로 꼽혀왔다. 개발 완료 시점은 2025년이며, 전력화는 2032년에 마무리할 예정이었다.

KAI,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하지만 우리 공군이 미국 록히드마틴사로부터 F-35A 전투기를 구매하면서 한국형 전투기 개발에 필요한 핵심 기술 일부를 이전받기로 한 것을 미국 정부 측에서 거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업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기술 이전 거부에 따른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제쳐두더라도, 록히드마틴으로부터 받기로 한 기술이 전투기 개발의 핵심이었던 만큼 사업이 좌초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한국군 차세대 전투기로 선정된 미국 록히드마틴의 F-35. ⓒ AP연합

주무 기관인 방위사업청은 뒤늦게 미국이 거부한 기술 네 가지 중 세 가지는 자력 개발이 가능하고, 능동위상배열(능동전자주사식) 레이더를 개발해 통합하는 것도 국내 기술로 추진하되 여의치 않을 경우 제3국의 기술 지원을 받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한 번 땅에 떨어진 신뢰를 다시 얻는 것은 쉬워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방사청 발표대로 우리 힘으로 주력 전투기를 개발할 수 있으면 애당초 미국이 거부할 것을 알면서도 왜 첨단 기술 이전을 요구했는지 의문이다.

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청와대와 방사청 간 진실 공방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가장 난처한 곳은 다름 아닌 한국형 전투기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다. KAI는 지난 3월30일 대한항공을 제치고 이 사업의 우선사업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당시 KAI는 미국 록히드마틴과, 대한항공은 유로파이터 전투기 제작사인 에어버스와 손잡고 입찰에 참여했다. 그런데 청와대와 방사청, 미국 록히드마틴 세 곳이 기술 이전을 놓고 진실게임을 벌이면서 KAI 측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6월에 마무리하기로 했던 본 계약 체결은 현재까지 미뤄지고 있다. 기술 이전 무산을 둘러싼 책임 공방뿐 아니라 진상조사가 끝날 때까지 본 계약은 물 건너간 분위기다. 게다가 한국형 전투기 사업은 물론이고 차세대 전투기 사업마저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KAI의 이런 상황에 대해 한 민간 연구원 관계자는 “우리나라 무기 개발 사업 자체가 기업보다 정부의 의사결정에 좌지우지되고 있는 만큼, KAI가 여러 측면에서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고 말했다. 진퇴양난인 KAI의 현 상황은 주가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KAI는 사업자에 선정된 후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KAI의 주가는 주식시장에 상장된 2011년 9월 이후 4만원을 잠깐 넘은 적이 있을 뿐, 대부분 2만원에서 3만원 사이의 박스권에서 오르내렸다. 그런데 한국형 전투기 사업 입찰에 참여하기로 한 계획을 밝힌 지난해부터 4만원을 넘어서더니,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이후 7월에는 10만원을 넘어섰다. 올해 1월 주가가 3만원대였음을 감안하면 6개월 만에 3배 넘게 상승한 셈이다. 주가가 최고점이었던 8월10일 KAI의 시가총액은 10조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와의 기술 이전과 관련한 잡음이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한 후 주가는 급속도로 빠지기 시작해 불과 한 달 만에 6만원대 중반까지 떨어졌다. 이후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해 10월8일 종가가 7만3800원에 마감됐다.

상황이 복잡해지면서 군 일각에서는 애초부터 우선협상자 선정이 잘못된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방사청의 한 관계자는 “F-35A는 선정 당시부터 핵심 기술을 이전받지 못할 우려가 적지 않았던 반면, 경쟁자였던 보잉의 F-15SE와 유로파이터 타이푼은 기술 이전을 좀 더 분명하게 약속했었다”며 “특히 대한항공은 유로파이터 제작사인 에어버스와 파트너십 계약을 맺고 핵심 기술을 이전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결국 탈락했다”고 말했다.

T-50 고등훈련기를 생산 중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천공장. ⓒ 한국항공우주산업

KAI, 인도네시아와의 공동 사업도 불투명

KAI 측은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분위기다. KAI 측 관계자는 “무기 개발 사업은 항상 조심스럽지만,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방사청이 미국의 기술이전 거부에 대해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면서 “청와대가 중간 과정들을 재점검해보겠다는 취지로 나섰는데, 이번 기회에 논란이 해소되고 오히려 탄력을 받아 KF-X 사업이 속도를 냈으면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놓았다.

오히려 KAI가 기대고 있는 곳은 인도네시아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양측은 2011년 전투기 공동 탐색 개발 계약을 맺고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가 KF-X 체계 개발 비용의 20%를 부담한다는 내용의 기본합의를 체결했다. 하지만 우리 측 업체인 KAI와 인도네시아 측 파트너 업체와는 아직 계약도 체결되지 않은 상태다.

문제는 인도네시아 측이 계약 조건으로 우리 측이 미국 록히드마틴으로부터 이전받는 기술의 재이전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 측이 사업에서 중도 하차할 수도 있다는 우려는 여기서 제기된다. 록히드마틴이 우리 측에 대한 기술 이전을 거부하면서 인도네시아 입장에서도 사업에 참여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국형 전투기 사업은 2002년 필요성이 결정된 이후 12년이 지난 2014년에 착수 승인이 났을 정도로 오랜 검토 기간을 거쳤다. 이런 과정을 거쳤음에도 여전히 정부 쪽에서 잡음이 이는 탓에 애꿎은 민간 기업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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