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벨트’ 막아라!” 야권발 ‘동남풍’ 불까
  • 박준용·유지만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5.11.19 19:18
  • 호수 1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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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 곳곳에 친박 진격 야권, ‘거물 출마’ ‘지역 기반 다지기’로 반전 노려

“계속 져도 선거 때만 되면 이번에는 좀 이기겠지 하는 생각이 듭니더. 기대하고 실망하고 반복하다 보니 지금이네예.” 10년 넘도록 부산 지역에서 야당에 몸담고 있는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처럼 부산·울산·경남은 야권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곳이다. 지역구 국회의원 의석 확보에는 번번이 실패했다. 지난 19대 총선 때 부산·경남 34개 지역구 중 단 세 곳만을 가져갔다.

하지만 야권은 그간 치른 선거에서 이 지역의 지지를 확인했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2012년 대선 때 부산에서 39.87%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장관은 2014년 부산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49.34%를 득표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는 2010년 경남에서 야권 단일 후보였던 김두관 전 도지사가 53.5%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러나 2016년 4월 총선은 조금 다르게 진행될 수도 있다. 친박(친박근혜) 인사들이 부산과 경남에서 대거 출마를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떠돌던 ‘물갈이론’이 부산·경남까지 번진 모양새다. 이에 따라 야권이 거는 기대가 조기에 꺾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2012년 대선 당시 부산 남포동 자갈치시장을 방문해 큰 광어를 들어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친박 주자 진격… 野 거물급 출마 고심 중

친박 거물급의 연이은 출마는 부산 총선 판도를 바꿀 전망이다. 가장 혼전에 빠질 곳은 해운대·기장 지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과 부산을 두고 저울질하던 안대희 전 대법관은 이 지역 출마를 택할 것으로 전해졌다. 해운대·기장 을에서는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사무총장을 지낸 3선의 안경률 전 의원까지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노리고 있다. 배덕광(해운대·기장 갑)·하태경(해운대·기장 을) 현역 새누리당 의원도 치열한 공천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이 지역은 기존 두 곳에서 세 곳으로 선거구가 재편될 공산이 크다. 독립될 기장군을 두고도 벌써부터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 대구 출마설이 돌던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장관도 이 지역 출마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팩스 입당’으로 새누리당 당원이 돼 입길에 오른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도 이곳에 사무실을 냈다. 지난 10월 지방자치단체 보궐 선거에서 야당 후보를 지지해 당 제명 위기에 놓인 그다. 무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하거나 특정 후보가 당선되도록 도울 가능성이 있다.

야권에서는 오거돈 전 장관이 해운대·기장 지역에 출마해 시장 선거에서 보여준 저력을 발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경우에 따라 오거돈-안대희 또는 오거돈-윤상직 간 대결이 성사될 수 있다. 오 전 장관은 “시간이 흘러봐야 알 것”이라며 유보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서구와 사하 갑에는 현 정권 장관급 인사가 금배지를 달기 위해 돌아왔다. 서구의 유기준 의원은 해양수산부장관직을 마치고 총선에 주력할 방침이다. 그는 장관직을 내려놓으며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의원들과 교류를 넓혀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그가 총선에서 부산 친박 세력을 결집하는 데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지역구 재편이 변수다. 조정에 따라 서구와 중·동구, 영도구 세 곳의 선거구는 두 곳으로 바뀔 수 있다. 중·동구, 영도구는 각각 박 대통령이 견제하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정의화 국회의장의 지역구다. 이 지역 경선에서 친박과 비박 중진 의원 간 갈등 구도가 연출될 수 있다.

사하 갑에 출사표를 던질 ‘친박 실세’는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다. 그는 이 지역에서 재선 경험이 있어 기반도 탄탄하다. 19대 총선에 불출마했던 그는 2014년 11월 ‘사하경제포럼’을 설립해 표밭갈이에 나섰다. 현역 문대성 의원과 비례대표 김장실 의원, 김척수 부산시장 정책고문 등은 힘겨운 당내 공천 경쟁을 앞두게 됐다.

친박 주자가 부산 곳곳에 둥지를 트는 통에 야권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래서 나온 게 ‘동남풍론’이다. 문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의원 등 거물 정치인이 솔선수범해서 부산 지역에 뛰어들자는 얘기다. 부산 의석 몇 개를 획득하면 총선 판도를 뒤엎을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에서 나왔다.

