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과의 대화] ‘악마’가 돼버린 왕따 소년
  • 배상훈 |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 (프로파일러) (.)
  • 승인 2015.10.29 17:03
  • 호수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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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죄로 35년형 선고받은 이 병장, 교도소에서도 성추행·가혹행위 일삼은 까닭은?

2014년 4월5일 이 아무개 병장은 점호가 끝난 후 저녁 9시45분부터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밤새도록 윤 아무개 일병을 폭행했다. 또 윤 일병에게 잠을 자지 말도록 명령했고 오전에는 구타와 함께 가래침을 핥아먹게 했다. 오후에는 냉동식품을 쩝쩝거리며 먹는다는 이유로 가슴과 턱을 때렸고, 음식물이 튀어나오자 바닥에 떨어진 음식물도 역시 핥아먹게 했다. 윤 일병이 오줌을 싸며 쓰러졌는데도 뺨을 때리며 다시 넘어뜨렸다. 이후 윤 일병은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고 다음 날인 4월7일 사망했다.

윤 일병은 28사단 포병연대 본부포대 의무병으로 배치됐다. 2주간의 대기 기간이 지난 후 3월3일부터 사망에 이른 4월6일까지 매일 폭행과 욕설, 인격모독과 구타를 당했다.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로 폭행이 자행됐다. 대답이 느리고 인상을 쓴다는 이유로 마대자루가 부러지도록 때렸다. 살려달라고 호소를 해도 2~3시간가량 기마 자세를 강요했다. 치약을 먹이고 성기에 약품을 바르는 등 가혹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폭행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교회에도 못 가게 하고 부모의 면회도 막았다.

ⓒ 일러스트 오상민

악마와도 같은 학대 살인의 주범 이 병장의 범행 사실이 밝혀지자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사건 처리에 미적거리던 군 검찰이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했고, 이후 살인죄로 공소장을 변경한 후 2심 재판에서 징역 35년형을 선고받았다. 오는 10월29일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런데 최근 국군교도소에서 미결수로 구치 수감 중인 이 병장이 올해 2월부터 같은 방의 피수감자 5명 등에게 윤 일병에게 했던 것과 동일한 유형의 모욕과 가혹행위, 성추행 등의 범죄 행위를 지속적으로 반복했다는 피해자들의 증언이 나와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 병장은 스스로 자랑스럽게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의 주범 병장’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는 등 피해자들에 대한 성추행을 4개월 동안 거의 매일 자행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이 병장은 피해자들에게 “널 보면 윤 일병이 생각난다”는 식으로 협박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당시 국군교도소 측에서 이런 범죄행위에 대해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제반 상황에 대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음에도 어떠한 조처도 취하지 않아 피해자들이 더 늘어났다는 것이다.

국군교도소 측은 이 병장을 단지 ‘미결수’라는 이유로 다른 단기형 병사들과 같은 방에 수감해 이들을 커다란 위험 속에 방치했다. 이는 국방부 ‘형집행법’과 ‘시행령’, ‘공범 분리 규정’ 등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무책임한 군 교정 당국이 악마와 같은 이 병장의 범죄행위를 방조한 셈이다. 현재 이 병장은 이번 건과 관련해 군 검찰에 송치돼 수사를 받고 있다.

“내가 바로 윤 일병 사건의 이 병장이야”

국군교도소에서 이 병장이 보인 행동은 상식적으로 볼 때 이해하기 힘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심에서 45년형을 선고받은 이 병장은 항소심 재판정에서 윤 일병의 부모에게 눈물까지 보이며 용서를 구해 35년형으로 감형을 받았다. 그런데 재판정에서 눈물을 보인 이 병장이 실제 감방에서는 정반대의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8인실 국군교도소에서 지낸 이 병장은 새로 들어오는 수감자에게 악수를 청하며 “내가 바로 그 윤 일병 사건의 이 병장이야. 만나서 반가워”라고 인사를 했다고 한다. 이에 수감자들은 공포를 느꼈다고 증언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목을 조른다거나 음료수가 가득 든 1.5리터 페트병으로 구타하고 볼펜으로 갑자기 찌르기도 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에게 “너도 윤 일병 같아. 너도 당해볼래. 똑같이 해줄까” 등의 말을 하면서 가혹행위를 했다고 한다. 또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며 피해자에게 다른 6명의 수감자들이 보는 데서 성기를 핥으라고 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무시로 욕하면서 무작정 피해자를 때리기도 했는데 다른 수감자들이 말려야만 겨우 상황이 끝났다고 한다. 자기 분이 풀리면 또다시 장난을 걸어왔다. 감방의 다른 수감자들은 보통 3개월에서 1년 사이의 단기형 수감자들이었다. 이 병장에 비해 형량이 절대적으로 적었는데, 이들은 무서워서 이 병장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쉽게 흉기로 변할 수 있어 교도실 안에 있어서는 안 될 가위 등을 교도관들의 묵인하에 들여올 수 있어 더 무서웠다고 한다. 이 병장은 윤 일병 부모에 대한 욕까지 했다. 항상 여자친구에게 온 편지라면서 다른 수감자들에게 읽어주기도 했는데, 이 병장이 재판을 받으러 간 사이 그의 사물함을 뒤져본 수감자들은 여자친구에게 온 편지가 한 통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면회를 나가면서도 항상 여자친구가 온 것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여자친구가 아닌 가족이었다.

