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스릴러’들이 충무로에 몰려온다
  • 이은선│매거진M 기자 (.)
  • 승인 2015.10.22 14:28
  • 호수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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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변호사> <더 폰> <특종:량첸살인기> 등 스릴러 잇따라 개봉

충무로 유행 장르는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요즘 확실한 대세 중 하나로 ‘추격 스릴러’가 꼽힌다. 10월만 해도 <성난 변호사>를 필두로 <더 폰> <특종:량첸살인기>까지 나란히 세 편의 영화가 선을 보인다. 소재와 이야기는 조금씩 다르되, 궁지에 몰린 주인공이 자신이 처한 곤경을 빠져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그린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2000년대 후반 이후 본격적으로 한국에 스릴러 열풍을 몰고 온 작품은 단연 <추격자>(2008년)다. 충무로 비인기 장르, 청소년관람불가, 비수기 개봉, 당시 아직 흥행 파워가 입증되지 않은 신인 감독과 배우들이 만들었다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관객 수 500만명 이상을 모으며 대박을 터뜨린 영화다. 이후 한국 스릴러는 소재와 장르, 문법의 다양성 면에서 이전과는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살인의 추억>(2003년)이 흥행에 성공한 직후에는 실화를 바탕으로 사건을 쫓는 경찰이나 피해자의 입장을 헤아리는 영화들이 주로 기획됐다면, <추격자> 이후에는 단순히 ‘범인이 누구인가’를 쫓는 방식에서 탈피한 스릴러가 하나둘 쏟아져 나오게 된 것이다. 2010년 이후 첩보 액션과 스릴러를 결합한 <감시자들>(2013년), 뉴스 생방송 부스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촌각을 다투는 싸움을 그린 <더 테러 라이브>(2013년) 등 색다른 형식의 스릴러들이 탄생한 배경이다.

, , ⓒ CJ 엔터테인먼트·NEW·롯데엔터테인먼트

장르 자체가 유행을 타다 보니 스릴러 장르에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던 여성 주연 캐릭터가 새롭게 조명되기도 했다. <세븐 데이즈>(2007년)를 시작으로 아이를 위한 엄마들의 사투(死鬪)인 <심야의 FM>(2010년), <몽타주>(2013년) 같은 영화들이 간간이 등장했다. 무능한 공권력과 사법제도를 비판하는 내용의 사적 복수 소재 영화의 붐이 함께 일면서 <돈 크라이 마미>(2012년), <공정사회>(2013년) 등의 스릴러가 탄생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시시각각 바뀌는 사건의 국면을 속도감 넘치는 전개로 그린, 남성 배우 원톱 주연의 스릴러가 대세다. 그렇다 보니 이 장르에 최적화된 배우들이 비슷한 톤의 작품을 연달아 찍는 경우도 생겼다. 이선균 주연의 <성난 변호사>가 대표적이다. 이 영화는 <끝까지 간다>(2013년)로 345만 관객을 모아 흥행 파워를 입증한 배우 이선균에 의한, 이선균을 위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머니 장례식을 치른 것도 모자라 아내의 이혼 통보, 실수로 교통사고까지 낸 채 정체불명의 목격자에게 시달려야 했던 <끝까지 간다>의 건수가 <성난 변호사>의 변호사 변호성으로 옷을 갈아입고 벌이는 추격전처럼 보일 정도다.

이선균에 의한, 이선균을 위한 <성난 변호사>

<성난 변호사>에서 이선균이 연기하는 변호성은 그간 이선균이 드라마 <파스타>(2010년, MBC)와 <끝까지 간다> 등에서 연기한, 까칠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를 전부 합쳐놓은 것처럼 보이는 인물이다. 그만큼 작품을 통해 배우가 쌓은 고유의 이미지와 매력에 기대는 면이 많은 영화다. 대형 로펌 소속으로 독보적 승소율을 자랑하는 에이스 변호사 호성(이선균)은 시체도, 증거도 없는 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를 변호하는 일을 맡는다. 문제는 승리를 확신하는 순간 용의자가 법정에서 자신의 살해 혐의를 자백하면서부터 발생한다. 한순간에 승소를 위해 증거를 조작한 변호사가 된 호성은, 이 사건의 이면을 팔수록 더 큰 배경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존심이 구겨진 변호사의 통쾌한 반격. 이것이 <성난 변호사>의 동력이다.

