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부터 교과서 국정화 추진했다”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press.com)
  • 승인 2015.10.1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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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당 ‘교학사 참패’ 후 본격적인 국정화 움직임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1월부터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팔을 걷어붙인 것으로 확인됐다. 2013년 말 교학사 교과서 오류 사태가 벌어지자 보수 진영 각계의 의견을 모아 국정 교과서 제작에 나선 것이다.

교학사 교과서는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집필에 참여하면서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켰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해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이 0%대에 머무르자 ‘좌편향된 교과서를 수정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정부는 황우여 교육부장관을 필두로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다. 황 장관의 뒤를 여당과 보수 사학계가 떠받치는 모양새다. 현재의 검·인정 체제하에서는 학생들이 좌편향된 역사의식만 가지게 될 것이란 위기감이 교과서의 국정화를 앞당긴 것이다.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가운데)이 10월12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공용브리핑룸에서 국정 교과서 추진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와 여당은 국정 교과서를 추진하는 배경에 대해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함양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현재의 검·인정 체제하에서 만들어지는 역사교과서로는 객관적인 역사 교육이 이뤄질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반면 야권과 시민사회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뉴라이트 계열 인사가 많은 현 정권 특성상, 국정 교과서가 나올 경우 반드시 왜곡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처음 도입된 국정 교과서가 딸인 박근혜 대통령 시대에 다시 도입된다는 점에서 “유신으로의 회귀”라고 강조한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보수 세력 결집을 위해 ‘국정 교과서 카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한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현재 야당은 장외투쟁과 법정 소송 등 동원 가능한 모든 방안을 통해 정부와 여당의 교과서 국정화 계획을 막아내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교학사 사태에서 촉발한 ‘국정 교과서 전쟁’

2014년 1월13일 새누리당과 교육부는 국회에서 당·정 협의를 가진 후 ‘역사교과서 발행 체계 개선안’을 그해 6월까지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오후 당시 서남수 교육부장관은 제주도 라마다호텔에서 개최된 ‘교육자협의회 동계 연수’에서 “국정을 포함한 근본적인 교과서 체제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보수적 색채를 가진 교학사 교과서가 일선 학교에서 외면을 받으면서부터 시작됐다. 2013년 말부터 벌어진 ‘교학사 교과서 채택 거부 사태’는 ‘교과서 전쟁’의 1차전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교학사의 한국사교과서에 이승만 대통령을 미화하는 부분 등이 포함된 게 알려지면서 우편향 논란이 일어났다. 집필진에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참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반발은 더 커졌다. 정치권과 시민사회, 학계가 교학사 교과서를 거부하고 나섰고, 일선 학교에서도 교학사 교과서 채택 거부 움직임이 일어났다. 결국 2014년 초에 접어들면서 일선 학교의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은 1%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여권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교학사 교과서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정부와 보수적인 학자들 사이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재 70% 이상 좌편향된 사학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당 내부에서도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이 그렇게 나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해 당황스러워했다. 이후부터 당과 정부가 역사교과서 발행 체계 개편과 국정화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후 정부와 여당이 2014년 1월 당·정 협의를 통해 국정화를 포함한 역사교과서 발행 체계 개편안을 내놓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교학사 교과서 오류를 불러온 원인이 제도 탓이라는 논리를 앞세웠다. 기존 검·인정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것을 넘어 현 정권에서 처음으로 ‘국정화’란 단어가 언급됐다.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뒤를 받쳤다. 박 대통령은 같은 해 2월 교육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번 기회에 사실에 근거한 균형 잡힌 역사교과서 개발 등 제도 개선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교육부는 교과서 발행 체계 개선안을 마련할 추진단을 꾸리고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여론의 힘을 빌리지는 못했다. 상반기 안에 내놓겠다던 교과서 발행 체계 개선안은 반대 여론이 많아짐에 따라 완성되지 못했다. 발표 기한을 10월까지 연장했지만 결국 개편안을 내놓는 데 실패했다.