‘동남풍론’이 힘을 얻으면 부산에서 ‘미리 보는 대선’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 결전의 땅은 영도구다. 이곳은 김 대표의 지역구다. 새정치연합 혁신위는 문 대표에게 영도구 출마를 제안했다. 문 대표는 어린 시절 영도에 거주한 적이 있다. 현재 모친도 이곳에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문 대표는 “심사숙고하겠다”면서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안 의원은 부산보다 본래 지역구인 서울 노원 병에 출마할 가능성이 크다.

야권에서는 당 대표급 빅카드가 아니라도 지역구 탈환을 기대하는 곳이 있다. 부산진 갑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재선 의원 출신 김영춘 새정치연합 부산시당 위원장이 지역주의 타파를 주창하며 귀향해 터전을 닦은 곳이다. 그는 19대 총선 때 맞붙었던 나성린 새누리당 의원과 리턴매치를 벌인다. 당시 김 위원장은 3600여 표 차로 석패했다. 김 위원장 측은 “이번에는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야권은 사상구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부산일보 기자 출신 비례대표 배재정 새정치연합 의원은 문 대표에게 지역위원장 자리를 물려받았다. 경쟁자로 새누리당 소속 손수조 당협위원장과 송숙희 사상구청장이 거론돼 여성 후보 간 대결이 벌어질 전망이다.

사하 갑의 최인호 새정치연합 지역위원장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19대 총선에서 문대성 의원에게 3.5%포인트 차로 아깝게 졌다. 그 밖에 조경태 새정치연합 의원은 사하 을에서 야권 소속으로는 최초로 4선에 도전한다.

친이-친박계,  신구 권력의 치열한 접전

경남 지역은 중진급 친이(친이명박)계 의원이 많은 곳이다. 이들 대다수는 지역구 수성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친박 주자와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측근이 공천 경쟁에 뛰어들며 여권에서는 “본선보다 예선이 더 치열하다”는 말도 나온다.

진주 을은 세 갈래 여권 세력이 모두 자웅을 겨루는 격전지다. 친이계로 4선에 도전하는 현역 김재경 의원은 친박 주자인 김영호 전 감사원 감사위원과 맞붙게 됐다. 공교롭게도 1961년생 동갑내기로 진주 출신인 이들은 진주고 동기동창이다.

여기에 홍 지사의 ‘오른팔’ 오태완 정무특별보좌관도 가세했다. 오는 12월 정무특보직을 사임하고 예비후보 등록을 할 예정이다. 야권에서는 진주 지역 시민단체에서 잔뼈가 굵은 서소연 새정치연합 지역위원장이 대항마로 나선다.

대표적 친이계인 여상규 의원이 버티는 사천·남해·하동은 친박계 최상화 전 춘추관장과 서천호 전 국정원 2차장이 ‘물갈이’를 노린다. 재선인 여 의원의 기반이 탄탄하기 때문인지 도전자들은 일찍부터 지역 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 전 춘추관장은 올해 2월부터 10개월째 지역에 내려와 기반 다지기에 나섰다. 서 전 차장도 최근 자서전 출판기념회를 여는 등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다.

총선을 준비하는 홍 지사 측근 중 가장 중량감 있는 이는 최구식 경남도 정무부지사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인 그는 진주 갑에서 재선(17, 18대)했다. 그는 20대 총선에서 현역인 박대출 의원과 맞붙는다. 최 부지사는 19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박 의원에게 밀렸다. 2011년 그는 자신의 비서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디도스 공격을 했다는 혐의를 받자 탈당했다. 최 부지사는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복당해 공천 경쟁에 참가할 의사를 내비쳤다.

창원에서는 공기업 사장들이 도전장을 냈다. 김학송 한국도로공사 사장, 박완수 인천국제공항 사장은 각각 창원 진해구와 의창구에 출사표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둘은 공기업 경영자 자리에 안착한 대표적 ‘친박 낙하산’으로 불렸다.

하지만 창원에서는 야당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창원 성산구에서 허성무 전 경남도 정무부지사가 현직 강기윤 새누리당 의원을 앞지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경남도당이 자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지지율이 31.5%로 나왔다. 강 의원보다 5.1%포인트 높은 수치다. 또 친박 주자가 출마하는 진해구와 의창구에서도 싸워볼 만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김태호 새누리당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며 무주공산이 된 김해 을에서도 ‘야풍’이 불 조짐이 보인다. 이 지역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노무현재단 본부장을 겸하는 김경수 새정치연합 경남도당위원장은 제법 탄탄한 지역 지지 기반을 갖고 있다. 19대 총선 때도 김 의원에게 졌지만 47.9%의 높은 득표율을 얻었다.