초반에는 기존 법정영화의 문법을 충실히 이행하는 듯했던 이 영화는, 호성이 발로 뛰는 탐정 캐릭터를 자처하는 중반 이후 새로운 활력을 얻는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동안 이야기가 너무 장황해지긴 하지만, 나름으로 모든 아귀가 들어맞도록 설계한 시나리오에 배우의 캐릭터를 십분 활용한 연출이 더해지며 기분 좋은 리듬감을 잃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더 폰>은 <숨바꼭질>(2013년), 올해 초 개봉한 <악의 연대기>에 이어 ‘손현주표 스릴러 3부작 완결편’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한 영화다. 도시 괴담, 그리고 집과 관련한 한국 사회의 근원적 불안과 공포를 결합한 <숨바꼭질>은 개봉 직후 ‘생활 밀착형 스릴러’라는 찬사를 받으며 흥행에 성공했고, 배우 손현주를 이 장르의 1인자로 둔갑시켰다. 그가 열연해 많은 사랑을 받았던 TV 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2012년, SBS)의 영향도 컸다.

<더 폰>의 핵심은 시공간을 초월해 벌어지는 추격전이다. 1년 전 살해당한 아내 연수(엄지원)의 전화를 받은 동호(손현주)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통화를 이용해 아내를 살리고자 애쓴다. 단 하루, 서로 다른 시간차를 두고 벌어지는 SF 판타지적 성격을 띠는 영화라는 점에서 그동안 등장했던 추격 스릴러들과 차별된다. 시간이라는 중요한 소재가 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꿰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영화이기도 하다. 군데군데 설득력이 떨어지는 대목이 보이긴 하지만, ‘가족을 지키려 백방으로 뛰는 아버지’ 캐릭터에 적임자처럼 보이는 손현주의 연기가 그때마다 안정적인 접합제 역할을 한다.

잘못된 살인 사건 특종을 다룬 블랙코미디

<성난 변호사>와 <더 폰>에 비하면 <특종:량첸살인기>는 비슷한 장르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신선하게 느껴지는 영화다. 이선균과 손현주가 전작의 기시감을 어느 정도 안고 가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반면, 이 영화의 주연인 조정석은 추격 스릴러 장르 안에서는 새로운 얼굴이다.

우연한 제보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살인 사건을 밝혀 특종을 터뜨린 방송국 기자 허무혁(조정석). 하지만 곧 자신이 취재한 것이 실제 살인마의 메모가 아닌 소설 <량첸살인기>의 한 구절임을 알게 되고, 특종인 줄 알고 터뜨린 보도가 최악의 오보였음을 깨닫게 된다.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이유로 후속 보도를 기다리는 보도국과 취재 과정을 밝히라는 경찰의 압박 사이에서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지른 기자. 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채로 우스꽝스럽게 굴러간다. 치열한 특종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매체들의 이기심 때문에 거짓은 진실이 되고, 어느 시국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진실 공방은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게 돼버린다. 이 거대한 촌극은 상황을 바로잡고 실제 범인을 붙잡으려는 남자의 고군분투라는 점에서 추격 스릴러의 신선한 변형으로 보인다.

법정 반전 드라마에서 시공간을 초월한 SF와 블랙코미디의 외피까지 두른 추격 스릴러 장르의 외연은 앞으로 어디까지 더 넓어질 수 있을까. 세 영화를 받아들이는 관객 반응이 사뭇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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