2014년 1월5일 전북 전주 상산고등학교 졸업생들이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을 철회하라며 상산고 정문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황우여 장관 통한 ‘국정화’ 재시도

한 번 실패한 국정화 시도는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취임하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황 장관은 서남수 전 장관이 이루지 못한 과제를 이어서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 보면 황 장관이야말로 ‘국정 교과서’를 추진하는 데 제격인 인물이었다. 황 장관은 새누리당 대표 시절부터 단일 교과서를 주장했다. 그는 2013년 10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역사교과서에 대한 책임은 정권이 아닌 국가가 직접 떠맡아 올바른 내용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취임 후에도 국정화에 대한 발언을 이어가며 불을 계속 지폈다. 그는 지난해 8월 7일 교육부장관 인사를 앞두고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국론 분열을 막으려면 국가가 책임지고 한 가지로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에는 여론의 추이를 살피며 절제된 반응을 보였다. 국정화 발언이 논란이 될 경우 적당히 물러서는 방식을 취했다. 하지만 지난 10월12일 학계와 정치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정화 방침을 천명하며 국정 교과서를 밀어붙였다.

야당·학계·시민단체 “국정화 추진과정 졸속”

역사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정부와 여당의 국정화 결정이 ‘졸속’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여론 수렴을 위한 절차는 거치지 않은 채 한쪽 방향으로만 밀어붙인다는 얘기다. 강종훈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정부 측이) 반대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는다. 자기들 입맛에 맞는 이야기만 들은 채 그것을 ‘여론’이라고 말한다. 국정화를 반대하는 학계의 여론을 들었다면 (국정화) 결론을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지난해 8월 교육부가 주관한 ‘역사교과서 발행 체제 개편안 개선 토론회’에 참석했다. 당시 국정화에 찬성한 학자는 참석자 13명 중 3명에 그쳤다.

야당 측은 여당이 교과서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도종환 새정치연합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특위 위원장은 “논리적으로 이길 수가 없으니 결국 정치가 개입해서 밀어붙이려는 의도”라고 비난했다. 반면 여권은 야권의 무분별한 이념 공세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지난번 ‘교학사 사태’ 당시 야당 측이 맞지 않는 보고서를 들이밀며 여론을 호도하지 않았나. 그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는 내용들은 굳이 공유하지 않고 있기는 하다. 무엇을 은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야당의 여론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교과서 국정화 누가 주도하나 
김무성·황우여·김재춘·김정배 등 ‘黨-政-靑-學’ 연계

 

현재 국정 교과서를 전면에서 주도하는 있는 사람들로는 황우여 교육부장관과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김재춘 교육부 차관 등이 꼽힌다. 또 정치권에서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김을동·강은희 의원이 지원사격을 하고 있다.

황 장관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전면에서 이끌고 있다. 그는 지난 10월12일 국정화 전환 행정예고를 발표하면서 “사실 오류가 없고 이념 편향성이 배제된 최고 품질의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했다. 청와대 교육비서관을 지내다 지난 2월 교육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긴 김 차관도 한몫하고 있다. 그는 행정예고 발표 자리에서 “현재 교과서에 이념 편향적인 내용이 상당히 많다”고 주장했다.

학계에서는 김 위원장이 전면에 나섰다. 그는 과거 유신 시절 국정 교과서에 대해 “역사가 획일적으로 가서는 안 된다”며 반대했으나, 최근에는 입장을 180도 바꿨다. 김 위원장은 “교과서 집필진의 중도성을 확보하겠다”며 여론을 달래는 한편, 국정 교과서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여당 관계자는 김 위원장에 대해 “국사편찬위원장으로 어렵게 모신 분”이라며 “여러 학자들이 고사했는데 김 위원장께서 흔쾌히 나서주셨다”고 설명했다.

여당에서는 김 대표를 필두로 김을동·강은희 의원이 나섰다. 김 대표는 2013년 당내에 ‘근현대사역사교실’을 만들어 국정 교과서 문제를 이슈화했다. 김 대표는 지난 4월7일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현 역사교과서들은 학생들이 배우면 배울수록 패배감에 사로잡히고 모든 문제를 사회 탓, 국가 탓만 하는 시민으로 만들고 있다”고 기존 교과서를 비판했다. 김 의원은 현재 새누리당 역사교과서개선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강 의원은 특위 간사로서 각종 토론과 인터뷰 등을 통해 국정 교과서의 필요성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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