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서방파와 양은이파가 장악한 해외 원정 도박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press.com)
  • 승인 2015.10.29 14:47
  • 호수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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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에 빠진 대한민국…유명 스포츠 스타·기업인 연루 ‘전 방위 확산’ 조짐

대한민국이 ‘도박’에 빠졌다. 이번 무대는 해외다.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해외 원정 도박 일당들이 사정 당국에 꼬리를 잡혔다. 유명 프로야구 선수부터 기업인까지 해외 원정 도박을 즐긴 것으로 드러났다. 해외 원정 도박에 대한 수사는 지금 경찰과 검찰이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검·경은 해외 카지노에서 브로커 생활을 해온 일당들을 잡고, 이들이 가지고 있는 리스트를 입수해 도박을 즐긴 이들을 쫓고 있다.

수사를 통해 드러난 해외 원정 도박의 실체는 상상 이상이다. 특히 ‘범서방파’와 ‘양은이파’가 마카오와 필리핀,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의 도박 시장을 나눠서 운영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과거 1980년대부터 국내 조직폭력 ‘3대 패밀리’로 불릴 정도로 악명을 떨쳐왔다. 국내 조폭과의 전쟁 탓에 무대를 해외로 넓힌 후 이른바 ‘VIP’들을 통해 거액의 돈을 챙겨왔던 것이다.

마카오에 있는 한 카지노 게임장. ⓒ image china 연합

지난 6월부터 해외 원정 도박을 추적해온 검찰은 현재까지 26명을 입건해 기업인 3명을 비롯해 12명을 구속하거나 구속 기소했고, 2명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과정에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회장(50)과 문식 켄오스해운 대표(56)가 구속됐다. 또 경찰은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소속 선수 3명이 해외 원정 도박을 한 혐의를 포착하고 수사에 나섰다. 사정 당국 안팎에서는 이보다 더 많은 인사가 수사선상에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조폭 개입된 ‘정킷방’ 업자 잡으며 수사 급물살

해외 원정 도박 파문이 크게 터진 것은 한국시리즈를 앞둔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이 경찰에 적발되면서부터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삼성 선수 3명이 원정 도박을 한 혐의를 포착하고 내사 중이라고 10월16일 밝혔다. 현재 이 중 2명과 도박 알선책 사이의 통신 기록 및 출입국 기록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속 선수들이 도박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자 삼성 라이온즈 측은 해당 선수들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삼성 라이온즈 김인 대표이사는 10월20일 오후 대구시민운동장 VIP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선수들의 도박 혐의가 확정될 경우 그에 맞는 징계를 내리겠다”고 밝혔다.

검찰의 수사는 주로 기업인들에 집중됐다. 검찰은 10월21일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회장과 켄오스해운 문식 대표를 구속 기소했다. 정 회장은 2012년 3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마카오·필리핀 등의 불법 도박장에서 101억원 상당의 도박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문 대표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마카오 호텔 카지노 등에서 200억원 상당의 도박을 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10억여 원의 회사 돈을 빼돌린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까지 크고 작은 도박판에 참가한 혐의가 드러난 기업인은 총 8명으로 늘어났다.

해외 원정 도박에 대한 수사는 지난 9월 ‘광주송정리파’ 조직원 이 아무개씨가 구속되면서 급물살을 탔다. 광주송정리파는 범서방파 계열의 조폭이다. 이씨는 마카오에서 속칭 ‘정킷방’을 운영하면서 VIP들을 상대했다. 마카오 사행산업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이씨는 승승장구했다.

검찰은 지난 3월 범서방파의 두목이었던 고 김태촌씨의 양아들로 불리는 김 아무개씨를 회사 돈 횡령 혐의로 구속하는 과정에서 원정 도박 리스트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추적을 계속하던 중 마카오 정킷방을 운영하는 이씨를 잡으면서 해외 원정 도박의 실체를 잡아냈다.

정킷방은 카지노업체에 일정 금액을 내고 임대받은 게임용 방을 의미한다. 보통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며 임대료는 100억~150억원 선으로 알려졌다. 정킷방에 참여하는 과정에는 ‘환치기’가 동원된다. 도박 참가자는 국내에 있는 도박 모집책이 알려준 계좌에 게임 참가비를 입금한 후 마카오로 향한다. 그야말로 자기 몸뚱아리 하나만 갖고 가면 되는 셈이다. 돈을 받은 업자들은 게임 참가자에게 비행기와 숙박, 유흥 등을 모두 제공하고, 도박 자금은 칩으로 대신한다. 게임으로는 주로 ‘바카라’를 많이 한다.