여권에서는 김 위원장의 상대로 이만기 인제대 교수를 내세웠다. 씨름선수로 ‘천하장사’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그는 새누리당 김해 을 당협위원장 자리를 차지했다. 

선거구 조정에 따라 출마 예상자들의 쏠림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분구가 확정적인 양산에서는 거론되는 출마자만 많게는 20여 명에 달한다. 우선 19대 총선에 양산에서 당선된 윤영석 새누리당 의원이 건재하다. 그와 접전을 벌였던 송인배 새정치연합 지역위원장도 출마 준비를 하고 있다. 이외에 허범도 전 의원, 김양수 전 의원, 강태현 변호사, 김정희 전 경남대 교수,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박인 도의원 등 여권 인사와 김일권 전 양산시의회 의장, 김영진 전 통합진보당 양산시위원장 등 야권 인사가 가세해 혼전이 예상된다.

울산 지역은 19대 총선에서 선거구를 싹쓸이한 새누리당의 ‘수성’과 노동계로 대표되는 울산 지역 야권의 ‘부활’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총 6개인 선거구를 모두 석권한 새누리당으로서는 내년 총선에서도 전승을 거두지 못하면 ‘선거 패배’라는 오명을 쓸 수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올해 3월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울산 지역 새누리당 현역 의원 6명 중 5명에 대한 교체 여론이 높았다.

새누리당의 수성이냐, 진보 세력의 탈환이냐

울산 지역 야권으로선 노동계를 비롯한 진보 세력의 부활 여부가 중요하다. 하지만 새정치연합과 울산 지역 노동계의 연계가 그리 끈끈하지 못하다는 점이 문제다. 또 정의당이 노동당과 통합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울산 지역 야권의 통합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울산 지역 내에서 상당한 기반을 가지고 있는 옛 통합진보당 세력도 야권 연대 차원에서는 쉽게 버릴 수 없는 카드다. 특히 울산을 포함한 ‘낙동강 벨트’를 지켜내고자 하는 새정치연합에는 정의당 및 옛 통진당 세력과의 연대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가 상당히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울산 정치의 핵심인 중구에서는 4선인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이 5선에 도전한다. 국회부의장이기도 한 정 의원은 “5선을 달성해 울산 역사상 첫 국회의장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상태다. 여기에 강용식 부산시당 사무처장과 박재갑 전 새누리당 수석부대변인, 이동우 전 울산경제진흥원장 등이 새누리당 공천에 뛰어들 준비에 나섰다. 최근 ‘PK 지역 물갈이설’이 등장하면서 정 의원이 공천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점에 기대를 거는 모양새다.

야권에서는 임동호 새정치연합 지역위원장과 이향희 노동당 울산시당 대변인, 천병태 전 울산시의원 등이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여당이 치열한 공천 경쟁을 통해 흥행을 주도할 때를 대비한 야권 연대나 단일화 여부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 본사가 위치한 동구의 표심도 관심사다. 노동자 밀집지역인 데다 옛 통진당 소속 인사들이 선거에 나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정몽준 의원이 서울로 옮기면서 생긴 빈자리를 채운 안효대 새누리당 의원이 버티고 있다. 같은 당 경선 후보로는 정천석 전 동구청장이 거론된다. 야권에서는 새정치연합을 제외하고 이갑용 노동당 시당위원장과 옛 통진당 소속이었던 김종훈 전 동구청장이 선거에 나선다.

북구는 야권에서 국회의원 출신 후보들이 나서면서 경쟁이 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 지역구 의원인 박대동 새누리당 의원이 재선을 노리는 가운데, 윤두환 전 의원과 강석구 전 북구청장이 경선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윤 전 의원은 북구에서 3선을 기록했지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2009년에 의원직을 상실했다. 강 전 청장도 선거법 위반으로 피선거권을 상실했다가 복권됐다. 야권의 이름값도 만만치 않다. 이상헌 새정치연합 울산시당위원장과 조승수 전 의원, 옛 통진당 소속인 윤종오 전 북구청장 등이 한판 대결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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