이 병장의 이러한 행동에서 일관된 패턴을 읽을 수 있다. 윤 일병 사건이 벌어지기 훨씬 전부터 이 병장은 늘 자신의 주변에 대해 과장된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는 대학 선후배들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조폭이라고 말하는 등 평소 허세가 심했다고 한다. 경남 지역의 한 대학에 다니고 있던 자신의 동생에 대해선 서울에 있는 유명 대학에 다니며 과외비를 엄청 받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병장의 병영 일기에는 아버지와 연락을 하고 지내는 것처럼 작성돼 있지만, 실제로는 아버지와 10년째 연락 두절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2012년 작성된 가족조사서에 아버지의 직업을 한 상조회사 사장이라고 적었지만, 실제로는 2009년 상조회사 내부 자금을 가지고 잠적해 소재불명으로 지명수배 중이었다. 윤 일병 관련 사건 진술조서의 마지막 부분에도 변호사 선임 여부를 묻는 군 검찰의 질문에 “부모님과 상의하겠다”고 답변한 것으로 나와 있다.

2014년 8월5일 윤 일병 사망 사건 가해자들이 보통군사법원에서 나와 호송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나약한 자신 지켜줄 시나리오에 따라 연기

이 병장에게 나타나는 이러한 행동은 전형적인 왕따 피해자의 특성으로 그의 행동에서 ‘페르소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진술조서나 병영일기, 훈육관 평가 등을 보면 상당 부분에서 ‘폭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찌질한 왕따 소년’을 볼 수 있다. 그의 진술은 정확히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데 여기에 두려움이 내재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아버지가 조폭이라는 주장, 상조회사 사장이라는 주장, 동생이 명문대 학생이라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그는 너무나도 나약한 자신을 지켜줄 시나리오에 따라 연기를 하고 있었다. 또 자신이 불행하게 버려진 외톨이라는 사실을 들킬까 봐 늘 초조하고 불안해했다. 여자친구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행하고 찌질해 보이는 아이는 반드시 왕따가 돼 엄청난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을 그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선제적으로 공격을 했다. 35년형을 선고받고 8인실에 수감됐을 때도 자신이 범죄자로 수형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무시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왕따에서 벗어나는 가장 핵심적인 기제인 선제적으로 왕따를 만드는 방법을 동원한 것이다. 일단 무리 중에서 가장 약해 보이는 한 명을 골라 공개적으로 가혹하게 린치를 가한다. 그렇게 미친 듯이 폭력을 행사하면 다른 무리들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폭력에 맞서 싸울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방관할 것인가.

이 병장은 이미 단기형으로 수감된 수형자들의 두려움이나 공포를 알고 있었다. 왕따에 대한 폭력만으로도 제왕처럼 군림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에게 이런 범죄행위, 가혹행위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생존 방법이었다.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자신을 숨기기 위해 일종의 페르소나를 쓴 것이다. 마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고 적에게 공포를 들키지 않으려고 괴물의 가면을 쓰는 전장의 장수들처럼, 그 역시 공포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이런 행위는 절대 멈춰서는 안 될 행동으로 받아들여졌다.

‘병장’이라는 군대 내 계급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느끼지 못한 묘한 해방감을 맛보게 했다. 일반인에게 군대 계급은 그 자체로 공포이자 두려움이었지만 그런 공포에 너무나도 익숙했던 이 병장에게는 일종의 돌파구였다. 이전까지는 공포와 두려움을 피해 다녔지만 이제는 공포를 이용해 찌질한 자신을 숨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윤 일병 사건의 범인 이 병장’이라는 또 하나의 페르소나를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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