게임에서 오간 돈은 국내에 들어와 정산한다. 이 과정에서 업자들은 2~3%의 수수료를 받는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조폭들이 운영하는 도박장의 경우에는 3% 이상의 수수료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해외 원정 도박이 횡행하는 이유는 ‘안전’ 때문이다. 실제로 돈을 해외에 가지고 나가지는 않기 때문에 도박을 즐기는 이들 사이에서 해외 도박은 ‘안전한 금고’로 여겨졌다. 국내에서 카지노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박 아무개씨는 시사저널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실제 마카오로 향할 때 직항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홍콩으로 간 뒤 헬기를 타고 마카오로 이동한다. 출입국 기록만으로는 마카오에 가서 도박을 했다는 의심을 하기가 힘들다. 정킷방에서는 보통 억대의 판돈이 기본이다. 모집책들이 관리하는 VIP가 아니면 정킷방에는 들어갈 수 없다. 비밀 보장이 확실한 것이다.”

현재 원정 도박이 성행하는 곳으로는 마카오와 필리핀, 캄보디아 등이 꼽힌다. 범서방파와 양은이파가 원정 도박 시장을 양분하다시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도박 시장의 규모가 큰 마카오에서 범서방파와 양은이파 계열의 조폭이 많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를 넘어 해외 수익사업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 셈이다.

마카오에 있는 한 카지노 게임장. ⓒ image china 연합

검·경 ‘투트랙’ 수사 착수…비자금 수사로 확산

현재 해외 원정 도박 수사는 경찰과 검찰 모두가 들여다보는 ‘투트랙’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와 서울중앙지검 강력부가 수사를 맡고 있다. 검·경 모두가 수사에 힘을 쏟으면서, 원정 도박 수사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실제로 정킷방 운영자인 이씨는 검찰에 구속된 정 회장과 문 대표 외에도 주요 고객들의 이름이 적힌 장부를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유명 연예인과 재벌 3세 등의 이름도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검찰도 도박 수사가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암시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씨를 기소한 것으로 수사가 다 끝난 것은 아니다”면서 “관련 자료는 계속해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수사가 도박뿐만 아니라 비자금 수사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환치기 과정 자체가 일종의 ‘돈세탁’이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비자금을 안전하게 보관하려는 이들도 있다는 얘기다. 한 사정 당국 관계자는 “카지노에 비자금을 넣어둘 경우 이자는 지급되지 않지만 확실한 신분 보장도 되기 때문에 돈세탁 창구로도 쓰일 수 있다”며 “검·경의 수사 결과에 따라 원정 도박 파문이 전 방위로 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직 경찰서장도 도박 연루설 올라 


검·경의 해외 원정 도박 수사 과정에서 현직 경찰서장의 연루설이 나왔다. 시사저널은 이번 해외 원정 도박 파문 취재 과정에서 검찰이 현직 경찰서장과 관련된 의혹을 상당 부분 깊게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의혹의 구체적인 내용은 경기도 지역 경찰서장인 ㄱ씨가 200억원이 넘는 도박판을 벌여 구속 기소된 문식 켄오스해운 대표로부터 ‘도박 접대’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의혹이 확산되자 검찰은 조기 진화에 나섰다. 검찰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현재까지 도박 혐의를 받고 있는 공무원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검찰은 ㄱ서장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고 있는 상태다. ㄱ서장에게 도박 혐의가 아닌 문 사장으로부터 금품을 제공받았다는 뇌물수수 혐의를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익명을 요구한 사정 당국 관계자는 “수사팀에서 ㄱ서장의 금전 거래 내역 등을 살펴본 것으로 알고 있다”며 “ㄱ서장이 도박을 한 것 같지는 않지만 뇌물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ㄱ서장은 해당 의혹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ㄱ서장은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도박 혐의에 대해 “2012년에 마카오에 다녀온 적은 있지만, 문 대표가 도박을 했다는 시점은 2013년이다. 원래 나는 도박을 할 줄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금품 수수와 관련된 내용은 “문 사장과 아는 사이긴 하지만 그 사람과 돈 거래를 한 적은 결단코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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