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손학규 복귀론’에 들썩들썩
  • 양정대│한국일보 기자 (.)
  • 승인 2015.11.11 15:23
  • 호수 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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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현 정부 대북정책 및 국정 교과서 비판…“정계 복귀 초읽기” 해석

“이럴 줄 알았으면 진짜 다 불러모아 볼걸 그랬네.” 지난 11월2일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측 인사들이 대규모 만찬 회동을 가졌다는 소식을 듣고 손 고문의 핵심 측근으로 꼽히는 한 3선 의원에게 “모임이 요란했다더라”고 농을 건넸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그는 묻지도 않았는데 “손 고문의 복귀를 촉구하는 자리는 아니었다”고 잘라 말한 뒤 “그렇지만 언론이 어떻게 쓸지는 빤히 보인다”며 웃었다.

야권이 최근 ‘손학규 복귀론’으로 들썩이고 있다. 지난해 7·30 경기도 수원 병 보궐 선거에서 패배한 직후 정계 은퇴를 선언한 이래 그의 복귀 가능성이 거론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나오는 복귀론은 몇 가지 점에서 이전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게 사실이다.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11월4일 카지흐스탄에서 귀국, 기자들과 회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불투명한 총선 전망…몸값 치솟는 손학규

무엇보다 20대 총선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지지층이 조급해지기 시작했고, 때마침 손 고문은 정계 은퇴 후 첫 외국 강연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비판한 데 이어, 11월4일 귀국길에는 최대 정국 현안인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대해서도 날을 세우는 등 현실 정치에 한 발을 들여놓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 와중에 손 고문의 측근들은 여의도 한복판에서 대규모 만찬 회동을 갖고 “자나 깨나 손학규”를 수십 차례 외쳤다.

일단 겉으로 드러난 상황만 놓고 보면 손 고문의 정계 복귀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해석도 가능할 듯하다. 특히 시기적으로 본격적인 20대 총선 준비에 돌입해야 할 때라는 점에서다.

하지만 현재로선 야당의 총선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중론이다. 새누리당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을 정점으로 일사불란한 진용을 갖춰 총선에 임할 가능성이 큰 반면, 새정치연합은 정의당으로 통합된 진보 진영과의 연대는 물론 내부의 극심한 계파 갈등을 조정·통제하기조차 버거워 보이는 상황이다.

새정치연합 내 전략통으로 꼽히는 한 재선 의원의 말이다. “새누리당도 겉으로는 청와대·친박(親박근혜)계와 김무성 대표를 위시한 비박(非박근혜)계가 공천 룰 등을 놓고 여전히 갈등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쪽은 김 대표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논란에서 꼬리를 내리면서 게임이 끝났다. 오히려 청와대·친박계가 상황을 관리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런데 우리 쪽은 심지어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의 와중에도 안철수 의원이 공개적으로 문재인 대표를 비난하는 등 갈수록 원심력이 커지는 형국이다.”

 최근 손 고문의 복귀론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의 국정화 논란까지 더해져 여권에 대한 민심 이반이 뚜렷한데도 새정치연합 내부에서조차 ‘문재인 체제’로 총선 승리가 가능할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동안 문 대표의 대항마로 안 의원을 앞세웠던 반노(反노무현) 진영도 지지층의 호응이 미진하자 서서히 손 고문 쪽으로 무게중심을 이동시키는 듯한 모습이다. 불투명한 총선 전망이 결국 손 고문의 정치적 몸값을 띄우고 있는 셈이다.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칩거하고 있는 전남 강진 백련사 인근 흙집. ⓒ 시사저널 임준선

“정권 교체 위해선 손학규도 ‘병풍’ 돼야”

지난 11월2일 만찬 회동에 참석했던 손 고문 측의 한 원외 인사는 “솔직히 우리 입장에서야 손 고문이 복귀하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공천 과정에서 지금보다는 훨씬 유리해질 것”이라면서도 “지금 손 고문 복귀론이 나오는 건 총선 승리에 대한 절실함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의미를 부여했다.

손 고문의 정치적 입지나 위상은 새정치연합 내 노장 정치인 가운데 상대적으로 가장 탄탄한 편이다. 이해찬·정세균·박지원 의원 등에 비해 당내 기반은 뒤지지만 대중적 지지도나 인지도에선 이들을 압도한다. 또 정파적 유연성 측면에서 계파 갈등의 합리적 관리자로 그만한 인물을 찾기 어렵다. 게다가 그는 합리적 보수층에게도 어필이 된다.

손 고문 주변 인사들은 이 같은 이유 때문에라도 그가 ‘구원투수’에 머무르는 정도의 정계 복귀에는 손사래를 친다. 2012년 당내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손학규 캠프의 대변인을 지낸 김유정 전 의원은 “선발투수라면 몰라도…”라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선 당이 손 고문의 복귀를 원한다면 대선 후보 자리여야 하고, 적어도 총선이라면 그에게 전권을 맡겨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바로 이 대목에서 손학규 복귀론은 또 다른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다. 우선 문 대표나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의원 등 유력 대권 주자 진영과의 의견 조율이 무난하게 이뤄지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일단 총선을 ‘손학규 체제’로 치른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얘기다. 특히 2017년 정권교체를 위해선 새정치연합을 비롯한 야권 전체의 대대적인 재편이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손 고문의 복귀까지는 몰라도 그 이상은 ‘반동’일 수 있다.

‘86그룹’(1980년대 학번, 1960년대 출생) 중 손 고문과 가장 가깝다고 평가받는 한 의원조차 “손 고문이 욕심을 내기 시작하는 순간 정권 교체는 물 건너간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지난 10월8일 박영선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이 한목소리로 손 고문을 치켜세운 것을 두고도 비슷한 해석이 나온다. 중도개혁 성향의 50대 유력 정치인이자 친노(친노무현)-비노(비노무현) 프레임을 넘어서자며 ‘통합행동’을 결성한 이들이 한날한시에 손 고문을 언급한 것은 ‘병풍’ 역할을 요구한 것이지 ‘손학규 띄우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사실 이 같은 인식은 당 안팎에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결국은 말끝이 흐려졌지만, 혁신위원회가 내놓은 인적 쇄신의 핵심은 이해찬·박지원·정세균·김한길·문희상 의원 등 백전노장들이 용퇴를 통해 세대교체의 숨통을 틔워주되 정권 교체를 위해선 기꺼이 후배들의 바람막이가 돼줘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손 고문은 정계 은퇴 상태여서 과녁에서 비켜나 있었을 뿐”이라고 했다.

손 고문은 11월4일 카자흐스탄에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칩거지인 전남 강진으로 내려갔다. 그는 강진에 얼마나 더 머무를 건지를 묻는 질문에 “강진의 산이 ‘지겨워서 더 못 있게 하겠다’고 하면”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주변에선 야권의 심장부인 광주 출마를 권유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 수도권 초선의원은 “손 고문의 정계 복귀는 시간의 문제일 뿐 사실상 명분과 수순만 남은 것 아니겠느냐”면서 “지금 우리 당에 손 고문만 한 인물이 없다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역설적이게도 손 고문이 꾸는 큰 꿈은 야권의 큰 어른이 되는 길을 선택할 때 비로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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