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난 독일차 소비자들, “팔기 전엔 왕, 팔고 나면 봉?”
  • 박성의 기자 (sincerity@sisabiz.com)
  • 승인 2015.11.10 09:14
  • 호수 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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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 親소비자 법으로 전환 필요

# 벤츠 장기리스 차주 이모씨는 지난 4월 주행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가해자가 발뺌 하자, 김씨는 블랙박스를 확인했다. 리스 계약 당시 벤츠 딜러 김모 부장이 설치한 블랙박스였다. 영상을 확인한 결과 블랙박스는 불량 제품으로 사고영상이 녹화돼 있지 않았다. 낭패를 본 이씨가 김부장에게 항의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벤츠 본사에 연락해도 답은 같다. 우린 책임이 없다.”였다.

독일자동차들에겐 잔인한 11월이다. 동시에 수입차 차주들에겐 분노의 계절이다. 벤츠는 주행 중 시동이 꺼졌고, 아우디 폴크스바겐은 연비를 속였으며, BMW는 달리던 차가 폭발했다.‘차도 고객도 최고로 만들겠다’는 독일차의 포부가 무색해졌다.

독일 수입차 고객들의 쌓였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높은 값을 주고 차량을 구입했지만 팔고나면 고객은 뒷전이다. 업계에선 수입차들의 ‘팔고 나면 그만’ 자세가 한국에서 유독 심하다고 지적한다.

사진 = 시사비즈

◇ 시동이 꺼져도, 불이 나도...팔고 나면 ‘고객님 탓’

지난 3일과 5일 달리던 BMW 520d 차량에 불이 붙었다. 엔진룸에서 시작된 화재는 차량을 전소시켰다. 그리고 7일과 8일, 고속도로에서 주행 중이던 BMW 525i와 BMW7시리즈 차량에 불꽃이 일며 전소됐다.

폴크스바겐은 9월 배기가스를 고의적으로 조작했다는 ‘사기극’이 만천하에 들통나 국내 소비자들을 놀라게했다.

같은 기간인 9월, 벤츠는 주행 중 시동꺼짐 현상이 전국적으로 10건 이상 발생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난 일이다.

이같은 사건 후 BMW 차주는 전소된 차를 서초 매장 앞에 갖다놓고 시위를 벌였으며, 벤츠 차주는 2억원이 넘는 차량을 골프채로 부쉈다. 폴크스바겐 코리아는 6차례에 걸친 줄소송을 얻어맞았다.

차주들의 분노를 부른 건 독일 3사의 모르쇠식 대응이었다. 사고 후 수입차 업체의 대답은 “알아보고 있다”, “계약상 교환이나 환불은 불가하다”, “고객 책임 가능성도 있다”로 요약됐다.

벤츠 딜러의 블랙박스 불완전 판매로 피해를 본 이모씨는 “벤츠는 구매 전에는 고객을 왕처럼 모신다. 하지만 문제가 불거지면 태도가 돌변했다”며 “판매사는 본사에 책임을 묻고, 본사는 법을 운운하며 고객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미국이었으면 가당키나 한 태도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 한국법 親기업적 성향이 못된 수입차 만들어

올해 10월까지 판매된 수입차는 19만6543대로 지난해 연간 판매량(19만6359대)을 넘어선다. 올해 수입차 점유율은 16%로 지난해(13.92%) 보다 2%포인트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연간 판매량이 20만대를 넘어섰지만 수입차 업계 서비스 품질은 정체돼 있다고 주장한다. 외국에서는 수준 높은 서비스를 선보이면서도 한국에서는 국산 완성차업계의 ‘나쁜 버릇’을 학습한다는 지적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수입차 판매량이 연간 10만대를 넘어서고 있지만 수입차들이 그와 비례한 서비스를 보이는지는 의문”이라며 “본국에서 보였던 품질경영 정신이 유독 한국에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국산차보다 사후 대응 등이 소극적이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국산 완성차 업계에 좋은 영향을 끼쳐야할 수입차 업체가 역으로 국산 자동차회사로부터 나쁜 노하우들을 학습하고 있다”며 “무조건 책임을 회피한다거나 시간을 끄는 식의 대응이 소비자 화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법조인들은 국내법이 자동차 회사에 유리하게 작용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소비자와 자동차 회사 간 분쟁의 경우, 회사에 유리한 판례들이 다수 발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동차 회사들이 법을 방패삼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과거 현대차 법무실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폴크스바겐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하종선 변호사도 같은 점을 짚는다. 대기업 횡포를 견제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이 검토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 변호사는 “폴크스바겐 소송을 미국으로 끌고 간 이유는 한국보다 미국법이 소비자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라며 “국내외법을 모두 전공한 법조인으로서 한국법은 확실히 차주들에게 불리하다. 기업들도 이런 점을 알고 악용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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